• STORY
  • 01스토리
  • #사제동행(師弟同行)
  • 작은 관심의 효과
  • 저는 지금 훌륭한 사회인으로 성장하고 있는 한 장애 학생에 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이 학생이 고등학교 1학년으로 학교에 입학했을 때, 우리 학교는 수학 우열반을 편성하여 학생들을 지도하도록 교육과정을 운영하였습니다. 이 때, 저는 경험이 많은 선생님이 수학 성적이 좋지 않은 학생들을 가장 잘 보살필 수 있을 것이라는 동료 수학 선생님들과 학교의 결정을 받아들여 수학 성적이 가장 모자라는 하반을 가르치게 되었습니다. 당시 제가 가르쳤던 대부분의 학생들은 수학에 대한 흥미가 없었고 고등학교 학력수준을 유지하고 있는 학생들도 거의 없었습니다. 그렇기에 학년 초부터 수업은 난관에 봉착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심지어 학생들과의 대화도 없었고 학생들 역시 저에게 별로 관심을 갖지 않았기 때문에 항상 수업 분위기는 어수선했습니다. 제가 담당하게 된 수학 하반은 여학생 반이었는데, 여학생들은 자신이 수학 하반에 있다는 사실을 창피하게 여기는 학생들이 많았습니다. 특히, 제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학생은 장애까지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는 것에 굉장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 학생의 다리에는 큰 흉터가 있습니다. 어릴 때 골육종으로 인해 수술한 자국입니다. 제가 처음 그 것을 우연찮게 발견하고 왜 이런 큰 흉터가 생겼는지 물었을 때 그 학생의 첫 대답은 어릴 때 큰 교통사고가 났다는 거짓말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이 학생이 저를 나이가 많아 세대 차이가 나는 고리타분한 선생으로 생각하고 대화를 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점차 지나고 2학기로 접어들면서 이 학생은 자신의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선생으로 저를 받아들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이 학생은 자신 때문에 가정 형편이 어려워져 부모가 이혼하였고 지금은 어머니가 재혼하여 새아버지와 함께 지내고 있다는 집안 이야기, 자신이 골육종으로 수술을 받았으며 이로 인해 장애인으로서 살아가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터놓기 시작했습니다. 그 후로 이 학생은 1학기 때까지만 해도 그 후유증에서 벗어나지 못해서 방황했던 이야기를 하나씩 털어 놓기 시작했습니다. 중학교 때 방황하면서 잘못된 길을 갈 뻔 했던 일, 바쁘게 일하시는 엄마의 품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이모 집으로 도망가 공부를 했던 일, 조그만 말다툼으로 친한 친구와 사이가 벌어졌던 일 등, 자신에게 일어났던 모든 일을 저에게 이야기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 학생은 저와의 상담 끝에 학교생활에 잘 적응해 나가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고 2때는 수학 성적이 많이 올라 저를 깜짝 놀라게도 하였습니다. 학생이 고등학교 3학년이 되던 해, 스승의 날 즈음하여 이 학생으로부터 저녁에 식사를 대접하고 싶다는 문자를 받았습니다. 학부모들이 감사의 표시로 식사를 하자고 하여 가끔씩 함께 한 적은 있었지만 학생이 저에게 식사를 하자고 한 것은 교사 생활 중 처음 있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저녁 식사가 끝나자 자신이 아르바이트를 해서 번 돈으로 저에게 고마움을 표시하고 싶어 이런 시간을 마련했으니 자신이 저녁 식사비를 내겠다고 우기는 겁니다. 한편으로는 학생의 믿음직한 마음씨가 매우 고맙기는 하였지만 나중에 대학에 진학하고 전공을 열심히 공부하여 취직한 후 제대로 된 월급을 받았을 때 식사를 사라고 하고 결국엔 제가 식사비를 지불하였습니다. 그러자 이 학생은 자신이 사는 커피라도 마시고 가야한다고 하면서 2차로 커피 집에서 커피와 팥빙수를 먹고 그 비용을 지불하였습니다. 몸이 불편하고 가정 형편이 어렵지만, 올바르고 곧게 생활하고자 자신에게 최선을 다하는 이 학생의 모습을 보고 많이 놀라기도 하였지만 저 스스로에게 보람도 느낄 수 있는 날이었습니다. 이렇게 놀라운 노력으로 이 학생은 지금 자신이 원하던 사회복지학과에 장애인 전형으로 진학하여 고등학교 때 못 다한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저에게 전해주고 있습니다. 저는 지금 자신이 나아가야할 방향을 정하여 최선을 다하는 이 학생의 모습에 감동을 받고 있습니다. 고등학교 시절 학교 동아리 활동을 통해, 또래 상담자로서 자신과 비슷한 고민을 갖고 있는 친구들의 고민 상담을 받고 함께 해결한 것을 경험으로 삼아 자신과 비슷한 처지에 있는 장애인 복지에 대한 전문가로서 꿈을 키워 나가는 모습을 보면 대견하기까지 합니다. 아직도 완치 판정을 받지는 못했지만 긍정적인 생각과 적극적인 행동으로 장애와 병마를 극복하여 올곧은 사회인으로 발돋움하려고 하는 이 학생에게 나의 작은 관심이 큰 힘이 된 것을 보고 저는 지금 남아있는 교직생활을 참되게 마무리 할 수 있도록 다시 한 번 다짐해봅니다.
  • #사제동행(師弟同行)
  • 레드퀸 효과와 자기위로능력
  •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Alice's Adventures in Wonderland)》라는 작품은 많은 사람들이 읽어 보았을 것입니다. (줄거리는 가물거릴 수도!) 그 속편 《거울 나라의 앨리스(Through the Looking-Glass and What Alice Found There)》라는 작품도 있습니다. 거울나라는 모든 것이 반대로 가는 설정이며 가만히 있으면 뒤로 가는 나라이지요. 그러니 앞서 가거나 제 자리라도 지키려면 항상 앞으로 달려야 합니다. 엘리스는 아무리 달려도 겨우 제자리라는 사실에 이상한 생각이 들어 레드퀸에게 그 이유를 묻지요. “제자리에 머물기 위해서는 온힘을 다해 뛰어야 한다. 만약 다른 곳으로 가기 위해선 지금보다 최소한 두 배는 빨라야 한다.” 진화생물학자들은 이야기를 생태계내의 포식자와 피식자간의 경쟁적 진화과정을 설명하는데 적용했습니다. 포식자는 달리는 속도가 빠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느린 피식자를 잡아먹고 삽니다. 피식자는 잡아먹히지 않기 위해 물려받은 선천적 자질에 머물지 않고 끊임없이 노력하여 더 빨리 달릴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결국 두 종(種) 모두 과거보다 더 빨리 달리는 방향으로 진화하게 되었다고 설명합니다. 이를 공진화(共進化)이론이라고 합니다. 함께 발전할 수 있다면 경쟁을 수용하고 적극적으로 참여하여야 합니다. 상당수의 사람들은 학생들이 경쟁을 통해 성장하고 잠재력을 계발할 수 있다는 말에 공감합니다. 물론 경쟁은 인간관계를 소원하게하고 부정적 정서를 확산시키며 개인의 고립감을 심화시킵니다. 경쟁이 치열해지다보면 승자독식, 비인간화, 낙담, 경쟁포기(은둔) 등이 발생할 수도 있습니다. 경쟁에 대한 건강한 태도와 자세가 중요한 이유입니다. 위의 포식자-피식자의 관계에서도 쌍방은 서로를 진화시키는 원동력이 되는 셈입니다. 입시와 공부에서의 경쟁을 타인과 자신이 서로 발전하고 향상될 수 있는 장으로 인식해야 합니다. 또한, 경쟁의 부정적인 면에 기대어 경쟁을 무시하거나 도피해서는 안 됩니다. 개방적이고 적극적인 자세로 경쟁에 임하고, 타인들과 건강한 자극을 주고받으며 서로 발전하겠다는 자세가 매우 중요합니다. 다른 한편 공부는 엄연히 자신과의 싸움입니다. 교과공부나 시험 준비는 무료하고 피곤하며 오랜 인내를 요구합니다. 무의미하다는 생각, 잘될까 하는 의심까지 도처에서 출몰하기도 합니다. 이런 상황을 슬기롭게 극복하기 위해서는 자신에 대한 위로와 격려가 필요합니다. 마음을 흔드는 불안이나 긴장, 불쾌감으로부터 스스로를 돌볼 수 있는 능력을 심리학자들은 ‘자기위로능력(Self-Soothing Ability)’이라 부릅니다. 자신을 어떻게 위로해야 할까요? Moser라는 학자는 자기위로능력을 4영역으로 나누어 설명한 바 있습니다. 첫째는 신체적 위로(physical soothing)인데, 자신 혹은 타인으로부터의 ‘토닥토닥’을 의미합니다. 둘째는 회복력(resiliency)으로 안 좋은 상황으로부터 빨리 회복할 수 있는 힘을 뜻합니다. 셋째는 자기 노출(self disclosure)로 기분 나쁜 일에 대해 드러내 이야기함으로써 위로를 받고 그 상황을 극복하는 것입니다. 넷째는 스스로 위로하기(self-soothing)입니다. 말 그대로 스스로 자신을 달래고 위로하는 능력을 말합니다. 그런데 이 자기위로능력은 자기뿐 아니라 타인과의 관계까지도 포함하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공감과 격려의 표시로 어깨나 등을 토닥여줄 수 있는 가족이나 친구, 나의 힘듦을 경청하고 응대해줄 선생님이나 동료, 선후배들! 모두가 자신을 위로하고 회복하는 원천인 셈입니다. 경쟁하는 사이에서도 서로간의 관계를 소중히 하고, 자기 내면의 목소리에 따뜻하고 예민한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남 일 상관 안하고 내 공부만 하는 것이 최고’라는 생활태도는 자칫 고독감과 불안을 적절히 해소할 수 없어 최상의 결과를 얻는데도 한계가 있을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을 신경 쓰기 싫어서 혼자만 있을수록 타인의 시선에 더욱 민감해지고 맙니다. 자신 내면의 안정을 유지하며 타인을 동업자로 존중하는 것이 더 좋습니다. 공감과 이해로 토닥토닥 위로하고, 진심어린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서로에게 긍정적이고 따뜻한 위로를 건네는 친교는 경쟁의 부정적인 영향을 순화할 뿐 아니라 스스로 자신의 목표를 향해 정진하는 안정감과 힘을 더해줄 것입니다. 공부하고 일하는 모든 삶의 여정에는 불가피한 경쟁과 제약이 존재합니다. 또한 우리 자신도 한계를 지닌 불완전한 존재입니다. 그럼에도 인간이 위대할 수 있는 것은 그런 제약과 한계에 적극적으로 도전하고 진취적으로 노력한다는 점이 아닐까 합니다. 우리는 오늘도 위대한 하루를 살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목표를 향한 도전과 정진에 열렬한 응원을 보냅니다.
