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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제동행(師弟同行)
  • ‘선생님처럼 멋진 선생님이 되고 싶어요!’
  • 올해 1월 말경, 반가운 문자를 받았다. “선생님, 엄지가 서울시 임용고사에 합격되었어요. 감사합니다.” “축하합니다. 엄지는 예쁜 선생님이 될 겁니다.” “선생님처럼 멋진 선생님이 되면 좋겠어요.” 십여 년 전, 서울 근교 신설중학교에 발령이 나서 첫입학생 담임을 할 때 만난 여학생의 어머니와 주고받았던 문자의 내용이다. 엄지는 또래에 비해 생각이 깊고 추진력이 강하고 당당한 포부를 갖춘 학생으로서 학생회 회장직을 수행하면서 학생회를 잘 이끌던 다재다능한 재목이었다. 고등학교도 본인이 가고 싶은 곳으로 진학하여 학교생활을 멋지게 한 믿음직한 학생이었다. 교직생활 후반기... 지역특성상 학부모님들, 학생들의 정도 많이 느꼈고 그 영향으로 나 또한 정을 많이 쏟았고 그 과정에서 학부모들과도 유대가 많았던 시기였다. 당시 학부모회를 결성하면서 어머니들끼리 학생들을 위한 어머니 진로 정보 동아리를 만들도록 권장하였더니 잘 유지되어 지금까지 친목을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학부모님들도 열정이 높아 많은 활동을 지원하였으며 특히 엄지어머니는 방과 후 활동 강사 지원 요청에 기꺼이 응해 학생들을 잘 지도해주신 분이기도 하다. 1, 2회 제자들을 졸업시키고 신설학교 부임 4년 만에 나는 분당으로 전근을 오게 되었는데 스승의 날 즈음엔 언제나 문자인사나 먼 곳임에도 불구하고 찾아와서 얼굴을 보여준 제자들 중 한 아이가 엄지였다. 그러던 중 엄지가 가고자하는 대학을 결정하던 해 가을에 평소 꿈인 교대를 가기로 했다면서 몇 번의 전화 상담과 격려의 대화가 오가던 끝에 ‘경인교대 합격’ 소식을 알려왔다. 대견했다. 무엇보다도 기쁜 것은 제자가 교사가 된다는 것이었다. 이것이 ‘사제동행’ 아닐까? 어려운 길을 같이 걸어가는 과정에서 알고 있는 장단점을 칭찬하고 또 보완해 줄 수 있는 동행의 아름다움.... 그로부터 4년 후인 올해 1월 엄지 어머니로부터 임용고시 합격소식을 통보받게 된 것이다. 엄지에게 문자를 했다. “엄지야 축하해. 애기가 선생님이 되었네. 수고했다. 너는 잘할 거야. 파이팅!” “선생님처럼 멋진 선생님이 되고 싶어요.” “축하주 사줄게. 놀러 와라. 3월 발령은 나겠지?” “발령이 나지 않은 선배들이 있어서 어려울 거예요. 곧 연수를 들어가고 3월에는 기간제로 교 사생활 시작하려고 해요” “그럼 9월에는 발령이 나면 좋겠다.” 교직에 있으면서 큰 보람이 아끼던 제자가 교사가 되는 것이다. 더군다나 그 제자가 가끔 안부를 전해 준다면 그보다 즐거운 일이 어디 있겠는가? 또한 나의 마음을 즐겁게도 하고 한편으로는 얼마 남지 않은 교직생활을 반추하게 해주던 말 ‘선생님처럼 멋진 선생님이 되고 싶어요!’ 최근 접한 뉴스가 마음을 무겁게 한다.임용고사에 합격된 예비교사들이 아르바이트생으로 전전하고 있다고 한다. 든든한 교육정책이 마련되어 엄지뿐만 아니라 모든 임용고사 합격자들의 꿈이 아름답게 펼쳐지기를 기원한다.
  • #사제동행(師弟同行)
  • 나를 돌아보게 만들어준 K군
  • K군을 처음 만난 것은 1학년 수학영재학급에서였다. 1학년에서 소화하기에는 다소 심화된 내용을 바탕으로 한 어려운 과정에서도 맑은 눈망울로 참여함은 물론 뛰어난 이해력을 보여주어 눈여겨 본 학생이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긍정적 첫 인상을 남기고 영재학급에서의 만남을 끝맺었다. 1년이 조금 넘은 후 2월에 3학년이 될 K군이 학급에 배정된 것을 알고 나름 기대를 갖게 되었다. 학생들의 성적을 미리 파악해 본 결과 역시 최상위권의 성적을 유지하고 있어 대견하게 생각하게 되었다. 하지만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는 옛말은 틀리지 않다는 것을 첫날 깨닫게 되었다. 2월에 신학년 대비 학생상담과 자습을 병행하는 과정에서 K군은 지금까지 겪어왔던 많은 최상위권 학생들과는 너무나 다른 모습을 보여주었다. 항상 잠에 취해 있는 모습과 자주 조는 모습에서 처음에는 학원을 많이 다녀서 피곤해서 그런가? 게임 때문에 늦게 잠드는 것인가? 하는 의문으로 좀 더 구체적으로 알아보게 되었다. 이전학년 담임 선생님과 얘기도 나누어 보고 같은 재단의 중학교 출신이라 중학교 담임 선생님과도 얘기를 나눠보고 어머님과의 전화 상담을 하면서 K군은 6년간 사교육을 전혀 받아본 적이 없는 학생이라는 새로운 사실도 알게 되었다. 게다가 스마트폰조차 없으며 게임과도 전혀 거리가 먼 학생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또한 가정에서도 자율적 의견을 존중하고 흔히 말하는 어머님의 치맛바람이 전혀 없이 자기주도적 학습을 하는 몇 안 되는 학생임을 알게 되었다. 자율형사립고에서 사교육의 도움 없이 혼자의 힘으로 최상위권을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에게 다시 한 번 놀라게 되었고 더욱 관심을 갖게 되었다. 이후 상담 과정에서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것에 대한 힘겨움과 현재 뚜렷한 목표 없이 하는 학습의 어려움이 이유임을 알게 되었다. 뚜렷한 목표가 없으면 누구에게나 힘든 과정이라는 것을 조금 더 이해하는 계기가 되었다. 큰 기대에 따른 실망을 안고 3월 학기가 시작되자 2월에 언제 그랬냐는 듯이 예전에 봤던 총명함과 집중력을 다시 보여 주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중간고사와 학력평가의 결과물은 충격적이었다. 매월 성적 출력 이후 마다 이뤄지는 지속적인 상담에서도 특유의 긍정적 사고와 강한 자신감을 느낄 수 있었다. 이전에도 중간 과정에서 실패는 하였지만 최선을 다해서 극복한 경우가 많았다는 상담내용에서 오히려 내가 걱정하고 있는 것이 기우(杞憂)이며 맘이 편해지는 듯한 묘한 느낌을 갖게 되었다. 객관적으로는 극복하기 힘들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믿음을 갖게 되었으며 안심하게 되었다. K군은 자신의 약속대로 기말고사에서 극적인 성적의 향상을 보여주었고 허언(虛言)이 아님을 증명하였다. 학생과의 상담에서 3학년 담임으로서 객관적 분석과 학생의 발전을 위한 격려와 희망 상담의 조절이 필요함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되었다. 중간고사 직전 다른 학급에서 익숙한 글씨체의 노트를 발견하였다. 바로 K군의 과학 노트였다. 평소 깔끔한 글씨체와 꼼꼼한 정리를 눈여겨 봐두었기 때문에 금방 알아보았다. 최상위권의 학생임에도 수업에 대한 높은 집중력을 지니고 있어, 다른 반에서도 시험 기간에 K군의 노트를 자주 빌린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K군은 힘들게 만든 노트를 부탁하면 전혀 거리낌이 없이 누구에게나 빌려주고 있었다. 일반적으로 학생들은 성적만을 위해 관련 과목에만 최선을 다하고 자신과 관련 없는 스펙이라고 생각되는 활동에는 무관심한 학생들이 많다. 