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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01스토리
  • #공감(共感)
  • 대학과 학과 중 어떤 것이 더 중요한가요?
  • 현행 입시 제도의 수시 모집에서는 최대 6개 대학을, 그리고 정시 모집에서는 최대 3개 대학과 학과를 지원할 수 있습니다(특수대학, 산업대학, 전문대학은 제외). 대학, 학과라는 것이 일반 상품처럼 자주 구매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졸업 후 평생 생활하면서 따라다니는 속성을 갖고 있다 보니 그 선택에 신중을 기해야 함은 당연한 일입니다. 대학, 학과 선택 결과는 장차 수험생의 진로 방향에 지대한 영향을 끼칠 수도 있기 때문에 그 선택을 쉽게 할 수도 없는 상황입니다. 그래서인지 해마다 수시나 정시모집 대학 합격자 발표가 나면 다음과 같은 형태의 전화를 받곤 합니다. “우리 아이가 00대학 경영학과와 00대학 xx학과를 합격했는데 어디에 등록하는 게 좋을까요?” 이런 사례는 대학위주로 선택을 하려고 하면 학과가 마음에 들지 않고, 학과위주로 선택하려고 하면 대학이 마음에 들지 않기 때문에 다른 누군가의 조언을 참고하여 판단하려는 경우입니다. 대학을 선택하는 기준은 여러 가지 있을 수 있지만, 요즈음의 학부모님들이나 수험생들은 무엇보다 사회 평판(評判)에 따른 명성(名聲)을 제 1차적인 기준으로 삼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일반인들이 흔히 SKY 대학, TOP10 대학, IN 서울 대학, 수도권 대학 등으로 쉽게 구분하여 판단하기도 합니다. 과거와는 조금 다른 분류 방식이 적용되고 있는 셈입니다. 대학 교육이라는 것이 무형의 서비스라서 아무래도 명확한 평가 기준을 갖기 어려운 점이 있어서 그럴 것입니다. 언론사에서도 해마다 대학 평가 결과(교육․재정 여건, 교수․연구 여건, 평판․사회진출도, 국제화 정도 등)를 발표하고 있지만, 학부모님들이나 수험생들이 임박(臨迫)하여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되면, 여러 가지 대학 평가 지표들보다는 기존의 사회적 통념에 의한 인지도에 의해 판단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그리고 학부모님들이 학과 선택에서 가장 중요시하는 기준은 자녀의 적성이나 흥미보다는 아무래도 미래 취업 가능성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인문계는 사회과학계열 학과를, 자연계는 공학계열 학과나 의약계열 학과를, 그리고 일부는 교육계열 학과를 선호(選好)하는 경향(傾向)이 많습니다. 앞의 전화 사례에서 본 학부모님의 경우도 취업을 생각하면 경영학과를 가야할 것 같은데, 학교 평판을 생각하면 비인기 학과인 xx학과를 가야만 하기 때문에 고민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학문 간에 우열(優劣)이 없듯이 학과 간의 우열도 있을 수 없으나, 사회 환경 변화에 따라 학과에 대한 학부모님이나 학생들의 학과별 선호 차이는 과거에도 있었으며 현재는 물론 앞으로도 그러할 것입니다. 다른 평가 기준들은 다 배제하고 대학 평판과 취업 가능성이라는 두 가지 판단 기준으로만 대학, 학과를 선택하는 경우에도 결정하기가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대학마다 대학 내의 학과들에 대한 학생들의 선호가 서로 비슷하기 때문에 인기 학과는 상위권에, 비인기 학과는 하위권에 속하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특정 대학의 비인기 학과와 다른 어떤 대학의 인기학과의 예상 합격 점수가 같게 되는 경우가 발생하며, 이로 인해 대학과 학과 선택에 대한 고민이 생기게 됩니다. 상위권 대학들의 인기학과, 교육대, 의·치·한의예과 등 특정 대학, 학과에 합격한 경우를 제외하면 대학과 학과에 대한 만족도는 불일치할 가능성이 매우 높게 됩니다. 대학을 중시하면 아무래도 학과가 마음에 들지 않고, 학과를 중시하면 대학 수준이 달라져 역시 만족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대학, 학과 선택의 최종 결과는 미래 직업과 관련이 깊을 수도 있고 아니면 거의 없을 수도 있습니다. 만약 관련이 거의 없다면 학생의 성적에 맞는 대학과 학생이 흥미 있어 하는 학과를 소신껏 선택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미래 직업과 관련하여 대학, 학과를 선택하는 경우라면 다음과 같은 점을 기준으로 판단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첫째, 미래 직업이 전공하려는 학문을 필요로 하는 전문적인 직업인가, 아니면 일반 업무능력으로도 가능한 직업인가에 따라 판단해 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해당 전공 학과 교수, 초․중등학교 교사, 의사, 약사, 간호사, 해당 전공 산업 기사 등 전문 자격증을 필요로 하는 직업에서는 관련 전공 학과 진학이 필수 요소일 것입니다. 이런 경우에는 대학보다는 학과를 중시하여 판단하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반대로, 전공 학문이 반드시 필요한 직업이 아니라면, 학과보다는 대학을 중시하여 판단하는 것이 보다 현명할 수도 있습니다. 둘째, 희소성(稀少性)을 기준으로 미래 직업의 성공 기회를 판단해 볼 수 있습니다. 종합대학들은 단과 대학별로 여러 개의 학부, 학과, 전공 등을 개설하고 있습니다. 국립대학들이 가장 많은 학과들을 개설하고 있는데, 대학에 따라 대략 80~110여개(인문, 자연, 예체능 학과 전체) 학과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주요 사립대학들은 60~80여개 학과들을 개설하고 있습니다. 종합 대학들이 공통으로 개설하고 있는 전공 학과들이 그만큼 많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대부분의 대학들이 똑같이 개설하고 있는 학과들은 그만큼 희소성이 없는 학과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많은 대학들이 공통으로 개설하고 있는 즉, 희소성이 없는 학과라면 대학의 명성이 학과보다 더 중요한 판단 기준이 될 수 있습니다. 