  • #사제동행(師弟同行)
  • 학생과 함께 설계하고 꾸준한 상담을 통해서 얻은 좋은 결과
  • 지금까지 10여년 넘게 진학지도 교사로 대학입시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3학년 담임교사를 시작으로 진학실 기획, 기숙사 사감, 3학년부장, 진로진학 TF 팀장, 광주광역시교육청소속 진로진학지원단까지 많은 업무를 담당했습니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저는 기쁨보다 아쉬움이 많습니다. 이유는 조금만 더 열심히 학생을 도와주었더라면 하는 생각과 내가 좀 더 성심성의껏 챙겼더라면 더 좋은 결과로 이어졌을 텐데 하는 미련 때문입니다. 이제 와서 ‘학생의 진로와 적성에 맞는 알맞은 상담을 해 주었는가?’, ‘모집전형에 맞게 지원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했는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오직 전국 최고의 명문 사학을 만들겠다는 일념으로 학교교육과정을 설계하고 학교프로파일을 만들고 학생들이 원하는 대학, 학과에 진학할 수 있도록 상담을 했습니다. 진로진학에서 좋은 결과를 얻기 위한 최고의 선택은 무엇일까요. 최근 대학입시는 학생들이 학교교육과정에 맞게 활동하고 자신의 진로와 적성에 맞는 3년의 학업설계를 짠 다음 담임 및 교과 담당 선생님과 끊임없이 의견을 나누면서 자신의 관심 분야에 대한 학업역량과 탐구능력을 키우고 지적 호기심을 확산시키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학교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일부 학생과 학부모는 사교육을 지나치게 믿고 학교를 불신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실패할 가능성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많은 학생들을 상담하고 지도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학생이 있다면 2015학년도 대학입학 수시 전형에서 좋은 결과를 얻은 장○성, 장○성 쌍둥이 형제를 들 수 있습니다. 결과부터 말씀드리면 이들 중 형은 광주교육대학교 초등교육과에, 동생은 서울대학교 자유전공학부에 진학하였습니다
  • #사제동행(師弟同行)
  • 학교 교과 성적을 올리는 쉬운 방법!
  • 필자가 예전에 고3 담임을 할 때이다. 우리 반 학생 중에 자폐증 비슷한 증세를 보인 아이가 있었다. 이 학생은 등교하면 으레 지정석인 냥 맨 앞줄에 스스로 앉아, 마치 인형처럼 미동도 없이 수업 시간에 임하였다. 수업 시간에 조는 모습을 단 한 번도 보지 못했고, 친구와의 대화도 일체 없었다. 책상 위에는 책이나 노트도 없고, 필기하는 모습도 볼 수가 없었다. 어느 날 이 학생이 결석을 하였다. 집으로 전화를 하여 학생의 아버지와 대화를 나누어 보니 결석한 이유가 담임인 필자에게 있었다. 전날 이 학생에게 필자가 “맨 앞줄에 앉아 필기를 하지 않으면 과목 선생님들의 눈총을 받으니, 뒷줄에 앉으렴. 공부가 싫으면 뒷줄에 앉아 네가 읽고 싶은 소설책을 읽어도 좋아. 매일 지루하잖아?” 하였는데, 이 말이 아이에게 스트레스를 주어 결석을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 학생의 부모님께서 덧붙인 말씀이 “우리 애는 집에서 잠자고 만화 영화만 볼 뿐, 공부는 일체 하지 않습니다. 우리 딸은 고교만 졸업하면 되니까, 책 읽어라, 공부하라는 말씀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내일은 등교시킬 테니 잘 부탁합니다.” 라고 하셨다. 다음 날 학생은 등교하여 여전히 맨 앞줄에서 목석처럼 꼿꼿하게 앉아 수업에 임하였고, 점심시간에는 홀로 식사를 하였다. 필자는 이 학생의 사정을 과목 선생님들에게 알려 과도한 관심을 갖지 않도록 부탁하였다. 그리고 다른 학생들이 이 학생을 왕따 시켜 괴롭히는 일만 없게 주의를 하였다. 그 후 중간고사를 치렀고, 성적표를 배부하면서 필자는 놀랐다. 39명 중 21등! 수업시간에 단 한 줄의 필기도 하지 않고, 시험공부는 단 1시간도 하지 않는 학생이! 집에서는 잠만 열심히 자는 학생이! 21등을 넘는 학생 중에는 과외를 받는 학생, 학원에 다닌 학생도 있었는데, 이 학생들보다 앞서다니! 혹시 자폐아 특유의 천재성이 있나? 라고 생각하여 IQ 검사 결과를 뒤적여 봤지만 뛰어난 것은 아니었다. 이 학생의 사례를 보면서 필자는 깨달았다. 내신 성적에서 학교 수업의 중요성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이후 필자는 내신 성적을 향상시키고 싶은 학생들에게 다음과 같은 조언을 한다. 요즘 대입 전형은 교과 성적이 중요하다는 걸 잘 알고 있지요? 학교 중간·기말고사는 누가 출제하지요? 학교 선생님이라고요? 그런데 시험문제 출제 당사자가 직접 강의하는 수업을 왜 외면합니까? 학원에서 각 학교의 전년도 출제 문제 등을 풀이해주며 내신 대비를 해준다고요? 내신 대비는 전년도 출제 문제로 하는 게 아닙니다. 출제 과목 선생님들이 매년 변경되고, 또 전년도의 시험문제를 그대로 출제하면 문책을 당하기 때문이죠. 그러므로 학원에서 내신 향상 보장! 내신 100% 책임! 하는 말에 현혹당하지 마세요. 시험 문제를 출제하는 선생님 의 수업시간에 집중하여 설명을 잘 듣는 것이 성적 향상의 지름길이랍니다. 밤늦게까지 학원 다니고, 과외 받고, 정작 학교 수업시간에 엎드려 자는 것은, 마치 왼다리 가려운데 오른다리 긁는 것과 같은 학습태도이지요. 그러나 이렇게 조언을 해주어도 학생들의 학습 태도는 좀처럼 변화하지 않는다. 학원을 여전히 끊지 못하고, 학교 수업시간에는 여전히 열심히 졸고 있다. 그 많은 공부를 밤늦게까지 하느라 힘들고 지쳐서.... 결국은 공부가 공부를 발목 잡는 셈이다. 그래서 학부모님들에게 당부한다. 자녀들에게 잠 잘 수 있는 시간을 주십시오. 자녀들이 밤늦게까지 공부하고 다음 날 낮 시간에도 집중해서 공부하기를 기대하는 것은 부모님의 지나친 욕심입니다. 저녁에 못잔 잠은 어떤 식으로든 낮에 보충해야 하거든요. 결국 공부의 총량은 마찬가지랍니다. 또한 수업 시간에 졸게 되면 중요한 수업 내용을 놓칠 뿐만 아니라, 선생님의 눈총을 받기 마련이죠. 조는 학생을 예쁘게 봐줄 선생님은 없기 때문에, 학생들의 수업 태도를 적는 학생부의 ‘세부능력특기사항’에서도 좋은 평가를 기대할 수 없습니다. 특히 낮에 조는 습관을 가진 학생들은 시험을 망칠 수가 있습니다. 요즘 시험 문제는 이해력과 사고력을 측정하는데, 머리가 맑아야 실수를 하지 않지요. 낮에 조는 것이 체질화된 학생들은 시험도 비몽사몽간에 볼 것입니다. 그러므로 빛과 소음이 차단된 집에서 충분히 숙면을 취해, 낮에 보는 시험에서 자신의 실력을 최대한 발휘하게 하십시오. 지극히 당연한 이 말을 명심하세요. “밤에는 잠자고 낮에는 공부하자.”
  • #사제동행(師弟同行)
  • 자신에 대한 당당함, 그것은 아름다움입니다.