게다가 K군은 중간고사의 충격에도 불구하고 5월 교내 백일장 대회에서 원고지 여러 장을 고쳐가면서 참여하는 진지한 자세와 제출물에서 느껴지는 학업외의 다른 능력에 또 한 번 놀라게 되었다. 이과학생임에도 평소 연예, 사회이슈 등 다양한 분야에 대한 관심을 갖고 있었으며, 다른 학생들에게 늘 도움을 주며 함께 하는 것이 자신에게 더욱 큰 도움이 된다는 생각으로 적극적으로 상담을 받아주고 질문을 받아주는 모습이 인상적인 학생이었다. 자율형 사립고에서 이기적인 행동과 자신만을 아는 학생들을 마주칠 때마다 K군을 생각하게 된다. 꼭 학원을 다녀야 하는 질문에 회자되는 몇 안 되는 바른 인성을 지닌 모범학생이었으며, 부모님이 학교에 전폭적인 신뢰를 보여준 학생으로 앞으로 만나기 어려운 제자라 생각한다. 올해 K군의 동생이 다시 3학년이 되었다. 동생 역시 바른 인성을 지니고 있어 두 아이의 아빠로서 바른 인성으로 키운 부모님에게 존경과 감사를 표한다. 이 글을 쓰면서 매년 스승의 날에 아직 스승이라 부르기에는 부끄럽다는 말을 학생들에게 했던 나를 돌아본다. 나에게 기억이 남은 제자에게도 나 역시 기억에 남는 스승인지 다시 한 번 돌아보는 기회를 갖게 된 것에 감사하며 남은 교직 생활에도 항상 이 질문을 품고 생활하려고 한다. 나를 돌아볼 기회를 갖게 해준 K군에게 글을 통해 감사를 표한다.
  • #사제동행(師弟同行)
  • 날마다 새롭게 도전한 k군의 고3 생활과 미래 역량 강화 준비
  • 누구나 공부를 잘하고 싶어 한다. 문제는 공부하는 것이 쉽지 않고 조금 한다고 해도 생각처럼 성적이 향상되지 않는 데 문제가 있다. 꾸준히 하기도 쉽지 않다. 작심삼일(作心三日)이란 말처럼 잠시 스쳐 지나는 생각을 붙들다가 이내 수면 아래로 잠기면 언제 그런 생각을 했던가 까마득하다. 담임 시절 기억에 남는 제자 K군이 있다. 내신 성적으로 보면 하위에서 2~3등 하는 학생이다. 이와 비슷한 L군도 있었다. 이 두 학생은 뚜렷하게 대조를 이루며 일 년을 보냈다. K군은 근거 없는 자신감이 넘쳤지만 L군은 쉽게 대학에 가려는 생각이 앞섰다. K군은 시험을 보고 나면 다음 시험에는 더 올릴 수 있으니 자신을 믿어 달라고 했다. 그리고 가끔씩 면담도 하고 교과담임선생님의 의견도 들어보고 내 수업시간에도 보면 정말 열심히 하려는 태도가 역력했다. 1, 2학년 시절 열심히 하지 않은 것을 만회하려는 듯 매우 성실하게 공부했다. 중간고사, 기말고사와 그 사이에 모의고사 시험을 치르고 나면 먼저 찾아와서 다음 시험에는 얼마를 더 올릴 수 있다고 확신한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자신의 장담이 현실화되는 것이다. 이렇게 일 년간 꾸준히 성적의 변화를 보인 K군과 K군의 어머니는 수능 원서 쓸 때 예체능계로 진학하겠다고 하였다. 지속적으로 성적이 향상되어 학년 초보다는 상당히 좋아졌지만 희망대학에 진학하기는 어려우니 계열을 체육을 하면 더 선호하는 대학에 지원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서였다. 평소 운동에도 관심이 많았기 때문에 성적을 고려한 차선의 선택이었다. 결국 수도권 대학 체육전공으로 합격을 했다. K군의 부모님은 K군이 꾸준히 노력하여 성적도 상승하고 긍정적인 자세에도 만족하였다. 기대이상의 성과를 보인 아들에 대한 신뢰가 높았다. K군 스스로 국내보다는 외국에서 공부하기를 희망하여 결국 국내대학에서 만족하지 않고 외국대학으로 유학의 길에 올랐다. 반면 L군은 수능성적을 반영하지 않는 대학이나 전문학원에 관심을 갖고 원서를 내려고 하였다. 수능준비를 하고 그 이후에도 기회가 많으니 우선을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한 후에 결정해도 늦지 않다고 했지만 학업에 관심을 두지 않고 고3 시절을 보냈다. 두 학생의 예에서 느낀 점은 학업이나 자신의 역량을 키우는 것은 하고자 하는 의지와 동기가 전제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불과 1년도 채 되지 않는 시간이지만 자신의 인생의 방향을 바꿀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 된 것이다. 이러한 동기 부여는 주위에 지속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부모님, 선생님, 친구, 친척, 영화, 책, 여행 등 모든 환경이 동기부여의 자극이 될 수 있다. 이 자극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고 전환의 계기로 삼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자신 마음을 유연하게 하면서도 자신과는 타협하지 않는 엄격함이 필요하다. 요즘 대표적인 대입전형인 학생부종합전형에서도 지원자의 학업동기, 열정, 잠재력, 발전 가능성, 도전정신 등을 강조하고 있다. 더욱이 미래 사회에서는 창의력과 감성, 인성, 협업 능력, 리더십 등이 중심이 될 것이라 한다. 사실 이러한 요소는 현재에도 이미 중요한 요소이지만 4차 산업 사회에서는 단순 반복이나 기계적인 작업 등은 인공지능이나 로봇에 상대가 되지 않기 때문에 새로운 분야를 개척해야하는데 그 핵심이 바로 이러한 역량인 것이다. 이러한 역량을 개발하려면 먼저 자신을 이해하고 내면의 역량을 어떻게 극대화할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현재 하는 공부가 자신이 사회에 진출해서도 유용한 역량일 될 것인지도 생각해야 한다. 인공지능이 인간이 발전시킨 지식을 아주 빠른 시간에 습득하여 종합하는 뛰어난 능력을 갖추고 있을 뿐만 아니라 스스로 학습하고 강화하는 능력도 최근에 보여주고 있다. 이제는 이러한 인공지능과 인간이 협업하면서 생활해야하는 시대가 되었다. 인공지능이 잘하는 부분은 자의든 타의든 인공지능에게 맡겨야 하고, 인공지능의 역할을 모색하고 방향을 잡는 근본적인 역할은 인간이 해야 할 것이다. 로봇과 함께 살아가는 시대에 인간이 어떤 역할을 하고 그 역할을 위해서 무엇을 준비해야할지 K군의 사례에서 찾아볼 수 있다. 스스로 할 수 있다는 믿음과 실천 그 과정의 결과, 그리고 늘 새롭게 변신하려는 자세와 도전이 그것이다. 이러한 역량은 과거에도 존재했고 앞으로도 인간만이 지닌 소중한 자산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어떤 자세로 학업에 임해야 할까? 현재는 학교에서 선생님이 준비한 프로그램에 의존하지만 이제는 그 프로그램을 스스로 창안하여 실천하고 과정을 분석하고 문제점을 발견하고 수정·보완하는 자신의 프로그램을 개발해야 한다. 여기서 프로그램이란 거창한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적으로 당면한 자신의 환경에 대처하는 것이다.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학습과정을 거치면 큰 것도 두렵지 않게 대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렵게 생각하지 말고 뭔가 문제 상황에서 해결하려는 마음만 있다면 스스로 고민하고 해결방법을 찾거나 남의 도움을 받아 해결하거나 남들이 시도하지 않은 새로운 방법을 찾아 해결하면 될 것이다. 문제는 해결하려는 의지가 있는가에 달려있다. 생각만 하지 말고, 두려워 말고 도전해 보자. 실패할수록 성공의 가능성은 높아질 것이다.