반면, 어떤 학과들의 경우는 특정 일부 대학(예: 부경대 수산생명의학과)에서만 개설하고 있는데 희소성 면에서 (즉, 수요에 비해 공급이 적을 것이므로) 앞으로 기회가 많이 있을 것으로 예상해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런 희소 학과들은 대학의 명성보다는 학과를 더 중요하게 검토하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전공을 무시한 명문 대학 진학의 장점도 있겠지만 대학 생활 부적응이나 졸업 후 진로 결정시 생기는 시행착오 등 단점 역시 많이 있음을 우리 주변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미래 학자 롤프 옌센은 현재 시점의 정보 사회의 뒤를 이어 드림 소사이어티(Dream Society)*사회가 도래(到來)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습니다. 이성보다 감성이 중요해지는 시대가 온다고 합니다. 따라서 미래 사회에서는 현재 우리들이 모르는 또 다른 직업도 생길 것입니다. 대학과 학과 중 어떤 부분이 정말 중요한 지는 개인마다 처해있는 상황이나 미래 전망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다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짜 올바른 선택은 자신의 삶을 직접 살아갈, 그리고 스스로 책임도 져야할 자녀가 직접 결정하거나, 아니면 자녀의 의견을 존중하여 결정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드림 소사이어티(롤프 옌센, 리드리드 출판)
  • #공감(共感)
  • 자녀 교육에서 놓치고 있는 행복
  • 1985년에 처음으로 대학 입시 업무를 시작하여 지금까지 관련 업무를 하고 있으니 돌아보면 세월이 참 많이도 흘러간 것 같습니다. 벌써 28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으니, 고 3학생을 둔 어머니들의 나이를 대략 45세 기준으로 계산해 보면, 그 당시 어머니들의 나이가 지금은 73세가 되어 할머니(할아버지)가 되어 있을 것입니다. 이제는 그분들의 자녀도 이미 장성하여 왕성하게 사회생활을 하고 있을 것이고 아마도 손자, 손녀들이 중고등학교에 다니고 있을 것입니다. 지금의 우리 학부모님들도, 우리들의 부모님들이 그러했듯이 자녀들을 좋은 대학 보내려고 어릴 때부터 갖은 마음고생 다해 키우면서 지금에 이르렀을 것입니다. 큰 말썽 없이, 다른 사람 보기에도 자랑스럽게 우리 자녀들이 잘 자라준다면 무엇을 더 바라겠습니까? 하지만 그 욕심이라는 것이 끝이 없어서 자꾸 자꾸 커지기만 합니다. 그래서 자녀들이 잘해도 더 잘하기를 욕심내게 되고, 자녀들이 더 좋은 대학, 학과에 진학할 때까지 그냥 그렇게 위만 보고 달려가게 됩니다. 자녀들에 대한 이런 바람과 욕심은 대부분이 학년이 높아질수록 자꾸만 작아지게 마련인데, 생각할수록 자녀들에 대한 실망과 배신감이 불쑥 불쑥 치밀어 오를 때면 자녀들과 한바탕 전쟁을 치르고야 맙니다. 아주 사소한 일로 그동안 쌓아두었던 불만이 마침내 폭발하고 맙니다. 그래도 아이들은 꿈적도 하지 않으니 정말 ‘웬수*’라는 표현이 딱 맞는 말인 것 같기도 합니다. 조만간 그런 우리 자녀들도 그들의 자녀들에게 똑같은 마음을 갖게 되고 어쩌면 그런 원망 섞인 표현도 하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참고 이해하는 길 외에는 뾰족한 방도가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우리 부모님들도 지금 우리 학부모님들에게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었듯이 말이지요. 그러나 자녀를 이미 대학에 보낸 학부모님들은 훗날 알게 되셨을 겁니다. 오랜 세월 힘들게 싸워가며 겨우 겨우 특정 대학에 아이를 보내고 나서, 문득 대학 간 아이의 얼굴과 지난날의 학부모님 자신의 모습이 비교되면서 느끼게 되는, 이미 지나버린 청춘에 대한 서글픈 현실과 아쉬운 심정 말입니다. 바로 엊그제 우리 학부모님들이 20살의 청춘이었던 것 같은데 벌써 세월이 흘러 우리 자녀들이 그런 20살의 청춘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20년이 지난 세월의 흔적은 오랜 만에 어쩌다 만나게 되는 친구들의 얼굴을 보면 알 수 있게 됩니다. 처음에는 설마 나도 저런 모습일까 싶다가도 친구들을 자꾸 만나다 보면 저절로 나이 들었음을 인정하게 됩니다. 작은 글자들이 보이지 않게 되고, 바늘귀를 찾아 실을 낄 수도 없으며, 흰머리와 주름살은 늘어만 가고, 아이들은 이제 다 컸다고 친구들을 찾아 떠나가는 순간이 찾아옵니다. 우리 학부모님들의 청춘이 순식간에 사라져버리고 말았다는 것을 확연히 깨닫게 되는 순간을 맞게 됩니다. 바로 우리 자녀들이 대학에 진학하는 20살, 그 순간이 오면 보다 확실히 알게 됩니다. 이런 경험을 하고 나서부터 학부모님 대상 설명회 등 기회가 있을 때 간혹 우리 학부모님들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하게 되었습니다. “지금, 아이들이 아직 대학에 가지 않은 지금 이 순간순간들이 학부모님들에게 인생 최고의 시간이라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지금 당장은 아이들이 속을 썩여도, 말을 듣지 않아도, 성적이 조금 부족해도, 어린 우리 자녀들이 아직 어른이 되지 않은 지금이야말로 정말 고맙고 행복한 시간이었음을 나중에 알게 됩니다.” 살아가면서 자녀들로 인해 좋은 일, 기쁜 일, 원망스러운 일, 미운 일 등 여러 가지 경험들을 하게 됩니다. 좋은 일, 기쁜 일이 많으면 정말 행복한 삶이기에 자녀들에게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들의 욕심 때문에 자녀들로 인해 상처받거나, 미워하는 마음이 들거나, 누군가에게 위로 받고 싶은 힘들고 어려운 순간이 오면, 잠시 멈춰 서서 우리 아이들이 아직 어려서 고맙다는 생각을 해보시면 어떨까 합니다. 우수한 학교 성적, 명문 대학 진학 등 아이에 대한 모든 것들은 잠시 잊고 아직 자녀들이 어리기 때문에, 우리 학부모님들이 도움을 줄 수 있어서 고맙다는 생각을 해보시기 바랍니다. 모든 이유들을 떠나서 다만 자녀들이 아직 어리기 때문에 고마운 것입니다. 아직 성인이 안 되었기 때문에 고마운 것입니다. 학부모님께서 아직 젊다는 것을 그들이 거울처럼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참으로 가슴 아픈 일은 이런 깨달음을 너무 늦게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전에 다니던 직장에서, 여러 가지 삶의 모범을 보여주셨던 상사(上司)분이 그 당시 30대 후반이었던 저에게 다음과 같은 인생 조언(助言)을 해 주셨습니다. “ 부모님에 대한 아이들의 효도는 이미 어릴 때 다했으니, 어른이 돼서 부모에게 효도 안 한다고 자식들 원망해서는 안 되네!” *웬수: 근본은 원수(怨讐)라는 어원에서 유래된 말이지만, 주로 원수처럼 귀찮은 존재라는 뜻으로 쓰이며, 전라도 지방에서 많이 쓰임(네이버 국어사전에서 따옴)