  • 유수부쟁선(流水不爭先) 이라 했으니, 흐르는 세월을 그 어찌 멈추게 할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흐뭇하게 시간을 돌이켜 추억할 수 있는 아름다움이 있다면, 이는 시간을 잠시나마 멈추게 할 순 있지 않을까? 하고 상상에 젖곤 합니다. 거창하게 교육적 사명감 운운하며 교육을 논하던 첫 출발의 다짐을 생각하면 때론 실소가 나오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그 현장에 함께 할 수 있었기에 인간관계의 행복한 묘미를 공유할 수 있음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인생을 사랑하듯 시간을 아끼고 활용하는 사람이 당당한 ‘나’일수 있다는 소박한 생각이었습니다. 그리고 내 사랑하는 아이들을 향해 식지 않는 열정으로 다가가고 싶은 작은 바람이었습니다. 이러한 연유로 시작된 교직 생활은 제 자신에게 소중한 의미로 자리매김 되었던 순간들이었습니다. 이런 소박한 생각이 일관되게 실천되고, 더불어 그렇게 의미 부여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교육현장을 호흡하고 있습니다. 진정 사람다운 사람, 즉 인격의 소유자가 많을 때 그 사회의 미래는 희망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결과만으로 평가되거나 교육정책 변화에 따라 올바른 교육적 소신이 때론 일탈적인 행위로 간주될 때 가슴 아프기도 했습니다. 결코 화려한 대입결과가 인생의 성공을 담보해 주지는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되는 한 제자의 성공적인 삶의 전개과정을 지켜보면서, 그래도 나름 소신을 갖고 인간적 신뢰를 쌓았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즉, 기성세대의 잣대로 독창적인 의견이 실현 가능성이 없다거나 위험한 생각으로 간주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1996년 당시도 수능 성적에 의해 서열화 된 기준으로 상급학교 진학을 특차, 정시전형으로 구분하여 지원하던 시기였고, 이 친구 역시 이런 일련의 과정 속에서 고뇌하였습니다. 현실과는 동떨어진 부모님의 무리한 기대와 달리 본인의 한계로 인해 무척 괴로워하던 모습이 생생하게 기억됩니다. 어느 덧 불혹의 나이에 이르게 된 그 친구와 정담을 나누다 보면, 입시로 인해 고민했던 과정보다도 오히려 친구들과 끈끈하게 어우러졌던 인간적 관계를 추억으로 공감하는 부분이 더 실감나곤 합니다. 여름 방학 보충수업 종료 후에 학급 구성원 20여명과 함께 했던 명성산행은 지금도 잊을 수 없는 아찔함이었습니다. 맨손으로 폭포를 기어오르던 모습이 한편 재미있기는 했지만, 그 속에서 위 친구의 미끄러짐 추락 사고는 지금도 정신을 번쩍이게 합니다. 다행히도 큰 사고로 연결되지 않았기에 망정이지 교직생활의 연속성을 걱정해야 할 엄청난 사건이었습니다. 수능 종료 후에 고3 대부분이 함께 했던, 지금 판단하면 처음이자 마지막이 되어버린, 졸업여행에서의 속리산 문장대 산행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여차여차 사연에 의해 어두워진 하산 행을 10여명이 하나 되어 무사히 예정된 장소에 도착했을 때의 인간적 유대감도 마치 지금처럼 실감나게 기억됩니다. 적지 않은 교직 생활동안 소소하고 정겨운 추억들이 있기는 하지만, 돌이켜 생각할 때 이 친구처럼 에피소드가 많이 연결된 것은 상호간 행운이 아닐 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당시의 추억을 운운하기에는 만족스럽지 않은 수능 결과로 예기치 않은 대학을 지원해야 하는 것이 현실이었고, 이 또한 합격으로 바로 연결되지 않았기에 가슴 아팠던 순간이기도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졸업식에서의 아쉬움은 그 어느 것보다도 크게 와 닿았습니다. 이후 온갖 상념들을 뒤로 한 채 재수를 향한 결심을 담아 비슷한 처지의 3명의 친구들과 설악 산행을 하기에 이릅니다. 복잡한 심경을 대신하듯 그때의 울산바위 산행 길은 비바람이 얼마나 심하던지……. 하지만, 감내한 보람 덕인지 울산바위 정상에서 최종적인 추가합격 통보 전화를 받으면서 하나 된 감동의 어우러짐은 영원히 기억될 것입니다. 일련의 과정을 통해, “심지 않은 데서 수확할 수 없고 심은 만큼은 반드시 거둔다.”라고 하는 사실을 절실하게 느끼게 되었습니다. 다시 말해, “뚜렷한 목표의식과 인내심을 가지고 꾸준히 노력한 학생이 역시 결과도 의미 있고 훌륭했다.”라고 하는 점입니다. 함께 어우러지면서 자신의 진로와 삶에 대하여 주체적으로 느끼고 고민하는 과정이 있었기에, 성공적인 대학 생활을 하는 바탕이 되었다고 판단합니다. 비록 학기 초의 기대와는 다소 거리감이 있었지만, 자신이 선택한 진로에 대하여 당당할 수 있었기에 불혹의 나이에 펼쳐지는 삶의 과정이 성공적으로 평가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마무리하면서, 사회적으로 높은 인지도를 지닌 기업에 취업을 하고, 아름다운 고교 선생님을 배우자로 만나 귀엽고 깜직한 아들과 더불어 행복한 가정을 가꾸어 가고 있는 소중한 제자에게 아낌없는 격려와 박수를 보냅니다. 더불어 그 추억을 행복한 상상으로 공감하고 공유할 수 있어 얼마나 행복한지 모릅니다. 지금 당장 현실이 내 자신의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더불어 자신의 빛나는 잠재 능력이 드러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여하한 상황에서도 현실과 적당히 타협하여 좌절하기보다는 자신의 참 가치를 찾고자 하는 진짜 일에 결코 게을러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한계를 부끄러워하며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더 깊고 따뜻하게 알아 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더불어 두려워하지도, 서두르지도, 부끄러워하지도 않으면서 자신의 길을 끝까지 가야 합니다.
  • #사제동행(師弟同行)
  • 잊을 수 없는 제자
  •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이사야 49:15) 성경의 말씀처럼, 내게도 잊을 수 없는 아이가 한 명 있다. 나를 참 많이 힘들게 했던, 한편으로는 내게 큰 깨달음을 주었던 한 아이가 있다. 이 아이는 고등학교를 재수하여 들어왔다. 그의 수첩엔 재수하면서 함께 놀던 남녀 친구들의 명단과 연락처가 200명이 넘었다. 머리는 늘 삭발이었고, 눈가에는 칼자국이 나 있었다. 한 마디로, 험상궂을 뿐만 아니라 가까이 가기조차 힘든 얼굴이었다. 출석부에는 출석한 날보다 결석한 날들이 더 많았다. 주말이나 공휴일이 끼면 으레 그 앞뒤를 끼어서 4~5일씩 결석했다. 당시 수업 일수가 220일 이상이고 74일 이상이면 퇴학도 시킬 수 있었던 것에 비춰보았을 때, 이 아이의 학교생활은 매순간 위태로웠다. 자퇴서를 한 8번은 받았던 것 같다. 거의 매달 받은 셈이다. 각서는 수도 없이 받았다. 이 아이에게는 꿈도 없었고, 하고 싶은 일도 없었다. 그냥 친구들과 어울려 놀기만 했다. 많이 혼을 냈다. 다시 한 번 이렇게 결석하면 퇴학시킬 수밖에 없다고 협박도 해 보았다. 그러나 아무리 혼을 내고, 자퇴서를 받고, 각서를 받아도 이 아이는 변하지 않았다. 아이의 어머니를 만나 협조를 구해보기도 했지만, 변하지 않았다. 담임으로서 내가 얼마나 무력한지에 대해 생각하고 또 곱씹을 수밖에 없었다. 참 많은 고민을 했다. 이 아이를 어찌할 것인가? 이 아이는 변할 수 있을까? 앞으로 이 아이는 무엇을 하며 어떤 삶을 살아갈 것인가? 이 아이의 선생으로 나는 무엇을 해 줄 수 있을까? 안타까웠다. 그러나 생각하고 또 믿었다. 이 아이도 집에서는 희망이고 그 무엇보다 귀한 아이라고. 그리고 이 아이도 타고난 달란트가 반드시 있을 거라고. 믿음이 약해지려고 할 때마다 기다리고 기도했다. 결석일수를 살펴보니 더 이상 학교를 다닐 수 없을 지경에 이르렀다. 내가 해 줄 수 있는 길은 출석관리를 해 주는 것밖에 없었다. 하지만 끝까지 믿었다. 또 기다렸다. “네가 무슨 일을 하든지 나는 너를 믿는다. 무엇을 해도 좋으니 너에 대한 내 믿음만은 깨지지 않도록 해라.” 다행히도 이 아이는 2학년에 올라가서는 결석일수가 많이 줄었다. 3학년에 올라가서는 더 줄었다. 졸업식이 끝나고 운동장을 걸어가는데 어떤 아이가 뛰어오더니 “선생님, 고맙습니다.”하고 내게 절을 한다. 바로 그 아이였다. 졸업식 다음 날 또 학교에 와서는 내게 필리핀으로 유학 가게 되었다고 인사를 하였다. 그렇게 공부하지 않던 아이가 유학을 간다한들 얼마나 공부할까 사실 의문이 들기도 했다. 그래도 장한 결정을 격려하며 축복해 주었다. 수년 후 그 아이는 W호텔의 매니저급으로 화려하게 돌아왔다. 업계에서 알아주는 인물로 성장해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국내 매리어트 호텔의 몇 안 되는 매니저가 되었다. 어느 날인가는 감격에 젖은 목소리로 내게 전화를 걸어왔다. “선생님, 저 교수가 되었어요.” “…” 정말 가슴이 뭉클했다. 말할 수 없는 감동이 밀려왔다. 이렇게 변할 수 있구나! 이 아이는 이제 자기 사업을 하는 어엿한 대표이사가 되었다. 그 많은 어려움과 갈등, 힘든 결정의 순간순간, 번민의 시간을 갖게 했던 이 아이. 참고 인내하며 기다리는 일 외에 해줄 게 없었던, 그래서 무기력하다고 스스로 생각할 수밖에 없던 내게 이 아이는 많은 깨달음을 주었다. 교사는 맡은 아이들을 인정하고 또 차별 없이 믿어주고 그 가능성을 바라보며 격려하고 축복해 주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몸소 알려 주었다. 그리고 나는 믿는다. 이 땅의 선생님들 역시 다음 시 속의 화자처럼 그런 마음을 갖고 있다고 믿는다.
  • #사제동행(師弟同行)
  • 선생님이 가장 좋아하는 제자는 어떤 사람인가요?