  • #사제동행(師弟同行)
  • 역경을 이겨낸 승리
  • 오늘 아침에도 어김없이 전화벨이 울린다. 학교를 졸업한지 벌써 17년이 되는데 매년 스승의 날 아침이면 한 번도 거르지 않고 전화로 인사를 해 오는 제자가 있다. 어느 해인가는 걸음도 제대로 걷지 못하는 불편한 몸으로 작은 카네이션 바구니 하나를 들고 땀을 흘리며 학교로 나를 찾아오기도 했다. 그 아이는 뇌성마비 1급 장애를 안고 태어난 아이였다. 그가 인문계고등학교에 들어와 고3 때 우리 반이 되었을 때는 나는 난감할 뿐 이었다. 솔직히 어떻게 지도를 해야 하는지 특수아 지도에 경험이 전혀 없던 나는 두려움도 있었다. 행동도 부자연스러웠고 그가 이야기하는 말도 재대로 알아들을 수 없었다. 그러나 3월이 거의 끝나갈 무렵 참으로 신기하게도 그 아이의 말을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알아들을 수 있었고, 전화속의 말도 들을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다른 아이들과 함께 스스럼없이 장난도 하고 떠드는 그를 보며 내가 가지고 있었던 편견이 얼마나 잘 못 되었는지를 깨닫게 되었고 담임 선생님의 아이들을 향한 사랑의 힘이 이렇게 큰 것인지 새삼 느낄 수 있었다. 한 번은 그 아이가 교무실로 나를 찾아왔다. 동아리 부서를 정하는 일이었다. 우리학교는 기독교 학교로 남학생으로 이루어진 빛 소리 중창단이 있는데 그 중창단에 들어가 활동을 해보고 싶다는 것이었다. 안된다고 하자니 그 아이에게 너무 큰 상처를 안겨 주는 것이 될 것이고 해 보자고 하면 담당 선생님이 당혹해 하실 것 같아 쉽게 대답을 할 수 없었다. 일단 그 아이를 돌려보내고 담당 선생님과 상의를 하였다. 처음에는 난색을 보이시던 선생님도 나름대로 의미가 있을 것으로 생각하여 허락을 해 주셨다. 그 아이의 그 때의 기뻐하는 모습은 지금도 지워지지 않는다. 그 후 그 아이는 연습도 빠지지 않았고 행사 때마다 불편한 몸으로 다른 단원들과 함께 무대에 올랐다. 그 해는 우리 학교가 개교 100주년이 되는 해 이어서 여러 행사도 많았다. KBS에서 진행하는 골든벨 프로그램에도 나가 노트북을 사용하여 답을 적어 보임으로 카메라에도 잡히고 단독 인터뷰의 기회도 가질 수 있었다. 그 후 그는 이러한 활동들을 인정받아 대학 진학 시 기독교 교육학과에 당당히 합격 할 수 있었고 대학 4학년 때는 어엿한 모습으로 교생 선생님으로 다시 학교에 오게 되었다. 4주간의 교생 실습 중에도 열심을 다하는 그를 보며 장애는 우리의 편견일 뿐 그 에게는 전혀 어려움이 없는 일임을 알게 되었다. 교생 실습이 거의 끝나갈 무렵 그는 우리 집에 전화를 했다. 우리 집사람이 전화를 받았는데 정색을 하며 전화를 끊었다. 누구냐고 물었다니 웬 술 취한 사람이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며 누구를 바꿔 달라는 것 같은데 알아들을 수 없어 그냥 끊었다는 것이다. 나는 직감적으로 그 아이라 생각하였고 다시 전화벨이 울려 내가 받았다. 그동안 4주간의 교생 실습이 선생님 덕분에 너무 좋았고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어 고맙다는 인사를 하려 전화를 했다는 것이었다. 그 후 그 아이는 여러 분야에 도전을 하여 지금은 오 마이 뉴스 기자로 활동을 하고 있다. 얼마 전 모 정치인이 우리 학교를 방문 하였을 때도 휴대용 노트북을 들고 많은 기자들 틈에 끼어 타자도 불편한데 취재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날 저녁 뉴스를 보니 내가 느끼지 못했던 부분까지 아주 근사한 문장으로 그날의 행사를 보도하고 있었다. 그날 밤 다시 전화가 왔다. 모처럼 모교를 방문 했는데 선생님께 인사를 제대로 하지 못해 죄송하다는 것이다. 이제 장가도 가야 하지 않겠냐 했더니 아직 여자 친구가 없으니 선생님이 소개를 해 주시면 그날 바로 장가들겠다고 농담도 한다. 아이들의 능력은 무한하다. 우리들이 편견을 가지고 아이들을 대하지 않는다면 그들은 어떠한 역경도 이겨 낼 수 있는 저력을 가지고 있다. 걸음도 제대로 걷지 못하고 말도 어둔하고 글씨 쓰는 것도 불편한 그 아이가 그래도 나름대로의 자기의 삶에 최선을 다하며 열정적으로 사는 모습이 얼마나 아름다운 삶인지 36년 째 교단에서 아이들과 함께해온 나를 뒤돌아본다. 그리고 오늘도 교실에서 운동장에서 또 밤늦도록 불 켜진 교실에서 자기들의 미래를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아이들과 마주한다. 「주역」에 각득기소(各得其所) 라는 말이 있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제각각 자신이 있어야 할 곳에 있을 때 당당함과 마땅함을 얻는다는 뜻이다. 선천적 장애로 인하여 어렵고 힘든 상황일지라도 자기가 있어야 할 곳을 스스로 찾아 당당하게 그리고 열정적으로 살아감으로 역경을 딛고 이루어낸 승리한 삶을 사는 그 아이처럼 모든 아이들의 모습도 분명 변하고 성장하여 마땅히 있어야할 자리를 찾아가리라 믿는다.