  • #공감(共感)
  • 집 밖으로 쫓겨난 꽃
  • 제가 사는 집은 서향(西向)이라서 꽃들을 키우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동안의 경험을 통해 웬만해서는 죽지 않는 꽃이나 식물들을 골라 키우고 있습니다. 물론 제가 키우는 것은 아니고 어쩌다가 물을 주긴 하지만 대부분은 그들을 바라보는 것이 제 몫입니다. 어느 날인가 퇴근 후 집에 갔더니 아이 엄마가 제게 이런 말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아파트 출입구 길 옆으로 나란히 심어놓은 꽃들은 만발(滿發)하여 피어있는데, 집에서 애지중지(愛之重之) 키우고 있는 똑같은 종류의 우리 집 꽃들은 잎사귀만 무성하게 자랄 뿐 도대체 꽃을 피우지 않아서 집 밖으로 쫓아냈다고 합니다. 이게 무슨 소리인가 해서 물어 보았더니 주변에서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었다는 것입니다. ‘집에서 너무 귀하게 지나친 사랑으로 키우면, 그 꽃들이 너무 편안하기 때문에 꽃을 피우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힘들어야 꽃을 피운다는 이야기였는데 저는 처음 듣는 이야기였고, 그 말을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어떻든 그 날 그 꽃은 베란다 밖으로 쫓겨나고 말았습니다. 금년 여름은 유난히 비도 많고 바람도 강하게 불었습니다. 꽃을 쫓아낸 이후 더 심했던 것 같습니다. 이따금 지나가는 소리로 집 밖에 내 놓은 그 꽃이 강한 비바람 속에서 상하지 않을 까 걱정되어 다시 들여놓아야 할 지 고민 된다고 합니다. 하지만 가엾게도 그 꽃은 쫓겨난 상태 그대로 얼마 동안 방치되어 살아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짐작하셨듯이, 그 꽃이 꽃대를 높이 세우며 힘차게 솟아오르고 있는 것이 어느 날 아이 엄마에게 목격된 것입니다. 쫓겨난 지 2~3주가 지난 후에 일어난 일입니다. 그 놀라운 소식을 듣고 제가 집에 가서 확인한 것은 물론입니다. 정말 기적(奇跡)같은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 기적의 꽃 이름이 ‘겹제라늄’이라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되었습니다. 아마 꽃을 키워본 사람들은 꽃들의 이런 속성을 이미 잘 알고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저같이 꽃에 무지한 사람에게는 이런 현상이 놀랍고 또 놀라울 뿐입니다. 그 꽃은 제게 새로운 깨달음을 주었습니다. 비바람을 헤치고 솟아난 그 당당한 모습의 꽃대를 본 순간의 놀라움을 평생 잊을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자녀들을 키울 때, 아버지와 어머니의 교육 방침이 서로 달라서 갈등이 생기기도 합니다. 여건이 허락되면, 어머니들은 가급적 지금 당장 귀하게 필요한 것은 모두 해 주고 싶은 마음으로 자녀들을 대할 것입니다. 반면, 그런 여건이 된다고 하더라도, 아버지들은 지금보다는 미래를 위해 적당한 거리를 두고 보다 냉정하게 자녀들을 대하는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또는 부모님 모두 자녀들에게 풍족하게 베풀고 싶어도 그럴 형편이 안 되는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부모님들 각자 어려서부터 서로 다른 환경 속에서 생활해 왔고, 또한 경험한 내용이 서로 다르기 때문에 주장하는 교육 방법이 서로 다를 가능성이 높습니다. 따지고 보면 자녀들을 위하는 마음은 같으면서 단지 사랑하는 방법에서 차이가 있을 뿐인데도 각자의 방법이 최상이라고 생각하여 충돌하기도 합니다. 각양각색(各樣各色)의 꽃들은 그들 각각의 특성에 맞는 성장 환경이 필요하며, 또한 시기별로 필요한 요소가 서로 다를 것입니다. 그리고 이 세상에는 저 마다 다른 특성의 꽃들이 존재하듯이 우리 자녀들도 저 마다 다른 특성을 갖고 이 세상에 태어났다고 생각합니다. 자녀를 키울 때 집안에서 편안하게 잎사귀만 키워 갔던 ‘겹제라늄’처럼 과잉 사랑을 주고 있는 것은 아닌지, 집 밖으로 쫓겨난 꽃처럼 좀 더 강하게 키워야 하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됩니다. 자연이나 세상의 이치가 일정한 고난(苦難)과 시련(試鍊)을 겪어야 비로소 결실(結實)을 맺게 되나 봅니다. 꽃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고 키우는 입장에서 무조건 사랑하고 보살펴 주는 것이 최선이 아닐 수도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더불어 꽃들마다 피는 시기가 다르듯이 우리 자녀들도 만개할 시점이 서로 다를 수 있는데, 우리 어른들은 그 시점을 몰라 조급해 하고 있는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들이 피어날 시기와 키우는 방법 또한 정확하게 모르면서 어른들이 마음대로 판단하여 키우고 있는 것은 아닌지 반성하게 됩니다. 제가 생각하는 교육의 최종 목표는 우리 자녀들이 성인이 되었을 때, 부모로부터 독립(獨立)*하여 자립(自立)*하는 것입니다. 정신과 물질 모든 면에서 부모로부터의 의존을 버리고, 스스로의 힘으로 이 세상을 보람 있게 살아가게 하는 것입니다. 자녀들이 힘들게 공부하고 대학에 진학하고 졸업 후 좋은 직장에 취직하거나 좋아하는 직업을 갖게 되는 것 역시 부모로부터 독립하여 부모보다 더 나은 삶(부모들이 바라는 소망)을 살아가기 위한 준비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독립(獨立): 다른 것에 예속(隸屬)*하거나 의존하지 아니하는 상태로 됨. *자립(自立): 남에게 예속되거나 의지하지 아니하고 스스로 섬. *예속(隸屬): 종, 죄인 예, 무리 속-남의 지배나 지휘 아래 매임, 윗사람에게 매여 있는 아랫사람.