  •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 나의 좌우명이자 교실에서 학생들에게 평소에 내가 입에 달고 사는 얘기다. 그 동안 너무 흔하게 인용된 구절이어서 식상할 수도 있지만 한 해 두 해 교직 생활을 하면서 학생들과 함께 생활하다보면 이 좌우명이 더욱 절실히 다가올 때가 많다. 학생들은 종종 나에게 이런 질문을 한다. ‘선생님이 가장 좋아하는 제자는 어떤 사람인가요?’ 학생들도 아마 내 입에서 나올 답을 뻔히 알고 있으면서도 그렇게 질문하는 것 같기도 하다. 물론 그 질문에 대한 답은 그들이 예상하는 것과 같이 뻔하다. ‘공부 열심히 하는 학생!’ 하지만 좀 더 덧붙여 얘기한다면 ‘어느 곳에 있든 그 자리에서 내가 가진 정열의 한 방울도 남기지 않고 모두 소진하겠다는 자세’를 가진 학생이다. 25년간(1992년 ~ 현재)의 교직생활 중 특별히 기억에 남는 제자는 헤아릴 수 없이 많다. 나의 알량한 잣대로 감히 평가할 때 매력이 있는 학생이든 지극히 평범한 학생이든, 또 속을 썩인다 싶은 학생이든 모든 학생들을 차별 없이 아끼고 애정을 갖고 지도해야 마땅하겠지만 솔직히 말하면 내 맘에 쏙 드는 학생이 없는 건 아니다. 그 ‘내 맘에 쏙 드는 학생’이 바로 김00 군과 같은 학생이다. 꼭 공부가 아니어도 좋다. 수학여행이나 수련회에 가서 학급대항 장기자랑을 할 때는 온갖 분장을 다해서 우리 모두를 배꼽 잡게 하고, 온갖 장비를 다 갖고 와서 마술을 보여주면서 우리 모두의 입을 딱 벌리게 하고, 당사자가 속에 들어 있는 듯 기가 막힌 성대모사를 하는 학생, 그리고 체육대회 때는 목이 터져라 응원하고 모든 경기에 몰입하는 학생, - 나는 이런 학생들을 보면 나는 왜 저 시절에 저렇게 살지 못했을까를 생각하며 한편 부럽고 또 부끄럽고 한없이 멋지고 사랑스럽다. 뿐만 아니라 야간 자율학습 시간에 내가 지나가도 눈길 하나 줄 틈 없이 책에 빠져 있는 학생을 보면 또 어떤가. 게다가 그런 학생이 겸손까지 하다면... 김00 군은 바로 이런 학생이었다. 유난히 수줍음을 타고 말수가 적은 학생. 하지만 수업 시간만 되면 단 한 번도 조는 적 없이 내가 아무렇지도 않게 흘리는 얘기까지 빠짐없이 메모해 두고 기억하는 학생. 나는 이 학생이 왜 전교 1등이 아닐까 하는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내 이 학생이야말로 전교 1등이어야 마땅하다, 아니 전국 1등이어도 손색이 없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그럴 무렵 우연히 대입 면접 준비를 하는 교실에 들어갔다가 그런 의문에 대한 힌트를 얻게 되었다. 어떤 질문을 해도 그 학생의 답은 1개의 문장으로 끝이었다. ‘요즈음 한창 사회적 문제로 떠오르는 교실 붕괴의 원인은?’ ‘... 우리 학교에서 교실 붕괴는 없습니다.’ ‘급우 간에 갈등이 생겼을 때 어떻게 해결하겠나?’ ‘한쪽이 일방적으로 양보하고자 하는 마음만 있으면 갈등은 생기지 않습니다.’ - 이런 식이었다. 어느 날 학생을 교무실로 불러서 얘기를 좀 하자고 했다. 김군은 매우 조심스러운 태도로, 약간 겁먹은 표정으로 조용히 앉아있었다. ‘김00! 매사에 자신감이 없는 것 같은데 무슨 이유라도 있나?’ ‘...예, 저는 다른 애들에 비해 머리가 나쁜 것 같습니다.’ - 아, 나는 이 말을 듣고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듯 멍한 기분이 들었다. 물론 성적 면에서 전교 30등 내외의 등수를 유지하는 학생이니까 최상위권까지는 아니더라도 꽤 공부를 잘 하는 학생 축에 속한다고 생각했지만 내가 평소 그에게 갖고 있던 불만만큼 김00 군도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다는 사실에 적이 놀랐다. ‘왜 자신을 그렇게 생각하지?’ ‘...저는 나름대로,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저보다 그리 열심히 하지 않아 보이는 친구들이 저보다 훨씬 성적이 좋은 걸 보면서요...’ 그 후 그 학생과 꽤 긴 시간 동안 얘기를 나누면서(물론 그 긴 시간 동안 그 학생은 별로 많은 얘기를 하지는 않았지만) 나는 더욱 오기가 발동하지 않을 수 없었다. ‘김00이 최소한 우리 학교 전체에서 1등을 못하면 그것은 바로 나와 우리 학교 선생님 모두의 책임이다.’ 내가 이런 당돌한 생각을 한 이유는 어찌 보면 김00이 평소에 보여주고 있는 수업 태도를 비롯한 모든 학습 태도를 통해서 볼 때 전교 30등 정도에 머물러 있을 수밖에 없는 이유를 분명히 말해줄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었는지 모른다. 중간고사든 기말고사든 최소한 1달 전부터 내신공부를 시작해서 모든 시험 과목에 대해 그것도 꼼꼼히 10번을 보지 않고는 시험을 치른 적이 없다는 김00. 나는 이 김00에게 특별히 해줄 말이 없었다. 다만 ‘뭐라고 꼭 꼬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내 교직 경험이 헛된 것이 아니었다면 너는 분명히 1등이어야 한다.내 이 말을 믿어줄래?’ ‘... 네...’ 그 후로도 내가 한 그 말을 확신할 수 있는 결과가 선뜻 나오지는 않아서 내심 불안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지만 아무튼 결론부터 말하자면 최종 결과는 수능에서 전교 1등을 했고 가슴 졸이는 과정을 거쳐 00대(무슨 대학인지 독자들이 상상해 보시길...) 법학과에 합격하게 되어 합격 날 우리 둘은 감격의 포옹을 했다. 누구든 자신이 하고 있고 하고자 하는 일(물론 그 일은 나 자신뿐 아니라 국가와 인류를 위해서도 좋은 일이어야 한다는 것. 그게 전제되지 않으면 장차 히틀러가 되거나 이완용이 될 수도 있는 것이므로...)에 미친 듯 몰두하고 있는 모습은 얼마나 보는 이를 흐뭇하게 하는가? 나도 김00 군처럼 나부터 최고의 아빠가 되고 남편이 되고 자식이 되고, 또 스승이 되고자 내가 하는 일에 미친 듯 몰두해야겠다고 다짐한다.
  • #사제동행(師弟同行)
  • 대기업 직원 vs. 교사, 현명한 선택
  • 제가 교사로서의 길을 걷게 된 것은 졸업년도에 비해 남들보다 늦은 1995년 3월 1일 부터입니다. 지금은 교사가 되는 것이 무척 어렵고 모든 사람들의 로망이지만 제가 대학을 졸업했던 87년 그 당시만 해도 사범대학을 나온 대부분의 남학생들은 학교를 선택하기보다는 대기업이나 공기업을 선호하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런 이유로 대기업에 입사를 하게 되었고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분야에서 7년여 간의 직장생활을 하다가 우연한 기회에 현재 재직하고 있는 양서고에 오게 되었습니다. 직장을 바꿀 때 주위 사람들의 만류에도 나름의 생각을 가지고 학교현장에 왔는데 ‘교생실습’에서는 느끼지 못했던 막막함과 허탈함이 밀려오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학교 위치는 남한강과 북한강이 만나는 양수리에 위치하여 물 맑고 공기 좋은 곳이었지만 정작 학생들은 순박하고 착한 지역 출신학생들이 있는 방면, 갈 곳이 없어 마지막으로 선택한 농어촌 후기학교에 내몰린 그런 표정의 학생들과 공부와는 담을 쌓은 일탈을 자주하는 학생들도 있었습니다. 그러기에 수업 준비를 열심히 하고 학생들의 진로에 대하여 고민하기보다는 대충 수업 채우고 일과 후나 주말에는 여가활동에 치중하는 직업인으로서의 교사 생활에 익숙해졌습니다. 그러던 중 2002년도에 재단이사장님께서 용어도 생소한 ‘전국단위 자율학교’라는 새로운 형태의 고교모델을 교육부로부터 지정받아 오시게 되었고 학생선발에 대한 기획과 방법을 총괄하는 중책을 맡게 되었습니다. 이후부터 학교가 달라졌고 준비된 실력 있는 학생들이 서울 및 경기지역 대도시뿐 아니라 전국에서 오게 되었습니다. 그 학생들 중에는 처음 모집할 때 다른 학부모님들을 안심시켜 주기위해 사례되는 성적으로 많은 지원자들에게 안도감을 준 부천에서 온 최**이라는 학생도 있었지만 2004년도 서울 은평구에서 온 4명의 학생들이 있었습니다. 그 학생들은 유치원부터 중학교까지 같은 학교에서 생활하고 온 절친 이었는데 남자답게 멋있게 생겼고 공부도 참 열심히 하는 학생들로, 이들 중 두 명은 1학년과 3학년 때 담임을 맡기도 했습니다. 제가 초등학교시절 담임 선생님과 교장선생님으로부터 항상 들었던 말씀이 “너는 장군감이다”라는 것이었는데 그 것이 제 마음 속에 항상 남아있었지만 현실에 반영을 못한 아쉬움이 있었기에 담임으로 데리고 있던 두 학생들을 육군사관학교로 진학하기를 권유했습니다. 일종의 대리만족이라 할까요? 그 학생들은 열심히 공부함은 물론 운동신경도 남달라 항상 많은 여학생들로부터 인기도 최고였습니다. 그래서 학교에서 금기시되는 이성교제를 1학년부터 한 학생이 있었는데 지금 학교현장에서 그랬다면 신문에 날 일이지만 사랑의 매라는 명목으로 한 여학생과 그 남학생을 무척 많이 체벌하였습니다. 저희 학교가 남녀공학이면서 전교생 기숙사 학교라 앞서 기술한 것처럼 이성교제는 'JP(졸라풍기문란)'라는 용어로 하지 못하게 하였는데 그 이유는 “집 떠나 시골 학교에 온 근본 목적을 잊지 말자”라는 취지에서 공부이외의 것은 강력하게 제재하는 상황이었습니다. 또한 그 남학생은 부모님께서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못하셔서 기숙사비용도 체납하시거나 수업료가 미납되는 일이 종종 반복되었지만 부모님들께서는 그 학생에게는 기죽지 않도록 여러 가지로 애쓰시는 모습이 보였고, 제가 학생에 대하여 또 다른 속사정도 잘 알고 있었기에 좀 더 강하게 키우고자 했습니다. 그런 이유에서인지 이 학생은 제 바람처럼(부모님께서도 넉넉하지 않은 경제문제로 사관학교 진학을 원하심) 육군사관학교에 지원하였고 당당히 우수한 성적으로 합격(양서고 최초합격- 2017년 현재 60여명 졸업 및 재학 중)하였고 멋진 사관생도가 되었습니다. 1학년 생도시절에는 스승의 날 행사에 저를 초정하여 학교행사에 참여할 수 있는 계기도 마련해 주었고, 모교 후배들을 위한 입시설명회 때는 학교에 방문하여 후배들에게 사관생도가 되는 길과 앞으로의 비전 등을 설명해줌으로써 많은 학생들이 사관학교(육해공, 간호)에 응시하여 합격할 수 있도록 길을 터 주었습니다. 그렇게 스승과 제자 사이로 교감을 갖고 생활하던 2015년 6월 어느 날 이 학생이 ‘본인이 결혼한다, 그래서 선생님께 신부를 인사시키고 싶다’라고 연락이 왔습니다. 그 당시 동급생 두세 명과 만나는 자리에서 결혼식 주례를 부탁하기에 한편으로는 내가 벌써 주례를 할 나이가 되었나하는 생각에 당황스러웠고 한편으로는 나를 정말 스승으로 생각한다는 생각에 기쁘게 생각했습니다. 제자들이 결혼한다고 남학생이든 여학생이든 상대 배후자들을 인사시킨 적은 여러 번 있었지만 주례서는 것은 가슴 떨리는 일이었습니다. 아무튼 그해 9월에 육군사관학교 생도회관에서 많은 하례객 앞에서 떨리는 마음으로 주례사를 하였고 결혼식을 잘 마무리 하였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늦었지만 교사의 길을 선택한 것은 참 잘한 것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첫 직장으로 대기업에 다니면서 인정받는 직원으로 생활하였고 보람도 느꼈었지만 나보다 나은 후배들을 양성하고 그 제자들이 사회발전을 위해서 다양한 분야에서 노력해준다는 사실에 더욱 뿌듯함을 느끼게 됩니다. 물론 저희 학교도 짧은 기간에 전국에서 40위권(자사고 특목고포함 2500개 학교 중) 이내로 드는 학교로 발전하였고 그런 일에 제가 미력하나마 힘을 보탠 것도 사실이지만 그 보다 더 중요한 것은 급변하는 사회에서 인간으로서 본연의 자세를 잃지 않고 남을 배려할 수 있는 따듯한 마음과 봉사하는 정신, 그리고 우리나라를 올바른 곳으로 이끌 수 있는 리더십과 자긍심을 갖는 훌륭한 인재들을 길러낸다는데 더욱 자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지금 예전 다녔던 회사의 몇 남은 친구들이 임원으로 있지만 항상 부러운 눈으로 절 대하는 모습, 그리고 매년 인간미를 갖춘 학생들이 입학하고 있고, 그 학생들과 같은 공간에서 생활하며 생각도 젊어지고 모습도 젊어진다는 생각에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라는 생각으로 그 속에서 앞으로도 더욱 후배양성에 헌신하고자 합니다.