  • #사제동행(師弟同行)
  • 사제동행의 즐거움
  • 매년 초가 되면 한국은행 전북본부 주최 고교생 경제토론대회가 개최된다. 한국은행의 통화 정책이나 금융 생활에 도움이 되는 지식을 배우기도 하고, 우리나라 경제 지표들을 심층적으로 이해하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또한 경제토론대회에서는 한국은행이 사회적 이슈나 담론이 되는 토론의 주제를 정하면 이 지역 최고의 학생들이 모여 지역 경제의 문제점을 진단하여 해결책을 찾아 설명하고, 경쟁하는 상대팀에서 그것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대안을 찾는 방식이어서 진정한 경제 실력자를 뽑는 과정으로 인정받고 있다. 2017년에도 우리 학교 학생들은 내가 가르치던 2학년 학생 중에서 5명의 지원자를 선발하여‘청학나르샤’라는 팀(김성민, 유성연, 김예은, 박소연, 안수빈 이상 남학생 2명, 여학생 3명)을 만들어 출전하기로 하였다. 거의 매해 자율동아리 형태의 경제동아리는 내가 지도하였고, 출전했던 학생들 상당수가 최우수상을 수상하였던 터라 부담감은 컸지만, 우리 학교의 새로운 전통이 되어가고 있어 언제나 많은 지도와 대비가 필요했다. 이번 팀은 전라북도 지역이 전주의 한옥마을을 기반으로 하여 인근 지역사회와 연계되는 관광 인프라를 구축하여 21C 새로운 트렌드에 맞는 관광 전북의 산업을 구축하는 전략을 세워야 했다. 발표 시나리오와 PPT파일의 작성, 예상되는 반론 등을 만드는 일은 만만치는 않았다. 특히 토론대회는 주제와 관련된 내용을 심층적으로 분석하고 문제점을 찾아 상대팀보다 먼저 토론의 헤게모니를 잡아야 한다. 수빈이는 시나리오를 예은이는 아이디어를 제시하였고, 성민이는 PPT를, 성연이와 소연이는 문제점을 찾아 반론을 제시하는 역할을 맡았지만 이 지역 관광 산업과 새로운 트렌드를 찾아 대안을 제시하는 상황까지는 많은 시행착오를 거쳐야 했다. 다행히 겨울 방학 중이어서 우리는 늦은 밤까지 학교 도서관과 특별실을 이용하여 열띤 토론을 하며 주제를 완성해 가고 있었다. 아이들도 3학년으로 진학을 앞두고 있어 겨울방학 방과 후 학교에 참여하면서 대회 준비를 해야 하니 여러 가지 힘든 상황이 한 둘이 아니었을 것이다. 때문에 아이들 옆에는 언제나 내가 있어야 했다. 처음 주제를 정하고 의견을 조율하는 일은 쉽지 않았지만 점차 주제에 대한 이해력이 심화되고 서로를 이해하며 의견을 조율하면서 우리는 이미 하나가 되고 있었다. 지역 사회 거버넌스를 이해하고 미래의 트렌드를 예측하여 대안을 마련해야 상대팀으로부터 공격을 덜 받게 된다. 때문에 우리는 예상되는 반론과 문제점을 찾아 분석과 대안에 대한 수정 보완에 추운 겨울밤을 함께 해야 했다. 드디어 간절하게 기다렸던 경제토론대회가 끝나고 우리는 최우수상을 받았다. 성민이는 개인별 경제 골든별에서 우수상까지 받아 충분한 보상을 받았다. 수상을 기다리던 초초함이 클수록 수상의 기쁨은 최고였고, 나는 또 어쩔 수 없이 아이들과 함께 저녁을 한턱 쏘아야만 했다. 우리는 늦게까지 기쁨을 나누었고, 학창시절 소중한 추억을 만들며 자신감을 채워갔다. 나는 여기에서 멈춰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고 부상으로 받은 100만원 중 일부를 연탄은행에 기부하자고 제의했다. 아이들은 대견하게도 모두 동참하기로 하면서 50만원은 장학금으로 사용하고 50만원을 기부하기로 하였다. 덕분에 소외된 지역 사회에 기부도 하면서 수상의 뜻을 드높일 수 있었다. 우리들은 서로에게 모두를 말하지 않았어도 사제동행의 기쁨을 느끼며 가슴 벅찬 순간과 의미 있는 일을 진행하면서 부쩍 성장해버린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을 것이다. 지금까지 내가 교단에서 의미를 찾고 있었던 것은 진정으로 아이들을 성장시키고, 멋진 신세계로 보내 비상하는 것을 보는 것이다. 이것이 교사로서의 존재 이유이며 사제동행의 즐거움이 아닐까?
  • #사제동행(師弟同行)
  • 수험생과 학부모의 자기관리
  •  고3 수험생 학부모가 왔다. 자기 아들이 1, 2학년 때는 학교 활동도 활발히 참여하고 공부도 열심히 했는데, 3학년이 되어 학습 강도도 약해지고 감정 기복도 심해졌다고 한다. 수능 모의고사를 보고나면 한 이틀은 감정을 추스르지 못하고 기운이 없어 공부에 집중하지 못하는 것 같다며 한숨을 내쉰다. 3학년 중간고사 성적도 2학년에 비해 많이 떨어져서 학생부 종합전형에 지원할 상황도 못된다며, 대입전략을 새로 짜야 할 판이라며 큰 걱정을 한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고1, 2 때는 학생부 종합전형을 대비하여 활발하게 수업에도 참여하고, 창의적 체험활동이나 독서활동 등을 골고루 한다. 친구들과 과제탐구 학습을 준비하면서, 자신이 맡은 임무를 완수하기 위하여 밤늦게까지 자료를 모으고 정리하기도 하고, 다른 친구가 준비한 보고서를 검토하면서 자연스럽게 학습에 몰입하기도 한다. 수업시간에 발표를 잘하면 선생님이나 동료들에게 박수도 받으면서 학급 구성원으로 자존감도 키워간다. 어떤 때는 스포츠클럽활동으로 새벽에 나와 운동을 할 때도 있고, 어떤 때는 합창 연습으로 밤늦게까지 노래를 부르기도 한다. 중간고사나 기말고사 기간에는 학교와 학원에서 내 준 문제를 푸느라 밤을 새우기도 한다. 부모가 끼어들 틈도 없이 혼자 바쁘게 움직인다. 고3이 되면 수능공부에 몰입해야 한다. 사실 수능공부는 매우 특수한 학습이다. 의대를 졸업하고 보는 의사국가시험이나 로스쿨을 졸업하고 보는 변호사 시험과 다를 게 없는 시험이다. 시험과목과 범위가 넓고, 짧은 시간에 많은 양의 문제를 풀어야 한다. 굉장히 많은 양의 지식을 기억해야 하고, 그 지식을 민첩하게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수십 번을 반복한 내용도 까맣게 까먹기도 하고, 어제 맞힌 문제를 오늘 틀리기도 한다. 완벽하게 이해한 개념인데도 수능형 문제로 응용되면 틀린다. 수능 공부의 끝이 안 보인다. 그리고 두뇌는 가변적이고 불완전하다. 수능 날짜가 바짝바짝 다가오면서 불안해지면 두뇌의 기능이 더 떨어진다. 특히 고3시기에는 시간이 지날수록 공부할 양은 점점 많아진다. 그에 비례하여 불안감은 커지고 집중도는 떨어진다. 