  • #공감(共感)
  • 판타지 소설과 독서
  • 얼마 전 고등학교 학생을 대상으로 한 경제 교실 교육장에 갔었습니다. 주된 내용은 경제 관련 내용과 리더십 향상 그리고 대학 입시에 관한 정보 제공 등으로 1일 교육과정이 편성되어 있었습니다. 조사해 보니, 이 모임에 참석한 학생들은 고1,2학년이 대부분이었으며, 이미 경제학에 대해 깊은 관심이 있는 학생들이었고 일부 학생만 아직 진로 탐색 중에 있었습니다. 설명회를 진행하면서 독서의 중요성과 철학 서적 읽기를 권장했었습니다. 고등학교에서도 ‘윤리와 사상’이라는 과목을 배우고 있지만 우리 학생들이 왜 공부해야하는 지에 대해 스스로 질문해 보고 또 그 대답도 스스로 내려 보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더불어 공부의 기초는 어휘(語彙:단어의 전체)를 늘리는 것이 기본이 된다는 점을 또한 강조했습니다. 예를 들어, 영어 공부를 하는데 있어서 영어 단어를 많이 모르면 당연히 영어 성적이 좋을 수가 없듯이, 한글로 쓰여진 대부분의 교과서를 읽고 이해하는 데 있어서 필요한 한글 어휘는 필수 요소이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어휘의 양(量)에서 차이가 나기 때문에 읽기 속도나 글에 대한 이해 수준 역시 차이가 나게 됩니다. 그 결과 교과 성적에서도 학생들 간에 우열의 차이가 발생하게 됩니다. 수학이나 과학에서의 부호나 공식 역시 수학자들이나 과학자들이 서로 소통하는 수단이라는 점에서 문자에서의 단어(單語)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결국 단어의 정확한 뜻을 모르게 되면, 내용도 모른 채 글자 읽기로 끝나게 되고, 저자(著者)가 전달하려는 의미 파악은 어렵게 되거나 불가능하게 됩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한자어 공부를 강조하는 것이고, 어릴 때부터 독서를 강조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설명회를 마치고 나오는 길에 한 학부모님께서 제게 질문을 하였습니다. 학부모님의 궁금 사항은 자녀가 책을 읽기는 많이 읽는 데 그것이 판타지* 소설인데 괜찮겠느냐는 질문이셨습니다. 아마 판타지 소설 외에 다른 책들을 두루두루 읽기를 바라시는 것 같았습니다. 자녀를 키우다 보면 자녀가 책을 읽지 않아서 속상하고, 읽더라도 만화책이나 소설류 등 교과 성적과 직결되지 않는 책이라고 판단되는 책들을 읽게 되면 왠지 잘못된 것 같고 불안한 마음이 들게 마련입니다. 대부분의 학부모님들 마음이 그럴 것입니다. 그러나 학생들을 만나보면 천성적으로 책읽기를 좋아하는 경우도 있고, 아니면 아예 책과 담을 쌓는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판타지 소설을 읽는 위 학생의 경우는 그나마 다행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리고 학부모님이 원하는 종류의 독서를 기대하려면 자녀의 미래 꿈이나 대학에서의 희망 전공이 어떠한지에 대해 이야기를 먼저 나눠보는 것이 좋겠다는 조언을 드렸습니다. 책을 읽다보면 관심의 영역이 점차 넓어지게 돼서 자연스레 다른 종류의 책들도 읽게 될 것이니 너무 조바심내거나 강제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을 드렸습니다. 재수를 성공적으로 했을 때, 국어, 수학, 영어 과목 중 성적 향상이 가장 큰 과목이 수학이고, 그 다음이 영어이며, 가장 변화가 적은 과목이 국어 과목입니다. 외국어가 아닌 우리말로 평가하는 국어 과목에서의 단기적인 성적 변화가 영어보다 어렵다는 것은 곧 어릴 때 부터의 꾸준한 독서와 어휘의 양을 늘리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나타내는 예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점에서 판타지 소설 읽기도 좋은 출발이 될 것입니다. 쉽거나 재미있는 독서로 출발하여 우리 자녀들의 관심과 흥미의 폭이 넓어지게 되면, 독서 분야도 점차 넓어지게 될 것입니다. 분명한 것은 부모님 판단으로 강제하는 권장(勸獎) 도서 읽기 권유는 대부분 실패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을 염두에 두시기 바랍니다. 권장 도서를 읽지 않는 다는 것은 어쩌면 자녀들이 아직 그 책의 수준이나 단계에 도달해 있지 않았거나, 관심과 흥미가 다른 곳에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무조건 강제하기 보다는 왜 읽지 않는 지에 대한 자녀의 소리에 먼저 귀 기울이는 것이 순서일 것 같습니다. 교양(敎養) 서적 읽기와 학교 교과서나 참고서를 읽는 것은 분명 그 목적이 다릅니다. 그러나 길게 보면 다양한 교양 서적이나 전문(專門) 서적을 읽는 것이 학교 공부와 전혀 무관한 일도 아닐 것입니다. 단지, 시험을 대비해야 하는 수험생 입장에서 시험 관련 책 외에 기타 책들을 언제, 얼마나 읽을 것이냐가 문제인 것 같습니다. 아마도 시기 면에서 볼 때, 고 3학년이 되면 당장의 입학 시험과 관련된 공부에 보다 전념하는 것이 성적 향상에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학문의 특성상 저학년 때부터 꾸준하게 독서하여 점차 어휘의 양을 늘려가게 되면 훗날 입학 시험에서도 좋은 결과를 얻게 될 것입니다. 특히 우리 나라 말은 한자어가 거의 70%정도가 된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학생들이 한글로 잘 이해되지 않는 단어는 한자어를 병행하여 이해하는 학습 습관을 갖게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학교 공부를 하는 데 있어서도 이러한 습관이 유익하다는 것을 우리 학생들은 언젠가 알게 될 것입니다. *판타지: 상상을 동원해 현실과는 다른 무엇을 만들어 내는 것(이정우, 철학자, 세계문화사 전)
  • #공감(共感)
  • 아이 성적이 떨어졌어요!