  • #사제동행(師弟同行)
  • 꼰대와 어른 사이
  • 오랜 교직생활을 통해서 학생들과 거리낌 없이 대화하고 그들과 생각을 공유하면서 그들의 고민을 들어주고 많이 사랑하고 싶은데 대화가 시작되면 진심은 숨어버리고 왠지 모를 거리감과 어색해지는 분위기만 남게 되는 경우가 많다. 자녀들과의 대화도 마찬가지다. 대화를 시작하면 어느새 거리감이 생기고 ‘왜 나의 진심을 모를까’하는 생각을 할 때가 많다. 그들의 행복을 위해 살아오면서 느낀 경험과 지혜를 말하고 있는데 아빠의 입장은 모두 구식이고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으로 여겨지는 느낌이다. 졸업한지 30년이 되는 기수의 졸업생들이 홈커밍데이 행사를 열었다. 졸업생들이 재학당시 담임 선생님과 수업을 하신 여러 은사님을 초청한 자리였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과 반가워 환호하며 서로를 확인하는 시간이 흘러갔다. 오랜만에 뵙는 은사님들께 큰 절을 올리는 제자들과 너무 반가워 서로 포옹하며 그 동안의 못 다한 정을 나누는 훈훈한 시간을 가졌다. 세월에 못 이겨 재직당시의 당당함은 없어지고 연로하신 모습이 안타까워 제자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숙연함도 있었다. 공식적인 행사가 진행되고 옛날을 추억하는 자리에 한 녀석이 술기운에 용기를 얻었는지 불쑥 재학당시의 서운함을 토로했을 때, ‘그래 참 미안하다 그 때는 그럴 수밖에 없었구나.’ 솔직한 심정으로 제자에게 사과하시며 왠지 서운함과 미안함이 교차하는 표정을 지으시는 선생님도 있었다. 지난해에 명예퇴진을 신청한 선생님과 차 한 잔 나누면서 명예퇴진을 결심하게 된 이유를 물었다. 어렵게 입을 여신 선생님께서 하신 말씀은 학생들이 지도에 따라주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원로 교사로서 학교에 보탬이 될 일이 무엇일까?’ 고민 끝에 시작한 것이 인성교육이었는데, 욕을 먹더라도 학생들이 바른 인성을 갖도록 기본 생활 교육부터 시작을 했다고 하신다. 수업 전에 잠시 시간을 내어서 예절이나 인간의 도리 등을 지도해보았지만 학생들은 전혀 관심이 없고 오히려 수업조차도 열중 하지 않으니 더 이상 교단에 서는 것은 무의미하게 여겨졌고, 여기서 그만두는 것이 좋겠다는 판단을 하게 되었다는 말씀을 하셨다. 요즈음 학생들이 이기적이고 예의가 없어 선생님의 진심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에 허전하고 씁쓸한 생각이 들었다. 몇 년 전에 담임을 맡아서 종례 때마다 오늘 수업 열심히 했느냐 묻곤 했는데 대부분은 습관적으로 ‘네’ 라고 대답을 잘하는데 그 중에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은 하지 않고 딴 짓을 하던 아이가 있었다. 그 녀석이 졸업하고 대학생이 되어서 학교를 방문하여 모처럼 즐겁게 지내온 이야기를 하던 중에, 재학시절 종례시간에 언제나 선생님께서 하신 말씀 중에 오늘 열심히 했는가를 물으셨을 때 항상 ‘요놈들 오늘 딴 짓 하지 않고 제대로 수업 했는가’로 들려서 못마땅했다는 말을 했다. 학생의 입장에서 담임의 생각을 받아들이는 것이 참 다를 수 있겠구나 싶었다. 진심을 담아 오늘 수고했다 오늘도 열심히 해서 감사하다는 마음을 담아 이야기했지만 받아들이는 학생 입장에서는 전혀 다른 반응을 보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요즘은 학교에서 원로교사의 위치, 가정에서 아버지의 권위를 이야기하면 소위 꼰대가 되기 쉽다
  • #사제동행(師弟同行)
  • 담임보다 더 담임 같았던 실장
  • 어디서나 눈에 띄는 학생이었습니다. 남과 다른 외모를 가졌기 때문에 늘 다른 사람의 시선에 대해 부담감을 가지고 있는 학생이었지만 절대 뒤로 숨지 않았습니다. 입학하자마자 실시된 골든벨 녹화방송에서는 남과 다른 외모에 대한 자기 생각을 직접 전했고, 다채로운 사연을 가진 사람들과 공감하고 그들의 아름다움을 알려주고 싶다며 봉사활동, 동아리 활동, 학생회 활동, 교외 활동 등 항상 적극적으로 임하던 학생이었습니다. 스스로 극복하고자 하는 마음을 가졌던 학생은 기자를 꿈꾸며 더 넓은 세상의 사이사이를 더 자세히 관찰하고 의미를 찾아내 소통하려 노력했습니다. 학생이 2학년이던 때 방과후 학교 시간을 통해 학생을 처음 만나게 됐습니다. 학생이 다른 과목에 비해 널뛰기하는 수학 점수 때문에 힘들어한다는 사실을 건너 듣게 됐고 참고서 한 권을 건네주며 풀리지 않는 문제가 있으면 언제든 찾아오라 조언했습니다. 제가 어려웠는지 본인이 부담스러웠는지는 알 수 없으나 학생은 감사 인사만 했을 뿐 따로 찾아오지 않았고 그렇게 시간이 흘러 3학년에 진급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학생의 담임이 되었고, 모든 학생들의 지지를 받고 있던 학생이 실장이 되었습니다. 처음 맡게 된 고3 여학생 담임 자리는 모든 언행이 조심스러웠고 부담스러웠습니다. 시간은 흐르는데 마음대로만 되지는 않는 학생들과의 관계를 어떻게 풀어가야 할지가 가장 큰 고민이었습니다. ‘언젠가 나중이 되면 내 맘을 알아주지 않을까’ 하는 안일한 생각으로 제 마음을 직접 표현하지 못한 채 오래도록 혼자 가슴앓이를 했습니다. 그때 학급 학생들과 제 사이에서 서로의 말과 마음을 전해주느라 고생했던 실장이 바로 이 학생입니다. 표현에 서툴던 제가 많은 고민으로 학생들에게 다가서기를 주저하던 사이, 오히려 힘든 수험생 생활 중에도 저를 걱정하며 챙겨주는 모습에 고맙고 미안했습니다. ‘언제나 학급을 위해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겠다’ 던 이 학생은 늘 학급 학생들을 위해 동분서주했습니다. 책임감이 강했던 실장을 아이들은 신뢰했고 학급에는 위기가 숱하게 찾아왔지만 언제나 모두의 말에 귀 기울이고 극복하려 노력하는 믿을 수 있는 실장이 있어 참 고마웠습니다. 수험생 시절은 대부분 공부, 시험, 원서접수만으로도 충분히 바쁜 때입니다. 그렇지만 이때 우리 학급은 1년의 긴 레이스에서 일상 속의 작은 일들을 만들고 즐기면서 함께 조금씩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체육대회 때는 화려한 응원을 선보여서 전교의 눈길을 끌었고, 졸업앨범은 온통 저희 학급 학생들이 장식했습니다. 틈틈이 제게 힘내라며 다 같이 편지를 써줬고, 제가 가장 좋아하는 김말이와 어묵꼬치를 직접 준비해 밥상을 차리기도 하는 등 많은 이벤트를 벌였습니다. 수능을 4일 남기고는 본인들 손으로 벌어 제 생일도 챙기고 간식비도 벌어보겠다며 헌책을 직접 나르기도 했습니다. 수 없이 많았던 작은 추억들은 분명 함께했던 모든 학급 구성원에게 소중한 기억으로 남았을 겁니다. 힘든 시기에 함께 힘내는 법, 서로를 위하는 법을 스스로 터득해 친구들을 북돋을 줄 아는 학생이었습니다. 학생의 담임이 되고 조금씩 가까워지면서 학생에게 다시금 수학 공부를 돕겠다고 제안했습니다. 그리고 그제야 학생은 그동안 교무실로 찾아와 수학 질문을 하지 않았던 이유를 털어놨습니다. 누군가에게 자신의 민낯을 보이기 어려운 것처럼, 학생은 자신 없는 과목에 민낯을 보이길 두려워했습니다. 무엇보다 꾸준히 누군가 함께해주지 못할 거라 생각해왔다고 말했습니다. 학생과 머리를 맞대고 찾은 해결법은 빈 교실에서 야간자율학습 시간을 통해 꾸준히 질문하는 것. 매일 밤 빈 교실을 찾아 전전해야했지만, 수학이 학생의 꿈을 발목 잡지 않길 바랐기에 힘들지 않았습니다. 쉽게 실력이 늘지 않는 과목이었지만 저도 학생도 포기하지 않았고 학생이 수시 최종합격을 하기 전까지 야간 수학 공부는 계속됐습니다. 늘 어떤 위기에도 강인하고 흔들리지 않을 것 같던 학생이 우는 모습을 처음 보게 된 것은 수시 면접을 앞둔 때였습니다. 담임인 저에게도 때로는 직설적인 비판을 망설이지 않았던 학생이었는데, 모의 면접 상황에서 다른 선생님이 학생의 외모에 대해 질문하자 학생은 갑자기 눈물을 쏟아냈습니다. 눈물의 의미가 그간 속에 묻어둔 부담감이었는지, 남들의 시선을 홀로 견디며 쌓아온 서러움이었는지는 알 수 없었습니다. 눈물을 주체하지 못하는 학생을 데리고 자리를 옮겨 제가 처음 고향을 떠났을 때의 이야기, 처음 발령받은 이야기, 처음 우리가 만난 날 등 많은 이야기를 해주면서 눈물을 그치길 기다렸습니다. 저는 그 날 학생을 한참 바라보면서 ‘상처 있는 소녀가 그동안 참 잘 버텨왔구나‘ 생각했습니다. 제가 해준 말을 후에 무엇 하나 기억하지 못하더라도 학생이 앞으로 더 당차게 살아가는데 제가 미약하게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하고 바라본 날이었습니다. 졸업식 전날 밤, 3학년 담임 선생님들끼리 모여 간단한 회식을 하다가 한 선생님께서 학생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많은 선생님께 사랑받았던 학생은 선생님들이 돌아가며 하는 짓궂은 전화에도 그 마음을 아는지 묵묵히 듣고 있었습니다. 한사코 거절했지만 한 바퀴 돌아 제게 넘어온 휴대전화에 저는 ‘1년 동안 많이 아꼈다, 고마웠다’ 고 마지막을 앞두고서야 처음으로 겨우 제 마음을 전했습니다. 다음 날 졸업식을 마친 후 저를 다시 찾아온 학생은 작은 책을 한 권 제게 내밀었습니다. 평범하지 않았던 3년이 다시 기억 속에 평범하게 기억될 날이 되었을 때 작은 것, 소중한 것을 잃고 싶지 않아 수능 이후 틈틈이 지난 고등학교 시절을 돌아보며 일기 쓰듯 써내려갔다는 ‘기억을 걷는 시간’이라는 자전 수필이었습니다. 지금도 학생이 건네준 책을 종종 들춰보며 소중했던 이 모든 것들을 다시 추억하곤 합니다. 학생은 결국 남과 다른 외모에 관해 묻는 면접질문에 울지 않고 이런 답을 했다고 합니다. 세상의 사이를 관찰하고 의미를 찾아내는 기자가 되고 싶다던 학생은 더 단단해졌고 더 멋진 어른으로 성장해 탐사보도 기자가 됐습니다. 남들이 찾지 못하는, 더 나은 실마리를 제시하고자 스스로 매번 도전하고 부딪치며 살아가고 있는 학생의 신념은 언제나 귀감이 됩니다. 학생을 만나 ‘함께 나누는 신념’의 소중함을 절실하게 느꼈기에 학생이 앞으로 어떤 삶을 살아가게 될지 정말 기대됩니다.