마침내 자신감마저 상실한다. 그래서 오늘 당장 수능시험을 보고 이 지루한 싸움을 끝내고 싶어 한다. 일부 과목, 또는 일부 단원을 포기하고 싶어 한다. 수험생은 지금 정말 힘든 터널, 탈출 할 수 없는 캄캄한 터널을 지나고 있다. 수험생은 자기관리에서 성공을 이끌어 내야한다. 자기관리의 기본은 수면 관리이다. 수면은 신체 건강과 직결되고 일상의 기분을 좌우하며 두뇌 컨디션을 결정한다. 그래서 하루 일과 중 가장 중요한 것은 공부가 아니라 수면이다. 밤 12시 전에 잠자리에 들어 아침 6시 전후에 기상하는 것이 좋다. 수능 시험 날 시험장에 8시까지 입실해야하기 때문에 새벽형 습관이 중요하다. 수면 시간은 긴장할수록 짧아지는데, 너무 긴장하여 수면시간이 5시간 이하로 내려가면 위험하다. 그럴 때는 점심 식사 후 잠깐 낮잠으로 보충해야 한다. 감정 관리도 중요하다. 주변에서 험한 소리를 들을 수도 있고, 기분 나쁜 광경을 볼 수도 있다. 여기에 감정을 실어 고민할 필요가 없다. 신경 쓰이는 모든 일은 수능시험이 끝나고 생각하기로 넘겨두고 공부에 집중해야 한다. 너무 기분이 나빠 집중이 안 되면 심호흡이나 복식호흡, 친한 사람과 통화, 또는 간단한 산책, 상담교사와 대화 등으로 국면을 빠르게 전환해야 한다. 반대로 선생님이나 친구들이 격려를 해주면 진심으로 고마워하고 좋은 기분을 오래 동안 즐겨야 한다. 원래 사람은 감정 상한 것은 오래가고, 기분 좋은 것은 바로 잊는다. 그래서 자기관리가 필요하다. 자기관리는 수험생뿐만 아니라 학부모에게도 중요하다. 자녀가 안정감 있게 공부 열심히 하고 좋은 성적표 들고 오면 당연히 부모님은 좋아한다. 그러나 그런 집안은 전국에 몇 집 안 된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힘들게 공부하고, 아침에 일찍 못 일어나고, 늘 어깨가 축 처져 있다. 시험 성적표 역시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렇다고 부모님 감정관리가 되지 않아 집안 분위기가 불안하면 수험생은 더 힘들어 한다. 이런 악순환의 고리는 부모님이 끊어야 한다. 부모님이 씩씩하게 앞장서나가고, 긍정적 기운을 불어 넣어 주어야 자녀도 자기관리를 잘 한다. 결국 성패는 자녀가 결정짓지만 부모님의 역할도 중요하다. 
  • #사제동행(師弟同行)
  • 새 학년 새 학기 새 출발선에 있는 고3 에게
  • 병아리 잔 솜털 같은 햇살이 곱게 퍼지는 일곡 동산. 올해도 황사먼지 아랑곳하지 않고 목련은 하얀 얼굴들을 일제히 내밀었다. 장하다. 목련아! 내 심장은 반갑고 경이로움에 뛰기 시작했다. 기다려본 사람은 안다. 기다린다는 것은 마음속에 누군가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일이며 그를 위해 마음 한 구석을 비워두는 일이라는 것을 설렘과 걱정으로 신학기를 맞은 것 같은데 벌써 한 달이 지났구나. 한 달여 동안 나는 너에게 어떤 모습으로 보여 졌을까 생각하니 조금은 걱정이 된다. 빡빡하게 아니면 생각하지도 않았는데 기대 이상으로 ㅎㅎ 선생도 사람이다. 진심으로 선생의 좋은 점만 닮아가기 바란다. 고3이 되니 걱정이 되었다. 새 학년 새 학기 ‘이제 진짜 공부를 하자!’고 결심했다. 그러면서 그날은 오랜만에 책상 정리부터 시작했다. 이틀째 되는 날에는 공부일정을 짜야 한다면서 한 손에 자를 들고 꼼꼼하게 선을 그어가며 시간표를 짰다. 그러면서 오늘 할 일은 다 했다며 만족하며 잠을 청했다. 사흘째 되는 날에는 문제집이 없으면 공부가 안된다며 서점에 갔다. 나간 김에 내일부터 열심히 해야 할 것인데 PC방에 들러 게임 한판 하자며 시간을 보냈다. 나흘째 되는 날은 어제 한 게임이 자꾸 신경이 쓰였다. ‘그래봤자 두 시간정도면 한 게임이 끝나는데 두 시간 뒤에 공부하면 되겠지‘하면서 다시 컴퓨터를 켰다. 그러다 또 하루를 그렇게 보내고 말았다. ㅠㅠ ‘공부를 하자!’는 결심을 했다면 먼지투성이 책상이라도 좋으니 우선 책상 앞에 앉자. 그러고 나서는 낡아서 너덜너덜해진 만화책이라도 좋으니 책을 펼쳐라. 먼저 행동을 일으키는 것이 급선무이다 일단 시작하고 생기게 되는 여러 가지 불편 사항은 그때그때 해결해 나가면 되는 것이다.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시작하자는 말은 ‘하고 싶지 않다“는 말과 같은 것이다 미완성인 상태지만 조금씩 부족한 것을 수정하면서 목표에 돌진하면 되는 것이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른 때이다. 쇠뿔도 당김에 빼라. 지금 당장 시작하자 우리들 삶에는 기다림도 있어야한단다. 지금 겪고 있는 고3 생활도, 새롭게 만난 친구도, 미래를 위한 공부도, 우리가 보는 봄 꽃 들에게도 모두가 기다림이 필요하지. 화사하게 자기를 자랑하는 봄꽃들도 겨우 내내 추위를 참고 견디며, 자신을 끊임없이 담금질하며 봄을 기다리고 있었겠지. 조금은 더딜지라도 기다릴 줄 아는 지혜를 네가 가졌으면 한다. 모래 위에 물을 부어 본적이 있었다, 물을 붓자 흔적도 없이 모래 속으로 물은 사라져 버렸다 계속해서 물을 붓자 표면 위로 물이 서서히 보이기 시작했다 모래 틈 사이로 물이 채워졌기 때문이다. 기다릴 줄 알아야 했다. 세상일도 그렇지 않을까 생각했다. 모래 틈 사이에 물이 채워져야 물이 보이듯 노력의 땀이 채워져야 그 결과가 보인다는 것. 그 결과가 당장 확연히 보이지 않는다고 포기하면 안 된다는 것. 지금 하고 있는 노력들이 모래 틈사이로 물이 채워지는 시간과 같은 것이라는 것. 채워지기만 하면 물은 금새 눈으로 확인이 되듯 한 순간만 넘기면 된다는 것. 모래에 물을 부으며 얻은 깨달음이었다. 지금 당장 그 결과가 확연히 보이지 않는다 하더라도 중도에 포기함이 없이 용기를 잃지 않고 노력한다면 머지않아 아름다운 꽃을 피워낼 때가 반드시 오리라 믿는다. 길을 걷다보면 오르막길이 있듯 고3 생활 속에도 힘든 고비가 올 것이다. 아마 평가원에서 실시하는 6월과 9월 모의평가 결과가 그럴 것이다. 그럴 때 마다 너 자신을 믿어야 한다. 너 자신을 믿는다는 것은 너의 끝이 창대하리라는 약속과 같은 것이란다. 유리하다고 교만하지도 말고 불리하다고 비굴하지 말아라. 태산 같은 자부심을 갖고 누운 풀처럼 자리를 낮추어 점검해 보아라. 우리 인생에 가장 큰 영광은 한 번도 쓰러지지 않는 것이 아니라 쓰러질 때마다 일어나는 것 이란다. 