  • 고3 학부모님과 이야기 하다 보면, 흔히 자녀가 고1,2학년 때는 성적이 좋았었는데 3학년이 되어서 떨어졌다는 이야기들을 많이 듣게 됩니다. 그리고 학생들을 만나도 수능 성적 이야기를 하다 보면, 아는 문제를 실수로 틀려서 성적이 떨어졌다는 이야기들을 많이 듣게 됩니다. 학생이 받아 온 현재의 성적을 학부모님도, 학생 본인도 인정하지 않고 과거에 가장 잘 받았던 성적과 비교하여 아이가 실수했거나, 아는 문제 틀려서 등급이 낮아졌다는 변명들을 주로 합니다. 왜 이런 이야기들이 반복되고 있는 것일까요? 시험의 종류를 자격(資格)시험과 선발(選拔)시험(또는 최대능력시험, 성취도 시험)으로 나누었을 때, 국가에서 실시하는 대학수학능력시험은 선발시험으로 분류됩니다. 그리고 이런 선발용 시험문제를 출제, 제작하는 한국교육과정평가원에서는 매년 실시 시기에 맞춰 출제 범위, 시험 유형(객관식과 단답형 등), 과목별 문항 수와 시험 시간, 난이도 등을 사전에 결정하여 공지합니다. 금년 2014학년도 수능시험 시행세부계획을 보면, 작년까지 크게 이슈(issue)가 되었던 난이도 방침에 대해서는 특별한 언급이 없고, 작년처럼 EBS 수능 교재와 강의 연계율은 70% 수준을 유지할 것이라고 합니다. 시행계획표에는 금년에 처음으로 도입되는 과목별 A/B형 시험 시간과 문항 수 역시 명기되어 있습니다. 수험생들이 이런 수능 출제 방침에 맞춰서 사전에 충분히 훈련하고, 연습하라는 뜻입니다. 수험생들의 수능 시험 성적은 과목별 출제 범위, 시험 유형, 문항(問項) 내용, 문항의 참신성(斬新性), 시험 시간, 수험생의 교과 내용 실력, 시험치는 기술, 시험 불안, 추측으로 찍어서 맞은 문항, 시험 당일의 상태(condition) 등 여러 가지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결정됩니다. 이처럼 수많은 요인들로 인해 매번 시험마다 수험생들의 성적이 일정 범위 내에서 변동되는 것은 어쩌면 지극히 당연한 일입니다. 때문에 2등급이 3등급이 될 수도 있고, 3등급이 4등급이 될 수도 있습니다. 물론 그 반대의 경우도 생길 수 있습니다. 문제는 그동안 가장 점수가 잘 나왔던 성적을 자녀의 성적이라고 학부모님들이 거의 확신하고 있다는 사실에서 발생합니다. 제가 만나 본 학부모님들 중 거의 대부분의 학부모님들이 자녀가 과거에 받았던 최고 성적과 비교하여 그보다 낮게 나온 성적은 자녀가 단순히 실수한 것으로만 오해하고 있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때문에 실수만 하지 않으면 앞으로 성적이 크게 오를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를 갖고 있었습니다. 학부모님들의 이런 희망적인 기대 심리가 수시 모집 지원에서는 상향 지원을 하는 경향으로 흐르게 하며, 자녀들에게는 달성하기 어려운 지나친 압박, 불안 요인으로 작용하게 되어, 기대와는 달리 실수가 반복되면서 자녀의 성적이 더 떨어지거나 정체되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합니다. 수험생들이 흔히 말하는 실수 원인 중에서 가장 많이 간과하고 있으면서도 정말 중요한 요인 중의 하나가 바로 시험 시간 변수입니다. 선발시험인 대학수학능력시험은 과목별 시험 시간이 엄격하게 정해져 있습니다. 과목별 문제를 푸는데 시간을 무한히 허용하는 시험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성적 순위는 제한된 시간 내에 누가 얼마나 정확하게 정답을 맞히느냐에 따라 결정됩니다. 그렇다면 과목별 시간은 수능 1~9등급 수험생들 중 어떤 수준의 학생들을 염두에 두고 결정했는지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예를 들어, 현행 수능 시험에서는 1교시 국어 과목은 45문항을 80분 안에, 2교시 수학 과목은 30문항을 100분 안에, 그리고 3교시 영어 과목은 45문항을 70분 안에 다 풀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매 교시 모든 문항을 제한된 시간 내에 다 풀 수 있는 학생 수준은 어느 등급 수준의 학생들일까요? 그 답은 명확합니다. 선발 시험으로서 변별력을 갖춘 제대로 된 수능시험이라면 잘하는 학생과 그렇지 못한 학생을 구분해내기 위해서 1등급 수준의 학생들만이 제한된 시간에 모두 바르게 풀 수 있는 난이도로 구성된 문항들로 과목별 문제지를 제작할 것입니다. 이런 판단이 옳다면 2등급 이하의 학생들은 과목별로 출제된 문제들을 제한된 시간 내에 모두 바르게 풀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시간도 능력을 재는 중요한 요소 중의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수험생들이 시험이 종료된 후 나중에 아는 문제를 실수하여 틀렸다고 하는 이야기들이 반복되는 것은, 바로 이런 시험시간에 대한 이해 부족 때문에 발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1등급이 아닌 2등급 이하의 학생들에게 문제 푸는 시간이 부족한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입니다. 1등급 학생들을 기준으로 주어진 시간 내에 모두 풀 수 있도록 문항별 난이도를 사전에 결정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시간이라는 변수 외에 수험생들이 출제된 내용을 이해하지 못해서 아무리 많은 시간을 주어도 풀 수 없는 경우도 많을 것입니다. 제가 여기서 드리고 싶은 이야기는 하위 등급 학생들이 무리한 욕심을 부려서 제한된 시간 내에 모든 문제를 풀겠다는 마음 자세 때문에 아는 문제도 틀려서 시험 종료 후에 후회하는 경우가 너무 많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자녀의 성적이 떨어진 것이 아니라, 실수하여 못 받았다고 생각하는 현재의 가장 나쁜 성적이 어쩌면 자녀의 진짜 성적일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학부모님의 자녀가 그동안 받았던 성적 중에서 가장 낮게 받았던 성적을 자녀의 성적으로 인정한 후 그 성적을 바탕으로 새로운 방법을 찾는 것이 앞으로의 성적 향상에 더 도움이 될 것입니다. 학생들에게는 다음과 같은 조언을 하고 싶습니다. “아는 문제는 주어진 시간 내에 제대로 풀고, 모르는 문제의 답은 편하게 찍어라. 괜히 시간 낭비하여 아는 문제 실수했다고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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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학교, 학원 선택과 선생님의 중요성