  • #사제동행(師弟同行)
  • 입학사정관들의 TIP
  • “선생님들 교내 교과관련 교내대회 등을 하다보면 매번 포상을 못 받는 4등이나 5등하는 학생이 있지요. 이 학생들 교과세부특기사항은 어떻게 써주시나요?” “그대로 써주세요” 모두 의외라는 듯 집중하는 선생님들을 보면서 이런 기회 만들기를 잘했구나 생각했다. “세밀한 관찰과 세밀한 기록, 즉 작은 차이가 합격을 결정합니다 …” “학생부 종합전형의 관점이 과거에는 숫자에 많이 주안점을 두었으나 현재는 글자, 특히 선생님들의 세밀한 관심을 통해 발견한 내용을 객관적으로 기술한 문장을 중시합니다.” …… 고등학교에 근무하는 선생님들이 3,000여가지도 넘는 대학들의 입시형태를 모두 알기란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열심히 공부하면 마스터 할 수도 없다. 오랜 기간 동안 경험을 한 선생님들로부터 아름아름 알아가는 것이 학교 현장의 실상이다. 그것도 관심 있는 선생님이나 학년 담임이라도 해야 가능하다. 아이들의 미래를 가지고 시행착오를 거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너무 어렵고 답답하다. 선생님들 또한 그럴 것이고, 학부모와 학생은 무슨 죄인가? 그래서 나를 만난 학생이 나로 인해 시행착오를 거치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하여 시작한 입학사정관 연수는 예기치 못한 성과를 나타냈다. 첫째는 “교과활동이 중요하다. 수업방식의 혁신, 수행평가의 중요성, 교육과정 내 경쟁의 활성화, 수업활동 모습의 기술 …” 등을 강조하는 입학사정관들의 이야기는 선생님들의 수업의 변화를 가져왔다. 특히 교과 세부특기사항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면서 교과 관련 교내대회가 증가하게 되었고, 수행평가가 실질적이고 세련되게 변화했으며, 수업 중에 학생들을 관찰하는 사례와 이를 실시간 기록하는 태도가 나타나는 등 획기적인 변화를 보게 되었다. 그리고 “지적 호기심, 창의적 도전정신, 실험정신 …”의 용어를 입학사정관들이 제일 좋아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후 학생 개개인의 교과세부 특기 사항을 찾기 위해 고심하는 모습은 매우 고무적이었다. 두 번째로 “학생부의 여러 기록들이 서로 연계되도록 하라 …”는 입학사정관들의 이야기는 독서와 비교과 활동 및 교과 활동이 서로 연계되어 있어야만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하였다. 모든 선생님들이 학생 개개인의 특성과 미래 진로에 맞추어 교과-비교과-동아리-독서 활동 등을 서로 연계하도록 지도하고 학생부에 이를 기록하는 성과가 나타났다. 세 번째로 “학생들이 어떤 교과를 선택하여 들었는가, 학생들을 위한 교육과정 편제가 이루어져 있는가? …”라는 입학사정관들의 이야기는 자기 교과를 무조건 많이 가르치려는 교과이기주의를 탈피하여 자발적으로 학생들의 진로와 진학 중심의 선택교육과정이 만들어지는 계기가 되었다. 고급생명과학, 고급수학, 고급화학, 국제경제 등 전문교과의 편성 및 음악과 미술 등의 교과를 선택하게 한다든지, 사회와 과학 탐구 교과를 전체로 묶어 선택하게 한다든지 등 선생님들은 조금 힘들지만 학생들을 우선 고려하는 교육과정 편성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네 번째는 “내신은 좋으나 수능 모의고사 성적이 낮은 학생은 …, 내신은 낮으나 수능 모의고사는 잘 나오는 학생은 …, 내신도 좋고 수능 모의고사도 잘나오는 학생은 …” 등의 사례별 대학진학에 관한 내용이었다. 이를 통해 학생부종합전형에서는 1학년 담임 선생님이 정말 중요하고, 학생 개개인의 맞춤형 지도가 얼마나 필요한지를 알게 되었다. 특히 1학년 담임교사의 진로지도 방향이 그대로 2학년 담임교사에게 전달되어야 그 성과가 있다는 것을 깨닫는 계기가 되었다. 3학년 담임교사가 아닌 1, 2학년 담임교사의 학생 맞춤형 진학지도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은 1, 2학년 선생님들의 긴장을 가져왔고, 대학입시와 학생에 대한 정보를 서로 공유하면서 학생들을 지도하는 모습은 아름답기까지 했다. 그렇지만 이런 현상이 긍정적 현상을 가져온 것만은 아니다. 1학년부터 학생의 현실 상태를 어느 정도 정확히 진단하여 미래 진학의 자료로 삼아 학부모를 상담하면 학부모들은 한 편으로 고마워하면서도 매우 안타까워한다. 학부모들의 너무 높은 기대욕구 때문이다. 대부분 고등학교 학부모들의 기대욕구는 2학년 2학기 정도에 꺾이기는 하나 1학년부터 현실을 인식하라는 담임교사의 진단에 순순히 수용할리 만무한 것이다. 그래서 이것이 참 어려운 일이다. 앞으로 이것은 모든 학교에서 매우 어려운 과제일 것이다. 그래서 1, 2학년 때 담임교사들이 진로 진학에 관심을 기울이지 못하게 하는 요인일지도 모른다. 고교 교사를 대상으로 입학사정관 연수를 하면 내용을 잘 소화하고 위와 같이 변화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늘 기대하면서 올해도 연수 계획을 짜본다.