젊다는 것은 깃발 같은 것이라고 생각을 한다. 펄럭이지 않으면 더 이상 깃발이 아니듯 몸부림이 없다면 더 이상 젊은이가 아니란다. 시행착오를 두려워하지 말고 몸부림을 쳐보자. No limit “한계는 없다”. 작은 빗방울들이 모여 강을 이루고 이 강물이 모여 넓은 바다를 이루는 것이다 뒤돌아보면 늘 후회가 남는 게 삶인 듯싶다. 후회를 최소화하는 방법은 매사에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사는 것이라 믿는다. “뿌린 만큼 거둔다.”는 말이 있다. 우린 때로 씨 뿌림은 하지 않고 빈약한 거둠에만 마음 아파하고, 집착할 때가 많지. 준비하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해 뿌린다면 행여 거둠이 적다할지라도 감사할 줄 아는 겸손함도 생겨나지 않을까 생각한다. 오늘 걷지 않으면 내일은 뛰어야 한다. 한 걸음 한 걸음 걷다보면 정상에 와 있듯이 힘든 고3 생활을 함께 걸어가 보자. 기회는 늘 준비된 자에게만 온다는 사실을 명심하고 파이팅이다. 아자! 아자! 함께하자, 너를 사랑하는 담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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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타임머신을 대여해 드립니다
  • UNIST에서 책임입학사정관으로 활동을 하다가 퇴임하고, 부산 J고등학교에서 근무 할 때, 학기말 고사가 끝나고 무더운 7월 초순, 많은 학생들이 수시모집에 지원하기 위해 상담을 하고 자기소개서를 작성하기 위해 분주하게 뛰어다닐 때 일이다. 2학년 담임을 하고 있어 나에게는 자기소개서에 대한 상담을 하는 학생이 없었다. 그러나 D대학에 지원하려는 학생이 찾아와 자기소개서를 작성하는데 도와 달라고 하였다. 먼저 학교생활기록부를 분석하고 자기소개서의 질문에 대한 내용을 살펴보니 구체적인 표현이 없고 무엇을 표현하려고 하는지에 대한 핵심이 없었다. 그래서 좀 구체적으로 적어보고 다시 오라고 하였다. 다음 날 적어 온 내용을 모니터를 통하여 학생에게 다시 읽어 보라고 하니 “아! 다시 작성해야겠습니다.”라고 하여 가지고온 USB를 주었다. 이러한 일을 3~4번 계속 되었지만 내용에는 큰 변화가 없어 보였다. 그래서 “학생! 내가 타임머신을 빌려 줄게, 이 머신을 타고 눈에 보이는 데로 이야기를 해봐.” “지금 이 사건이 몇 학년 때, 언제쯤이야?” “무슨 일을 하려고 누구와 함께 어디에 있는 거야?” “주변의 친구가 누구야? 무슨 이야기 하고 있어?” “너는 어떻게 행동하고 있는데? 구체적으로 이야기 해봐!” “그래, 그 일로 인해서 너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니? 친구들에 대한 감정은?” “추진하고 있는 행사는 잘 끝난 거야?” “그 일로 인하여 학생이 느낀 점은? 어떤 다짐을 했어?” “자신의 행동에서 가장 반성하는 점과 잘 한 점은? “모든 일이 마무리 되었으면 이제 돌아오라!” 이렇게 옆에서 계속 질문하고 학생은 그 상황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이야기하고, 생각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학생은 처음에는 어리둥절하여 무슨 말인지 이해를 못했으나 질문에 따라 답을 하다 보니 그 당시 상황을 어느 정도 정확히 표현하고 눈물까지 흘리면서 답변을 하였다. 한 사건에 대한 내용을 타임머신을 타고 갔다 왔다는 생각으로 자기소개서를 다시 적어 오겠다고 하였고, 다시 적어 온 내용은 그 동안 적은 내용과 다른 내용이 되었다. 그 사건은 교내 학예전을 준비하면서 시나리오가 지도교사에 의하여 갑자기 변경되었고, 새로운 시나리오로 준비할 시간도 없어 급우들 간의 갈등이 심각한 상태에서 그 일을 끝까지 해결해보려고 노력했던 사건으로 자신의 리더십을 표현하려고 하였는데, 타임머신을 타고 갔다 오면서 자신의 리더십보다 열정과 도전 정신이 있었다는 것을 이해하고 열정과 도전정신으로 표현하게 되었다. 이러한 과정을 몇 차례 하면서 자기소개서 작성을 할 때 키보드(첨삭)를 한 번도 잡아보지 않고 대화만으로 학생의 과거에 있었던 일을 생각하게하고 그 내용을 작성하도록 하여 자기소개서를 완성할 수 있도록 지도하였다. 결국 이 학생은 학교 성적도 우수하였지만 서류평가를 통과하고 면접에서도 좋은 성적을 얻어 최초 합격자로 등록하였다. 합격자 발표 후, 1월 중순에 대학에서 담당실장님과 팀장님께서 학교를 방문하여 교장, 학년부장, 담임과 인사하는 자리에서 합격한 학생의 자기소개서가 아주 구체적이고 생생한 표현으로 아주 모범적인 자기소개서였다고 칭찬하였다고 한다. 나는 그 당시에 대학에서 입학사정관으로 활동하고 퇴직한 후 고등학교 교사로 근무를 하고 있어 입학사정관 윤리행동강령의 내용 때문에 근무한 대학과 비슷한 대학에 지원하는 학생을 직접적으로 지도하는 것이 마음에 부담이 되었다. 그래도 찾아오는 학생을 멀리할 수는 없어 학생이 적어온 내용을 모니터로 보면서 먼저 읽어 보게 하고 내용이 구체적으로 표현이 되어 있지 않거나, 배우고 느낀 점이 가식적일 때는 “내가 만든 타임머신을 대여해 주니까 며칠 동안 사용하고 오너라.”라고 하면서 사건이 있었던 과거 현장을 구체적으로 기억을 되살려 보고 자기소개서를 작성하도록 도와주었다. 그 일로 인하여 학생부종합전형에서 자기소개서 작성을 위한 연수를 할 때 “타임머신” 이야기를 하면서 “3학년 때 과거로 가려고 하지 말고 의미 있는 활동을 하고 나면 그 때, 그 순간에 기록으로 남겨라!”라고 강조를 한다. 요즘은 자기소개서 작성을 위해 대학과 모집단위의 인재상과 전형요강에 표현된 서류평가방법을 분석하고 학생의 학교생활기록부를 세부평가 영역별로 분석하여 자신의 약점과 강점을 파악하고 학교생활기록부에서 표현되지 않은 약점은 실제적으로 활동한 내용을 찾아 구체적인 내용으로 우수성을 표현하고 자신의 강점은 그 중에서도 대학의 인재상에 맞는 내용을 골라서 표현할 수 있도록 지도를 한다. (타임머신이란? : 대화를 통하여 과거의 상황을 정확히 이해하고 느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