  • 교육학에서는 학교 교육의 3요소(要素)로 교사, 학생, 교육내용을 들고 있습니다. 교사는 교육의 주체가 되고, 학생은 교육의 객체가 되며 그리고 교육내용은 교육의 매개체(媒介體)가 됩니다. 교육(敎育: 가르칠 교, 기를 육)의 어원은 맹자(孟子)*가 한 말에서 유래한다고 합니다. 한자어로 보면 성숙자(成熟者, 여기서는 교사)가 미성숙자(未成熟者, 여기서는 학생)를 대상으로 하여 가르쳐서 길러 키우는 것이 교육이라는 의미로 해석합니다. 학교 교육의 핵심은 성숙한, 성인으로서의 선생님들이 국가에서 결정한 교육내용을 아직 어린, 미성숙한 학생들에게 가르쳐서 훌륭한 사람으로 키워 내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위의 3가지 요소 중 교육내용은 국가 수준의 교육과정(敎育課程)에 근거하여 만들어졌기 때문에 학교 간에는 큰 차이가 없으나, 나머지 2가지 요소는 서로 달라서 교육의 성과가 다르게 나타나게 됩니다. 즉, 가르치는 선생님들의 경우, 각자의 기본 품성이나 교수 방법, 인간관, 인생관, 세계관 등에서 선생님들마다 차이가 있기 마련입니다. 그리고 배우는 학생들 역시 타고난 재능이나 성격, 가정환경, 부모의 양육(養育) 방식, 하위 학년 교과 성취 수준 등 교육 관련 배경 요인들이 서로 다를 것입니다. 때문에 서로 다른 특성을 갖고 있는 교사와 학생 간의 다양한 상호 작용으로 인해 학습 결과 역시 다르게 나타날 것입니다. 그리고 최대의 학습 효과를 높이는 최상의 방법이 학생의 흥미, 필요, 능력에 맞는 개인별, 맞춤식 교육이라는 것은 이미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래서 국가에서는 학교 학급 정원을 줄이는 노력을 계속하고 있으며, 사교육 부문(인터넷 강의 포함)에서도 소규모 그룹별 반편성 교습(敎習)이나 개인별 맞춤 교육 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학원 외의 다른 방법으로는 1:1 개인 과외(課外) 선생님을 필요로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학교 교육에서 교사, 학생, 교육 내용 중 어느 한 가지라도 빠지면 교육은 성립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세 가지 요소 중 우리 학부모님들이 통제할 수 있는 요소는 학생인 자녀뿐이고, 학교 선생님이나 교육 내용은 선택권이 제한되어 있어서 어떻게 관여해 볼 도리가 별로 없습니다. 따라서 학부모님의 자녀에게 적합한 최고의 선생님과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얻기 위해서는 간접적이나마 상급 학교 진학 시 학교 선택에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게 됩니다. 예를 들어, 고등학교 선택만 하더라도 일반계고, 자립형 사립고, 자율형 공립고, 외국어고, 국제고, 과학고, 영재학교 등 학교 유형(類型)이 다양한데, 학생들이 어떤 유형의 고등학교 또는 같은 유형내에서도 어떤 학교에 진학하느냐에 따라 그 결과는 많이 다를 것이 분명합니다. 특정 고등학교 진학 후 학생들 진로나 학교 부적응 문제로 전학이나 자퇴를 고민하는 학부모님들을 제가 많이 만나 보아 왔습니다. 초래한 원인이나 이유(理由)가 어떻든 여건(與件)이 학부모님의 자녀와 잘 맞지 않았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일 것입니다. 그리고 일반계 인문 고등학교 선택에 있어서도 거주 지역, 공립과 사립, 남학교, 여학교, 남녀공학, 그리고 학교 문화나 학교장의 리더십 등 여러 가지 변수들이 작용하여 자녀들과의 적합성(適合性)을 결정하게 됩니다.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학교와 학교 선생님은 자녀 교육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현실에서 보면 사교육 부문에서의 학원 선생님이나 과외 선생님 역시 자녀의 학습에 큰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학교 선생님과는 달리 학원이나 과외 선생님은 학부모님께서 자녀의 특성에 맞는 선생님을 비교적 자유롭게 선택하실 수 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그렇지만 유명 학원이라고 하더라도 자녀에게 맞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학원 내 교과목 담당 선생님에 대한 선택권이 없기 때문에 담당 선생님과 자녀가 맞을 수도, 맞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개인 과외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교수 방법으로는 최고이지만 그 과외 선생님의 전문 지식 수준이나 성격, 지도 경험, 지도 방법 등에 따라 자녀에게 나타나는 학습 효과는 크게 다를 수 있습니다. 배우는 학생으로서의 자녀는 아직 미성숙자이고, 교사는 특정 분야의 전문가이면서 학생보다 경험과 지혜가 많은 성숙자이기에 자녀가 성장, 발전하는데 끼치는 선생님의 영향은 거의 절대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최고의 운동선수가 되려면 그 선수에게 가장 적합한 최상의 코치(coach)가 필요한 것과 같습니다. 앞으로 계속하여 배우게 될 우리 학생들이 자신과 잘 맞는 선생님을 만나게 되면 자신감, 성취감, 긍정적인 사고방식, 도전 의식 등 여러 가지 바람직한 방향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높아질 것입니다. 자녀의 특성에 맞는 훌륭하신 선생님과의 만남으로 자녀의 생각이 달라지고, 변화하게 되고, 나날이 발전할 수 있게 됩니다. 학부모님의 자녀와 좋은, 훌륭한 선생님과의 만남이 이루어 질 수 있도록 학교나 학원 등을 신중하게 선택하시기 바랍니다. *득천하영재이교육지 삼락야(得天下英才而敎育之 三樂也, 孟子 盡心章句 下): 천하의 영재를 얻어서 교육하는 것이 세 번째 즐거움이다. <나머지 첫 번째 즐거움은, 부모가 모두 생존해 계시고 형제가 무고(無故)한 것이며, 두 번째 즐거움은, 우러러 하늘에 부끄럽지 않으며, 아래로 보아 남에게 부끄럽지 않은 것이라고 합니다.(출처: 孟子講說, 이기동 역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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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래디에이터와 전공 선택(專攻 選擇)
  • 제가 학생들과 개별 면담을 시작할 때 제일 먼저 물어 보는 말이 있습니다. “ 학생은 꿈이 무엇인가? 장차 어떤 직업인이 되고 싶은가? 어떤 대학, 학과를 목표로 하고 있는가?”라고 대화의 문을 엽니다. 이때 위 질문에 막힘없이 바로 대답하는 학생들의 비율은 대략 10명 중 2명 내외입니다. 그리고 나머지 학생들은 아직 생각해 보지 않았다거나, 아니면 나중에 수능 성적 나오는 거 보고 결정할 생각이라고 말하곤 합니다. 10대 후반의 동갑(同甲)내기 학생들인데도 불구하고 미래 목표에 대한 인식(認識) 차이가 이렇게 많이 납니다. 그리고 목표가 명확한 학생들이 그렇지 않은 학생들에 비해 성적도 더 향상된다는 것을 그동안의 경험에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나라에 로스쿨(Law School)이 2009년에 도입(현재 25개 대학에서 매년 2,000명 선발하고 있음)되었으니 아마 2010년 전후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학기 초에 한 학생을 불러 면담하는 자리였습니다. 그 학생은 서울의 명문 외국어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재수(再修)를 하고 있는 상태였습니다. 최상위권은 아니었지만 내신이나 수능 성적이 상위권에는 속하는 학생이었습니다. 면담 후 나중에 알고 보니 최상위권 대학을 목표로 재수를 선택한 학생이었습니다. 