  • #사제동행(師弟同行)
  • 20여 년 전 제자
  • 봄입니다. ‘봄’이라는 향기를 품어 내는 시간이 점점 더 짧아지는 것 같아 아쉬움이 가득하지만, 대지에 봄 내음이 가득한 봄날입니다. 지난겨울의 수많은 생채기를 뒤로 하고 생명이 소생하는 봄을 온몸으로 느끼며, 3월을 맞이하며 새로운 학생들과 함께 인생의 작은 고민이라도 학생들과 동행해야 하는 계절입니다. 또한 과거를 거울삼아 더 나은 미래를 계획하여야 할 때입니다. 30여년의 교직 생활을 회상하면 수많은 제자들이 생각나지만, 지금부터 20여 년 전, 2학년부터 2년간 담임을 맡았던 한 학생에 대한 추억을 앨범에서 펼쳐보고자 합니다. 지금과 달리 그 때에는 사회적 분위기가 입시와 성적에 대한 고민이 깊었던 시대였습니다. 담임을 맡았던 그 학생은 2학년 2학기 중간고사를 치른 결과가 이전 성적에 비해 훨씬 더 향상도가 높게 나타나 2학기 때부터 입시 상담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전국 모의고사와 2학기 기말고사에서도 괄목할 만한 성적을 거두게 되었고, 3학년 3월 모의고사 성적도 꾸준히 향상되었습니다. 이후 3학년 초 진로 상담을 겸하면서 상담을 하던 중 2학년 때 못 다한 삶의 여정을 이야기 하였습니다. 어렸을 적부터 홀아버지 밑에서 자랐고 장래 직업을 초등학교 교사가 되어 자기처럼 편모나 편부 가정의 학생들을 사랑과 관심으로 지도하고 싶다는 말을 듣게 되었습니다. 또한 이 학생은 타 지역에서 유학을 와서 통학 거리가 상당한 데도 불구하고 아침 일찍 일어나 스스로 식사를 준비하고 아버지 밥상도 매일 준비하며, 또한 학교에도 일찍 등교하는 학생이었습니다. 교사에게는 수많은 자질이 강조되는 현실이지만, 초등학생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아이들을 사랑으로 대할 수 있는 ‘인성’이 갖추어진 교사라고 생각합니다. 그 학생은 경제적으로도 넉넉하지 않았지만 학급 내에서도 언제나 솔선수범하였습니다. 항상 일찍 등교하여 창문을 열고 환기를 하였으며, 청소시간에도 솔선수범하는 모습을 통해 학급 급우들의 모범이 되었습니다. 학교생활 및 학급, 더 나아가 본인의 역할에 충실하면서 급우들까지도 챙기는 모습을 보면서 학교 선생님들의 칭찬이 이어졌습니다. 학생을 지켜보며 지도하는 저도 보람도 있고 하루하루가 즐겁고 유익한 생활의 연속이었습니다. 드디어 대학수학능력시험의 날이 가까워지면서 학생은 더욱더 열심히 공부를 하고 지칠 만한데도 본인의 목표를 향해 끝까지 끈기를 가지고 열심히 공부를 하였습니다.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치르고 이튿날 오전 10시경에 학교에 와서 가채점한 결과를 보니 본인이 원하는 초등교육학과에 무난히 합격할 점수를 획득하였습니다. 이후 교직적성 면접을 준비할 때에는 교사의 기본 자질이나 교육 현실에 대해 많지 않지만 조언을 해주었고, 본인이 원하는 대학 초등교육과에 무난히 합격하였습니다. 그 후 가끔 내가 타지로 출장을 갈 때에 우연히 같은 버스에 동행하거나 휴게소에서도 가끔 마주 칠 기회가 있었습니다. 이후 제자는 대학을 졸업하여 지금은 전남에서 초등학교 교사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이 글을 쓰며 통화를 하면서 과거를 다시 한 번 돌아보는 시간을 갖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결혼을 하여 벌써 자녀가 2명이라고 하면서, 자주 연락을 하지 못해 못내 아쉬워하고 죄송하다는 말을 전했습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책의 제목처럼 교사는 아이들을 변화하게 할 수 있는 위치에 서 있습니다. 아이들을 사랑으로 대하면서 그들을 이해하려고 노력을 하지만, 오늘도 아이들에게 화를 참지 못하고 서운한 말을 하지 않았는가 생각해 보며 늘 부끄러운 모습에 서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됩니다. 경청과 칭찬으로 아이들을 대하는 것이, 그리고 사회생활을 하는 것이 원만한 대인 관계를 형성하는 원천이라고 생각합니다. 단순히 경청은 남의 이야기를 잘 들어준 것뿐만 아니라 상대방을 향하여 고개와 허리를 기울여서 관심을 보이는 자세도 필요하다고 생각하며, 이러할 때 래포(rapport)도 더욱 더 형성될 것입니다. 교육은 백년대계이므로 빠른 순간 변하지 않습니다. 꾸준한 설명과 설득과 인내로 해야 자그마한 변화의 싹이 자라날 것입니다. 항상 현직에서 묵묵히 수업하시는 선생님들 고생이 많습니다. 학생과 교사라는 신분을 항상 마음에 새기면 화를 내거나 짜증을 내기가 쉽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교사라는 자부심으로 건강하고 힘찬 미래를 향하여 파이팅 합시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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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연
  • 어느덧 교사로 첫 발을 디딘지 33년째가 되었다. 개교 2년차 명덕여자고등학교에 임용되어 지금까지 이동 없이 근무하면서 2만4천여 명의 학생이 배우고 졸업하는데 함께하였다. 진학부장을 맡고 있던 2009년 봄 1학년 교무실에서 신입생 엄마가 2회 졸업생인데 고3 담임이 바로 나였다는 소문이 들려왔다. 개교 이래로 첫 사례여서 신기하기만 하였다. 단순 계산을 해봐도 20대 초반에 결혼을 해야 말이 되었다. 엄마 이름을 확인한 순간 22년 전 눈에 띄는 학생은 아니었지만 말수가 적고 차분한 성격으로 성실하게 학교생활을 했던 모습이 눈앞에 생생하게 나타났다. 궁금하여 당장 딸을 만나보니 외모와 말투가 붕어빵처럼 닮았다. 학업 성적이 매우 우수하여 고3 때 인문과정 최상위 학생 중 한 명 이었다. E 대를 수능 관계없이 수시 합격하고 S 대를 생각하면서 수능을 보았는데 참으로 불행하게도 상상하지 못했던 최악의 결과가 나와 E 대를 입학하게 되었다. 최근에 근황을 알아보니 E 대 졸업을 포기하고 금년에 교대를 입학하여 가장 나이 많은 1학년 신입생이 되었다고 한다. 취업이 어려운 인문계 학생들의 한 단면을 보면서 씁쓸했다. 나의 제자인 엄마는 딸의 뒷바라지를 위해 열심히 일하고 있다는 소식도 들었다. 그 후로는 학교에서 설명회를 하거나 외부에서 강의를 하고나면 한 두 엄마가 남아서 ‘저 알아 보시겠어요?’ 하고 다가와 인사하는 졸업생들을 자주 보게 되었다. 한국외국어대에서 서울경인지역입학처장협의회와 대학교육협의회 주관으로 ‘2012 정시전형대비 대입상담캠퍼스' 가 있었던 날이었다. 전체 진행을 맡고 있었는데 본부에 찾아온 모녀가 있었다. 원래 서울에서 중학교를 다니다 사정이 있어 제주도에서 고등학교를 다니고 있는데 서울에서 대입진학상담 행사가 있다는 소식을 듣고 상경했다고 하였다. 서울 학생들에게 미리 사전 접수를 받고 진행하던 중이어서 상담 시간이 이미 정해져 있었고 현장 접수는 없었을 때였다. 조그만 캐리어를 들고 찾아온 모녀의 간절한 모습을 보고 직접 상담을 해 주었다. 대부분 수시를 논술 전형으로 상향 지원하여 합격 여부가 불투명한 상황이었다. 보통 상담을 하면 신분을 현직 교사라고만 하고 소속과 연락처는 가르쳐 주지 않는 것이 원칙인데 그 날은 명함을 주면서 혹시 수시가 모두 불합격되면 정시 지원하기 전에 연락을 하라고 하였다. 수능 성적이 발표되고 학교 학생들의 정시 상담을 하고 있던 어느 날 제주도 학생이 전화를 하였다. 수시가 모두 불합격되어 정시 상담을 자세히 하고 싶다고 하였다. 그 학생은 보통 아이들과 달리 여대를 기피하지 않았다. 지난번 상담 때 추천해 주었던 대학 중 목표를 숙명여대로 정했고 남은 것은 학과 선택이었다. 1순위 미디어 학과는 조금 불안했고 2순위 중어중문과는 적절했다. 꼭 합격시켜야 된다는 책임감을 가지고 최종 경쟁률 발표까지 보고 2순위를 지원하여 합격하였다. 내 딸을 지원시키는 마음으로 컨설팅을 해줘서 얻은 결과였기 때문에 내가 진학지도를 하면서 가장 보람 있었고 기억에 남는 사례였다. 현재 학교와 학과에 대해 매우 만족하면서 어학연수도 다녀오고 후회 없이 대학생활을 하고 있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나의 직접적인 제자는 아니지만 작은 인연이 지속되고 있고 지금도 가끔 연락하면서 미래의 진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곤 한다. 금년에는 2학년 담임을 맡았다. 여러 해 진학부장을 하면서 얻은 지식으로 특별하게 지도해보자는 각오를 가지고 학기를 시작했다. 3월 학력평가 결과가 나온 후 다른 담임들과는 달리 모녀와 함께 상담하기로 마음먹고 방과 후로 상담 시간 약속을 잡았다. 맞벌이 부모는 낮 시간에 학교 설명회에도 오기 힘들어 첫 대면이 많았다. 하루는 모녀가 함께 들어오는데 엄마가 먼저 '선생님' 하면서 다가왔다. 직감적으로 졸업생이라는 것을 감지했고 내가 담임이었다는 사실도 바로 알게 되었다. 딸이 미리 말을 하지 않아 그날 처음 알게 되었다. 이름도 금방 생각이 났고 고3 때 생활했던 모습도 머릿속에 스쳐 지나갔다. 외모가 고3 때 모습 그대로여서 쉽게 기억이 났다. 생김새와 말투가 비슷한 모녀를 나란히 앉혀놓고 상담을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모든 것이 비교가 되었고 딸에게 엄마의 고교 시절 이야기를 많이 하게 되었다. 2대에 걸쳐 모녀의 담임을 맡은 경우도 개교 이래 처음이어서 교무실에서 이야기 거리가 되었다. 고교 선후배 관계인 모녀이기에 후배인 딸이 잘못하면 바로 선배인 엄마를 지도하게 되었다. 같은 학교에서 33년이라는 교직 생활이었기에 일어날 수 있는 일이어서 새삼 나의 인생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었고 우리 삶의 인연은 헤어졌다고 끝난 것이 아니고 계속 이어진다는 사실에 공감을 하게 되었다.