  • #사제동행(師弟同行)
  • 큰아들 늦장가 가던 날
  • 막내(나의 아들) 첫 휴가 나오기 전에 편지로 격려해주고 차비하라고 현금 넣어 보내준 큰아들(제자)이 지난 2월에 혼례를 치렀다. 요즘에 37살이면 늦은 나이가 아닐 수도 있지만 부모 없이 열심히 살아가던 녀석이기에 더욱 반가운 소식이었다. 많은 하객을 모시고 축복 속에 결혼식은 아름답게 진행되었다. 행복한 가정이 탄생하는 시간이었지만, 한편으론 먹먹한 결혼식이기도 하였다. 지방 중소도시 학교에 근무하던 때로 필기시험이 고등학교 당락을 결정하던 곳이라, 현재의 고3 못지않게 치열하게 고입을 치르던 시절이 있었다. 그 해 우리 큰 아들은 타 도시 소재 고등학교에 지원하여 예비소집에 응하기 위해 떠났고, 필기시험 전날 즉, 예비소집 날에 그의 어머니는 교통사고로 현장에서 유명을 달리하셨다. 이 슬픈 사고를 고입시험 치루는 아들에게 바로 알리지 못했다. 단지 시험 끝나고 우리 집으로 와 있으라고만 신신 당부하였다. 퇴근 후 집에 서둘러 가보니 와 있던 이 녀석이 온데간데없다. 아내에게 물으니 친구하고 통화하더니 아무런 말도 없이 빠르게 나가버렸단다. 급하게 시골집으로 뒤쫓아가 그렇게 슬픈 어머니 장례식을 치렀다. 10여년 후 제대하기 1주일 전에는 술과 보증으로 한세월 보내시던 그의 아버지마저 돌아가셨다. 제대하는 녀석에게 짐이 안 되려 하셨는지도 모를 일이다. 제대와 함께 고아가 되어 버린 것이다. 이렇다 할 재산도 남기지 않으시고 부채와 정리할 것들만 남겨 놓으셨다. 그 후 어린 나이에 이런 저런 감당해야 할 시련들 앞에 늘 안타까운 마음으로 지지하고 격려하며, 졸업한 이후로 지금까지 20여년 이상 서로를 챙기고 걱정하며 인연을 이어왔다. 이런 녀석이 결혼식 날을 잡았다고 하니 내가 얼마나 신이 났던지 모른다. 그 동안 제자들 주례는 몇 차례 서본 경험이 있지만 주례는 늘 부담스럽다. 그래서 되도록 사양해 왔으나 이 녀석 결혼만큼은 꼭 주례를 해야겠다고 마음먹고 있었기에 얼마나 반가운 소식이었는지 모른다. 그런데 결혼 전에 찾아온 녀석은 내게 엉뚱한 부탁을 해왔다. 신랑의 부모 역할을 해달라는 것이다. 주례는 목사님께 부탁드렸으니, 나보고 아내와 함께 꼭 부모역할을 해 달란다.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설득을 했다. 작은 아버지들, 고모나 이모님께 부탁드리라 했으나 막무가내여서 참으로 나를 난처하게 만들었다. 헤어진 후로 전화로도 제일 좋아하는, 의지하는 친척 분께 부탁드리는 것이 좋겠다고 설득에 나서 봤지만 선생님이 꼭 해달란다. 자기한테는 내가 아버지이고 나의 아내가 어머니라고. 선생님이 안 해주시면 그냥 부모 자리를 비워두겠다는 협박(?)도 해온다. 평소에 “너 우리 아들 큰형해라!” “넌 내 큰아들이여”라고 했던 말들이 씨가 된 모양이다. 결혼식 날 아침부터 아내와 나는 분주하게 움직였다. 여느 결혼식과 마찬가지로 신랑의 부모로 변신하기 위하여 제일 좋은 양복으로 챙겨 입고, 아내는 한복을 곱게 갖추어 입고 신부처럼 화려한 화장에 덩달아 즐거워했다. 마치 큰아들 장가보내는 마음으로. 막상 하객을 맞으면서는 긴장도 되고, 옛 제자들을 만나니 참으로 행복한 시간이었다. 고모, 이모들이 나와 아내의 손을 잡고 감사하다며 연신 눈시울을 적셔 당황스럽기도 했다. 아마 돌아가신 신랑의 어머니, 아버지 생각에 눈물이 나시는 듯하였다. 사정과 형편을 잘 알기에 나와 아내도 함께 눈시울이 시큰해지기도 했다. 식이 진행되면서 신랑 측 부모 석에 아내와 나란히 앉아 축복하는 마음으로 박수도 치고 신랑신부의 절도 받았다. 두 사람의 행복한 생활을 진심으로 축하하고 기원하였다. 교직에 종사하면서 이런저런 수많은 제자들을 만나고 각양각색의 사연도 많지만, 정말로 이날의 경험은 내게 최고로 소중한 경험이었다. 주례는 많이 해도 혼주역할을 한 선생님은 없을 것 같다. 한편으로는, 교사로서 성실히 지도 했는지? 참 스승으로 올바르게 가르쳤는지? 되돌아보게 된다. 늘 부족하기만 했고, 후회되는 장면과 떠오르는 제자들 모습에 부끄럽기만 하다. 남은 교직 생활만큼은 더 정성스럽게 해서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의지를 돋워 본다. 이번 주말에 큰아들 내외와 저녁을 함께 먹기로 하였다. 아내가 꼭 밥을 해주겠노라고 했으나 안 된다 하여 다음으로 미루고, 맛스런 식당에 예약을 해 놓았다. 아내도 무척 기다리는 눈치이다. 91세의 우리 아버님도 좋아라 하신다. 손자가 여럿인데도 손자 하나 더 생겼다며... 예쁘고 마음씨 좋은 착한 아내 만나서 알콩달콩 살아가는 모습이 대견스럽고 예쁘기만 하다. 큰아들 내·외 파이팅! 이제는 외롭지 않게 둘이 의지하며 행복 하거라!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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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와의 추억
  • K를 처음 만난 것은 2학년 담임이 되어서였다. 특별히 학업 성적에 관심이 있거나 열심히 하는 학생은 아니었다. 그저 평범하게 학교만 다니는 학생이었다. 크게 관심을 가지는 분야도 없었고 무엇인가를 하고 싶다는 열망 같은 것은 찾아보기가 어려웠다. 그런 그가 갑자기 학교를 나오지 않았다. 집에 전화를 했더니 학교는 갔다고 엄마는 말하였다. 어찌 된 일인지 수소문해도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그때만 해도 휴대전화는 생각하지도 못하던 시절이었으니 집을 뒤로 한 이유도, 어디 있는지도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며칠 동안이나 결석은 계속되었다.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았다. 혹 K가 가출 후에 그를 본 사람이 있는가? 혹 K로부터 연락이 온 적이 있는가? 등등을 학급의 친구들에게 물었다. 아무도 알지 못한다고 했다. 아무도 모르는 것 같았다. 며칠이 지나고 K는 제 발로 학교에 나왔다. 엄마와 함께 등교를 하였는데 며칠 새에 수척해져 있었다. 무슨 일이 있다는 것을 직감 할 수 있었다. 