그 학생을 처음 보았을 때 역시 똑같은 질문으로 대화를 시작했습니다. “학생의 꿈이나 미래 직업은 생각해 보았나?” “네, 저는 학교 졸업 후 영화제작자가 되려고 합니다.” “그러면, 대학이나 학과는 정했나?” “네, 학부는 00대학 경영학과를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졸업 후에는 로스쿨에 진학할 생각입니다. 나중에 영화제작자가 되려면 경영이나 법률에 대해서도 알아야 할 것 같아서요.” “음..대단하군..그런데 영화제작자가 되려면 그동안 영화도 많이 보았을 텐데, 학생이 보았던 영화가운데 가장 훌륭했던 영화는 어떤 영화였나?” “네, 글래디에이터입니다. 로마시대 검투사 이야기인데요, 이 영화는 벌써 11번이나 보았습니다.” “뭐라고? 같은 영화를 그렇게 많이 보았다고? 한 두 번 보면 줄거리를 다 알게 되어 재미없었을 텐데..” “아닙니다. 볼 때마다 다릅니다. 그냥 내용만 보는 것이 아닙니다. 볼 때마다 장면 하나하나, 배우 하나하나에서 새로운 것을 배우게 됩니다.” 위 학생처럼 어떤 직업이나 일에 대해 학생 본인이 명확한 목표를 갖게 되면, 그것과 관련된 것들에 자발적인 관심과 열정이 생기게 되어서, 그렇지 않은 일반적인 사람들과는 다른 행동을 하게 되나 봅니다. 다른 사람의 눈이나 기대가 아닌, 우리 학생들 본인이 정말 좋아하는 일이나 직업과 관련된 학과 선택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한 경우가 더 많은 것 같습니다. 요즈음 대학들은 학부 모집대신 다시 학과 모집으로 전환하고 있는 추세 속에서 다양한 학과나 세부 전공으로 나누어 신입생을 선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 고3학생이 되어 수시나, 정시 모집에서 학생들이 선호하여 지원하는 학과는 여전히 인문계는 상경계열, 자연계는 의‧약학 계열이 주류(主流)를 이루고 있습니다. 대부분 큰 고민 없이 그렇게들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로스쿨 도입 전에는 법학과가 가장 인기 있었는데, 그 이후는 경영학과가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된 것입니다. 환경 변화로 생긴 보편화된 현상입니다. 저도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는 지원해야 할 학과가 아버지로 인해 이미 결정되어 있었습니다. 판사, 검사가 되기 위해서는 법대를 가야한다는 말을 초등학교 시절부터 계속 아버지에게서 듣고 자랐기 때문입니다.(당시 농촌에 사시던 부모님들의 꿈은 대부분 다 그러하셨을 겁니다.) 당시에는 대학들이 신입생을 전‧후기로 나누어 모집하던 시기였습니다. 당시 저는 전기 대학에 법학과를 지원하여 낙방(落榜)하였습니다. 그때는 이미 재수를 한 상태여서 마지막으로 후기 모집 대학에 지원해서 반드시 합격해야만 하는 절박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대학지원배치참고표(그 당시에는 지금 보다 더 유용하게 활용되었습니다.)를 참고하여 제 성적과 가고 싶은 대학, 학과에 대해 제 스스로는 처음으로, 그리고 진심(眞心)으로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누구의 조언이나 도움도 받을 수 없는 처지였습니다. 오로지 저 혼자서 판단하고, 결정하고, 그 결과에 대한 책임도 혼자서 져야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정말 내가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인가?’, ‘무엇을 잘 할 수 있을까?’ 등의 문제에 대해 많은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선생님이 되는 길이었습니다. 그래서 결정한 것이 교육학과였습니다. 당시에는 교육학과에서 무엇을 배우는 지도 모르는 상태였지만 그냥 사범(師範)대학이니까 졸업하면 선생님이 되겠지 하는 마음으로 지원하게 된 것입니다. 그 때의 그 선택이 지금의 제가 하고 있는 일로 연결되고 있으니 운명이 따로 있나 싶기도 합니다. 미래의 직업, 학과 선택은 당장의 공부보다 더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자녀들의 대학, 학과 선택 시 우리 학부모님이 크게 도움을 줄 수도 있고, 반대로 나쁜 영향을 끼칠 수도 있습니다. 그동안 저는 그런 사례들을 많이 접해 볼 수 있었습니다. 자녀들에게 도움을 주는 학부모님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혹시라도, 학부모님의 바람이나 뜻이 자녀들의 그것과 같지 않다면 믿을 수 있는 제3의 사람에게 도움을 구하여 결정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글래디에이터(Gladiator,劍鬪士): 고대 로마시대 검투사의 파란(波瀾, 물결 파, 물결 랑) 많은 인생과 사랑, 복수를 그린 미국영화, 2000년 제작, 리들리 스콧 감독, 러셀 크로 주연(출처: 두산백과) *사범(師範): 스승 사, 본보기 범-남의 스승이 될 만한 모범이나 본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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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역지사지(易地思之)
  • 흔히 상대방과 갈등(葛藤)이 생겼을 때 그 해결방안으로 제시하는 말 중에 역지사지라는 말이 있습니다. 학부모와 자녀, 아버지와 어머니, 직장 상사와 후배 등 그것이 상하 관계든 아니면 수평 관계든 상관없이 모든 인간관계에서 갈등은 항상 발생하기 마련입니다. 그리고 사람 간의 갈등은 어느 한 쪽이 일방적으로 잘못을 저지른 경우 보다는 대부분 쌍방이 얼마간의 원인을 제공하여 발생하는 경우가 훨씬 많은 것 같습니다. 학부모와 자녀들 간의 관계도 마찬가지 일 것입니다. 한자 사전에서 역지사지를 찾아보면 ‘바꿀 역, 땅 지, 생각 사, 갈 지’로 우리말 뜻풀이가 되어 있습니다. 이 말은 ‘처지(處地: 자기가 처해있는 경우 또는 환경)를 서로 바꾸어 생각해 본다’는 뜻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먼저 학부모와 자녀들 간에 발생하는 갈등 상황을 생각해 봅니다. 학부모님들은 부모 입장에서, 성인 입장에서 자녀들을 바라보고 판단하게 됩니다. 그리고 자녀들은 아직 부모보다 경험이 적은 아이들 수준에서 학부모님들을 바라보고 판단하게 됩니다. 서로 눈높이가 현저하게 다른 상황에서 바라보고 판단하고 있는 것입니다. 때문에 서로 말이 통하지 않는다고 하소연 하게 됩니다. 학부모님은 成人인지라 과거 본인들의 중고등학교 시절로 돌아가서 우리 자녀들의 마음이나 상황을 이해하려고 노력하실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 당시 학부모님이 놓였던 상황(지역, 가정형편, 성적수준, 부모 기대 수준 등)과 지금의 학부모님 자녀가 놓여 있는 상황은 다를 것이기 때문에 현재 자녀가 당면하고 있는 처지를 제대로 이해하기란 쉽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학부모님들의 많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자녀들은 부모를 외면하고 그들의 친구들을 찾아가곤 합니다. 처지가 같거나 비슷한 그들의 친구들 말입니다. 