  • #사제동행(師弟同行)
  • 세 학생을 통해 다시 고민해보는 교육방법
  • 학생들과 함께 생활한 지도 30여 년이 지났다. 그동안 인연을 맺은 수많은 학생들 중에서는 잊히지 않는 학생들이 있는 반면에 희미한 기억 속에 남아있는 학생도 있다. 기억을 돌이켜보면 그때 좀 더 잘해줄걸 하는 후회도 있고, 어떤 교육방법이 최선일까 하는 고민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나의 교육철학이 너무 엄격하고 원칙적이지 않았는지 생각해본다. 세 명의 학생 이야기를 돌이켜보며 최선의 교육방법이 무엇인지 고민해보고 싶다. A 학생은 성격이 매우 쾌활하고 교우관계가 넓으며 매우 영특한 학생이었다. 1학년 때부터 기숙사에서 생활하였다. 그때는 외출 외박이 한 달에 한 번씩으로 제한되다 보니 부모님들이 자주 밤에 학생의 필요한 물건을 가져다주거나 간식을 챙겨주곤 하였다. 그중에 나이가 지긋한 할머니 한 분이 하루도 거르지 않고 매일 밤에 찾아오셨다. 무슨 사연이 있지 않나 하는 마음에 한번은 많은 대화를 나누게 되었고 그때 A의 가정환경에 대하여 알게 되었다. 부모의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할머니가 실질적인 보호자 역할을 하고 있었다. 손자를 위해 음료수나 빵 같은 간식을 챙겨 오셨는데 나와 마주치게 되면 내 손에 간식을 쥐어주시며 고맙고 애쓴다는 말을 연신 하시곤 하였다. 나는 먹은 거나 마찬가지니 손주나 먹이시라고 간곡히 거절해도 소용없었다. 나는 A와 학업상담을 할 때마다 먼저 할머니의 얘기를 꺼내어 왜 공부를 해야 하는지에 대해 얘기해 주곤 하였다. 그때마다 A는 눈물을 보이며 서글피 울곤 했다. 그러고 나서 며칠간은 학습 태도가 몰라보게 좋았지만, 시간이 가면 자신의 처지를 잊곤 했다. 이런 과정을 3년 동안 반복하며 지냈다. 결국, A는 치대에 입학하여 지금은 공중보건의로 근무하고 있다. 얼마 전 통화에서 할머니는 암 투병 중이라는 근황을 들을 수 있었다. 그토록 손주를 위해 헌신하셨는데 마음이 편치 않았다. 적은 급여로 할머니에게 건강식품을 사다 드린다는 말에 더 잘해드리라는 잔소리를 하고 말았다. B 학생은 군에서 중학을 마치고 입학하였다. 조용하고 말이 없는 학생이었다. 원거리 학생을 위해 만든 기숙사에서 생활하였다. 뭔가 근심이 있는 모습에 조심스럽게 환경을 파악해보았더니 다문화가정에서 혼자 자란 학생이었다. 아버지가 병으로 오랜 기간 투병 중이시라 가정의 생계는 어머니가 식당에서 일하시며 뒷바라지를 하고 있음을 알았다. 참으로 딱한 처지였다. 또한 B는 집중력이 부족하여 노력보다 결과가 미진하였는데 컴퓨터에 관심이 많았다. B를 지켜보니 컴퓨터 보안 쪽과 프로그래밍에 관심뿐 아니라 소질도 있음을 알았다. 그래서 관련 학과의 학생부종합전형 준비를 위해 목표대학과 필요한 요소들을 수시로 점검하며 안내하였다. 나는 B를 성적 우수자 기숙사로 바꾸어 주며 더 노력할 것을 바랐지만 B는 가끔 자신을 통제하지 못할 때가 있었다. 한번은 B와 상담하면서 환경을 얘기했더니 깜짝 놀라는 모습이었다. 자신은 숨기고 싶었는데 선생님이 알고 있다니 당황스럽고 부끄러워 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나는 이런 처지를 잘 극복하여 당당하게 삶을 살아야 한다며 다독일 때마다 숙연함과 함께 진한 눈물을 흘리곤 하였다. B는 현재 서울 소재 K 대학의 소프트웨어학과에 다니고 있다. C 학생은 조그만 체구에 활달한 성격으로 학습의욕이 좀 부족한 편이었다. 3년간을 담임으로 만났다. 1학년 학부모회의 때 거동이 불편한 할머니 한 분이 눈에 띄었다. 그 할머니는 회의가 끝나고 내게 다가오셔서 손을 잡으며 선생님이 우리 아이를 사람 되게 만들어주고 공부할 수 있게 해달라는 부탁을 하셨다. C는 형과 둘이 살아가는 소년가장이었다. 참으로 어려운 처지임에도 본인의 느낌이 부족한 편이었다. 가끔 지각도 하고 흡연도 하였다. 나는 당근과 채찍을 반복하며 어떻게 해서라도 꼭 C를 대학에 보내 당당한 직업인으로 살아가길 바랐다. 내 맘처럼 따라와 주지 않을 때는 무관심으로 대할까라는 생각도 있었지만 뒤돌아서면 또 혼내고 타이르기를 반복하며 관심을 기울였다. 열심히 하겠다는 말을 수없이 들었다. 2학년 때는 한때 열심히 한 적도 있었다. 3학년이 되어 대학진학을 앞두고는 고민이 많았다. 수시에 지원을 해야 되는데 모든 것이 부족하였다. 할 수 없이 정시에 초점을 맞추고 어려움을 왜 극복해야 하는지를 얘기하며 다독였다. 다행히도 서울 소재 대학의 분교에 합격하였지만, 본인이 한 번 더 공부해서 원하는 대학에 가겠다고 지금 독학 재수를 하고 있다. 졸업식이 끝나고 교실에서 반 학생과 학부모들이 있는데 할머니가 꾸깃꾸깃한 돈을 꺼내며 고맙다고 손주와 같이 식사라도 하라며 건네려 하니 주변에 학부모님들이 법 위반이라서 안 된다고 말리시던 모습이 선하다. 얼마 전 모의고사 문제를 우편으로 보내주며 제발 열심히 노력해주라는 당부를 하였더니 걱정하지 말라고 한다. 진정한 교육이 무엇인지 항상 고민해보지만 뚜렷한 답이 없다. 제도가 바뀌고 주변의 환경이 바뀌면 가르침의 방법도 변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학생이 가슴으로 느껴서 공부하고 자신의 환경을 잘 이해하게 하는 것은 변함이 없어야 된다는 생각을 가져본다.
  • #사제동행(師弟同行)
  • 진학 단상(斷想)
  • 고3 담임을 처음 맡았던 80년대 초는 지금처럼 진학지도에 참고할 만한 자료가 별로 없었고 학교마다 체계적인 진학지도시스템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시절이었다. 따라서 진학지도에 경험이 없는 교사는 이전년도 합불 자료나 선배들의 경험담에 의지하여 진학지도를 할 수밖에 없었다. 첫해는 자료의 활용이나 지도 방법이 미숙하여 학생들에게 제대로 진학지도를 하지 못해 결과가 썩 좋지 않았다. 지금도 그 때 학생들에게는 미안한 마음을 갖고 있다. 첫 해 입시를 마치고 나서 시행착오를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곧바로 새 학년도 진학지도에 대한 준비를 시작했다. 우선 학교의 수년간 진학 결과를 분석하면서 통계 자료도 만들어 보고 각 대학별, 학과별 특이점과 변화의 추이를 비교 검토하면서 입시와 관련된 제반 내용을 숙지하였다. 대학입시는 전반적인 흐름의 맥락이 있고 해마다 시행되는 입시제도의 변화에 따른 양상이 있었다. 따라서 효율적인 진학지도를 하기 위해서는 변화되는 진학지도의 흐름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이해하는 것이 중요함을 깨달았다. 그리고 학생들의 진학지도는 개인별 성향이나 학습 특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현실성 있는 맞춤형 지도를 해야 한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진학 지도를 하면서 가장 고심했던 학년도는 대학입시 제도가 ‘선지원 후시험’ 으로 변경된 첫 해인 1988학년도 입시였다. 그동안 실시해 오던 ‘선시험 후지원’ 제도가 극심한 눈치작전으로 인해 사회적 이슈가 되자 이를 시정하기 위해 실시한 것이었다. ‘선시험 후지원’에 대비한 진학지도는 개인별로 학력고사 성적과 내신 성적이 객관적인 수치로 정형화 되어 있으므로 이를 바탕으로 각종 통계나 자료를 활용하면 지도하는데 별 어려움이 없었다. 그러나 ‘선지원 후시험’ 제도는 어떤 근거로 학생들을 대학에 지원시킬 것인지 무척 난감하였다. 수차에 걸쳐 외부 평가기관의 배치고사를 실시했지만 학생들의 시험 성적은 편차가 심해 성적만으로 지원을 시켜서는 좋은 결과를 기대하기가 어렵다고 판단하였다. 물론 학업 성적이 가장 중요한 근거자료가 되는 것이지만 성적 이외에 담임교사로서 학생의 학습이나 생활면에 대해 느끼고 있는 신뢰도를 참고하는 것이 불확실성을 해소하고 합격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학생의 학습태도, 학업에 대한 열정, 자기 주도적 학습능력 등은 객관적 수치로 구체화할 수는 없는 요소들이지만, 평소 교사의 입장에서 학생을 관찰하며 느끼고 있는 신뢰도는 중요한 판단 기준이 될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왜냐하면 학생의 개인별 성향에 따라 학업성취도의 편차가 달라지고 또한 개인차를 드러내는 요인이 되기 때문이다. 다소 모험을 한다는 생각도 들었으나 확신을 갖고 학기 초부터 학생들을 관찰한 누가기록을 작성하고 개인별로 성적의 흐름을 분석하여 지원에 참고할 자료를 만들었다. 이 자료를 활용하여 비슷한 성적이라도 대학 지원을 달리하였다. 원서를 제출하고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 때로는 불확실성 때문에 다 떨어질 것 같은 불안한 생각이 들기도 하였으나 막상 발표가 되니 어느 해 보다도 우수한 성과를 거두었다. 고3 담임을 하는 동안 많은 학생들을 지도했지만 교사로서 학생에 대해 전폭적인 신뢰감을 느낀 경우는 그리 많지 않았다. 1988학년도 담임 학급에는 학업 성적이 매우 우수한 학생 중에 대조적인 두 학생이 있었다. 한 학생은 자신의 학습 목표에 필요한 공부가 무엇인가를 스스로 찾아서 할 줄 알아 자기 주도적 학습 능력이 뛰어났고, 학업에 대한 성취 욕구가 강하여 목표를 설정하면 끈질긴 노력으로 반드시 실현하는 의지를 보인 학생이었다. 담임교사로서 확고한 믿음과 신뢰감을 느끼는 학생이었다. 다른 한 학생은 학업 성적은 매우 우수하였으나 사교육의 영향인지 타율적인 학습에 익숙하여 교사의 세밀한 관찰 및 지도가 필요한 학생으로 성적도 편차가 다소 심한 편이었다. 1학기 동안 두 학생은 성적 면에서 항상 일정한 점수 차를 보였는데 일 년 간 그 격차를 좁히지 못하였고 학력고사의 결과도 마찬가지였다. 그것은 두 학생의 자기 주도적인 학습능력의 차이 때문이라고 판단하였다. 따라서 두 학생의 경우, 평소 학습지도나 성적 관리를 하면서 방법을 달리 하였다. 그리고 대입 지원을 할 때에도 성적만이 아니라 평소 담임으로서 느끼고 있는 신뢰도를 반영하여 지원을 차별화하였다. 전자는 대학 및 학과를 선택할 때에 기대치를 감안하여 소신 지원을 하도록 지도하였고, 후자는 불확실성을 배제하기 위하여 평균점을 근거로 안정적 지원을 유도하였다. 다행히 두 학생은 모두 서울대에 합격하였다. 바람직한 진로․진학지도를 하려면 먼저 학생과 교사 간에 서로 믿고 신뢰하는 관계가 형성되어야 한다. 안타까운 것은 현재 학교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현실이다. 급격한 사회적 변화에 따라 학교사회가 믿음과 신뢰를 바탕으로 한 교육적 관계를 형성하지 못하고 개인별 이해관계에 따라 학교교육이 변질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제대로 된 학교교육은 물론 효율적인 진학지도를 실현할 수 없다. 입시제도는 해마다 달라지고 그 내용도 점차 다양화 ․복잡화되고 있다. 따라서 현재의 입시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전 학년에 걸친 진로지도 계획이 수립되어야 하고 이에 알맞은 개인별 맞춤식 진학지도가 학년별로 실시되어야 한다. 이러한 진학지도가 실현되려면 무엇보다 교사들이 의욕을 갖고 소신껏 진학지도에 임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지역사회 내에서 학생의 학력 수준이나 여건이 비슷한 학교 간에 입시 결과의 차이가 분명하게 드러난다. 이것은 학교나 교사들이 진학지도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기울인 열정과 노력의 차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학생과 교사, 학부모와 교사가 믿음과 신뢰를 바탕으로 관계를 구축하지 않으면 진학지도의 효과는 기대하기가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