이런 현상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진 것이 없는 것 같습니다. 갈등 상황과는 다른 문제입니다만, 재수하는 학생들을 만나 보면 모두 나름대로의 고민과 아픔을 갖고 있습니다. 수능 상위 등급 학생들은 자신들에 대한 학부모님의 과도한 기대, 실수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 미래 직업에 대한 고민 등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수능 중하위 등급 학생들은 성적 향상에 대한 의구심(疑懼心), 자신감 결여, 미래에 대한 불안 등이 많았습니다. 학생들 간에도 서로 놓여 있는 위치가 다르면 다른 위치에 있는 사람의 아픔을 진심으로 이해하기가 어렵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서로 간의 경험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어느 저녁 식사 자리에선가 서울대학교 출신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서울대학교 출신 학생들은 대부분이 중고등학교 다닐 때 계속 1등을 했거나 한 번 쯤은 1등을 한 경험이 있는 학생들이겠지요. 서울대 출신 어느 분이 말씀하셨습니다. 서울대 출신 학생들은, 공부를 못하는 학생들의 경우, 그 학생들은 도대체 어떻게 해서 공부를 못하는 지 이해를 못한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공부 못하는 학생들을 가르치는 방법을 잘 모른다고요. 학생들이 어떤 부분을 어려워하는지 잘 모른다는 의미였던 것 같습니다. 물론 모든 서울대 출신 학생들에게 적용되는 것은 아니겠지요. 그럴 수도 있겠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저는 경험하지 못했기에 머리로만 이해했습니다). 필요시 과외 교사를 구할 때 참고할 사항입니다. 학부모님들이 미성년 자녀들을 이해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자녀들에게 잔소리를 하지 않기도 정말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포기할 수도 없습니다. 우리 어른들은 자녀들이 보다 훌륭한 사람이 되라고 이러 저러한 조언들은 많이 하게 되지만, 그들은 어쩌면 받아들일 준비가 아직 안되어 있을 수도 있습니다. 다행히도 그동안 제가 만나본 학생들은 공부를 잘하건 못하건 상관없이 유능한 사람으로 인정받는 것에 목말라하고 있었습니다. 위로 받고 싶어 했습니다. 그들의 학부모님들에게서, 학교 선생님들에게서 말입니다. 易地思之! 그들을 이해할 수 없어서 그들의 속마음을 모르는 것이 당연하다면, 이제는 눈높이를 낮춰서 그들에게 물어보는 수밖에 없겠지요. 자녀들이 어떤 상황에 놓여 있고, 어떤 고민을 하고 있는 지를 친구의 마음이 되어 물어볼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갈등(葛藤): 칡 갈, 등나무 등-칡과 등나무라는 뜻으로, 일이나 사정이 서로 복잡하게 뒤얽 혀 화합하지 못함의 비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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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첫 번째 고객님에 대한 회상
  • 벌써 15년도 지난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교육컨설팅이라는 사업을 서울 잠원동에서 처음 시작했을 때가 2002년 8월 중순이었습니다. 처음 시작하는 일이라서 인터넷 홈페이지 외에는 우리가 하는 일을 알릴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잘 모르기도 했지만 그 당시는 유료로 교육상담을 받는 일이 거의 없었던 때였기에 어떻게 돈을 벌어 먹고 사나하며^^ 고민도 참 많이 했을 때입니다. 창업 후 1주일인가 지나서 처음으로 어느 학부모님이 전화를 주셨습니다. 아이 문제로 상담을 요청하는 것이었지요. 사무실을 지나다가 간판을 보고 전화하셨다고 했습니다. 약속 날짜를 잡아서 드디어 제가 그 어머님과 만나게 되었습니다. 당시까지만 해도 제가 주로 해왔던 일은 고3 위주의 대학, 학과 지원에 대한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때 제가 처음으로 만나게 된 학부모님의 자녀는 고등학교 2학년 여학생이었습니다. 고민의 핵심은 어머님 나름대로 초등학교 때부터 학원이나 과외 등 여러 가지 필요한 교육 지원을 해왔으나 성적은 기대한 만큼 오르지 않고, 아이는 엄마와 대화도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아이 아빠는 엄마에게 아이 교육에 관한 모든 것들을 위임했기에 아이 아빠에게 별도의 도움도 받을 수 없는 상태였는데, 마침 저희 회사 간판을 보고 전화하게 된 것이라고 하더군요. 그 누군가와 고민을 이야기하고 필요한 도움을 받을 필요가 절실했던 것이지요. 그동안 만났던 학부모님들의 소망은 거의 대동소이합니다. 공부 잘해서 명문 대학에 진학하는 것이었지요. 제가 만난 어머님도 같은 소망을 갖고 계셨지만 명문대만을 고집하고 계시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기대했던 만큼 성적은 나오지 않고 아이는 그 무슨 이유인지 대화도 하지 않고 집에서 냉전 중이라고 하셨습니다. 그 어머님께서는 지나 온 세월을 아이에게 쏟은 정성과 시간에 대한 아이의 냉담한 반응과 기대에 못 미치는 성적 그리고 아이 아빠에 대한 책임 의식 등으로 고민하고 계셨습니다. 그 어머님께서는 제게 지금까지 살아오셨던 이야기들과 아이에 대한 기대와 갈등 등의 문제들을 이야기 하시면서 많이도 눈물 흘리며 아파하셨습니다. 그 당시 제가 드린 이야기는 어머님과 딸 사이의 관계 회복이 우선이라고 말씀드린 것 같습니다. 어머님께서는 딸이 조금만 엄마 뜻에 따라주었으면 좋겠다는 말씀이셨고, 딸은 엄마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믿어 달라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불신하는 상태에서 자신의 요구만 하고 있었지 상대방의 요구를 먼저 들어줄 생각은 하고 있지 않았던 것이지요. 아마도 대부분의 가정에서 현재도 일어나고 있는 현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저 역시 예외일 수는 없었겠지요. 겪어 보면 결코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입니다. 어머님께서 집으로 돌아가신 후 얼마 후 제가 그 어머님에게 다시 전화를 했습니다. 최초의 고객님이라서 그 결과도 궁금했고, 당연히 피드백도 해 드려야 했기 때문입니다. “ 어머님! 다녀가신 후 아이와의 관계가 좀 좋아지셨나요? 궁금해서 전화했습니다. 걱정도 되구요.” “ 네, 덕분에 요즈음 아이와 많은 이야기를 하게 되었고, 관계도 예전보다는 좋아졌습니다.” “ 참 다행입니다. 아이가 마침내 변한거로군요.” “ 아니에요. 선생님! 변한 것은 아이가 아니라 '저'랍니다. 아이를 좀더 이해하게 되고 나서 제가 변하기로 했답니다.이제는 얼마나 마음이 편해졌는지 몰라요.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