마주 않아 무슨 일이 있었는가를 물으니 대뜸 한다는 말이 “선생님, 저 자퇴를 하려고합니다” 했다. 상당히 심각하다는 생각을 했지만 이유는 묻지 않았다. 어색한 정적이 흘렀다. 엄마는 체념 한 듯 표정이 일그러져 있었다. 자식 이기는 부모가 없다는 말이 실감이 났다. 얼마나 지났을까? 나는 “네가 원하는 대로 자퇴를 하거라” 했다. 행정실에 가서 서류 한 장만 작성하고 가면 모든 것이 간단하게 마무리 된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나도 감정을 숨긴 채 의례적인 이야기만 건넸다. “선생님. 그게 아니고...”. “그러지 말고 마음먹은 대로 자퇴를 해서 소신껏 지내라” 했다. K는 서운했는지 굵은 눈물만 소리 없이 흘리고 앉아 있었다. 엄마에게 왜 그러는 것인가를 물었더니 도무지 말을 하지 않아 알 수가 없다고 했다. 이윽고 “선생님, 말씀드릴 것이 있습니다” 한다. 엄마가 계시면 아무런 이야기도 될 것 같지 않아 엄마를 내보내고 단둘이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실은 친하게 지냈던 여자 친구가 헤어지자고 통보를 해서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했다. 순간 가슴이 저려왔다. 사랑하는 여자가 이별을 통보하고, 연락이 두절되고, 더구나 그녀는 K와 친한 J와 사귀게 되어 그리 되었다는 사정을 들으니 그러고도 남을 만큼의 충격으로 다가 왔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K를 따뜻하게 위로 했다. 그간 얼마나 마음이 아프고 몸은 또 얼마나 시달렸느냐고 위로를 했다. 어쩌면 K로서는 예상하지 못한 일이 벌어진 것이다. 누구에게도 말 못하고 속으로만 끙끙 앓던 문제를 이야기 하니 속은 후련했겠지만 여전히 시린 가슴은 그대로였을 것이다. 이미 5일을 무단결석한 상태였다. 그래서 K에게 제안을 했다. “오늘 오후에 기차로 제일 먼데로 여행을 떠나라”. 그리고 내일 돌아와서 모레는 학교에 나올 수 있겠니? 했다. “엄마에게는 비밀로 해 주세요” 한다. 난 그러겠노라고 약속했다. 엄마에게 서울에서 젤로 먼 곳의 기차표를 사주도록 부탁했다. 이유는 묻지 마시라고 했다. 내일 저녁에 집에 돌아 올 것이니 다른 걱정은 하지 마시라고 했다. K는 그길로 부산에 갔다. 엄마가 전해줘서 알았다. 전화로 엄마는 이유를 물었다. 난 간단하게 사정을 이야기하고 묻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말씀을 드렸다. 그러겠노라고 하셨다. K는 이틀 뒤에 아침 일찍 등교하지 않았다.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많은 걱정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엄마도 잘 알지 못한다고 하셨다. 점심때가 다 되서야 K는 학교에 나타났다. 너무도 반가운 생각이 들어 껴안고 반가워했다. 그 뒤로 학급의 학생들에게 말했다. “K는 너희들과 달라서 인생의 깊이가 있는 학생이니 무슨 일이 생기면 K와 상담하라”고 몇 번을 일러 주었다. 그렇게 2학년이 흘러가고 K는 3학년 진급을 하면서 직업과정을 선택하였다. 아마도 결코 잊힐 수 없는 기억을 간직한 채 학교생활을 했을 것이다. 몇 년이 지났을까. K에게 물어 볼 일이 생겨 해묵은 교무수첩을 뒤져 연락을 했더니 엄마가 전화를 받으신다. K의 근황을 물으니 졸업하고 바로 군대를 다녀오더니 직장에 몇 년 다니다가 무슨 이유인지 공부를 해야겠다고 하더란다. 그래서 지금은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서울소재 K대학교 2학년에 다닌다고 하신다. 순간 많은 시간이 흘렀구나 했다. 그 뒤로도 또 10년은 족히 갔을 터이니 아마 지금쯤은 가정을 이루고 아이를 키우며 살고 있겠지? 시간은 그렇게 흘러만 간다.
  • #사제동행(師弟同行)
  • 소중하고 너무나 소중한 A군
  • 나는 휘문고에 1986년 3월 부임하여 31년째 근무하고 있다. 그동안 여러 학년의 학급 담임과 교과 담당을 맡으면서 많은 학생들을 만났다. 그 중 가장 기억에 남는 학생으로 현재 34세인 A군을 꼽고 싶다. A군은 내가 담임을 맡은 적은 없지만, 현재까지 17년째 지속적으로 교류를 하고 있다. A군은 국내 상위권 대학 영문학과 2학년을 마치고 아이비리그 대학 경제학과 3학년에 편입학을 하였고, 경제학과를 졸업한 후 국내 상위권 대학 의학전문대학원에 입학을 하여 금년에 졸업을 하였고, 최근에는 미국 의사 국가고시에 도전하고 있다. A군은 내게 소중하고 너무나 소중한 사람이다. 2001년에 교과 담당교사로 고2 인문계 학생인 A군을 처음 만났다. 그는 1학기 중간고사 주관식 문제의 채점 기준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였다. 그러나 왠지 무례하다고 느끼지 않았고 불쾌한 기분도 들지 않았다. 오히려 당차게 따지는 모습이 꼿꼿하고 당당하다고 느껴질 정도였다. 맹랑한 고2 학생과의 인연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A군이 고3이었을 때 나는 고2에 이어 교과 담당교사를 맡았으며, 옆 반 담임교사로서 자주 마주할 기회가 있었다. 2003년 재학생 신분으로 상위권 대학 영문학과에 입학을 하였고, 학문에 대한 열정이 대단했던 A군은 입학하자마자 전공과 교양 지식의 습득과 어학 능력 향상에 집요하게 매달렸다. 평소 근검절약하고 외모에 신경을 쓰지 않는 A군은 겨울 내내 얇은 니트 하나로 극기 훈련하듯이 지내기도 했었다. 이즈음 자신이 알바해서 돈을 벌었다고, 추운 겨울날 그 얇은 니트 하나 입고 직접 과일 한 박스를 사 들고 왔던 적이 있다. 마침 식사 시간이 되어 따뜻한 식사 한 끼 먹여 보내려 했는데 거절하고 추위 속으로 달아나듯 뛰어간 A군의 모습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대학생활을 하면서도 A군은 마음속에 오랫동안 간직해 왔던 교사의 꿈을 버리지 못하고, 삼반수 만에 2005년에 교육대학에 합격을 하였다. 그러나 부모님은 A군의 교육대학 등록을 강력하게 반대하셨고, 신용카드를 주면서 알아서 하라고 하셨다. 고민스러웠던 A군은 나에게 의견을 물었고, 나는 A군의 당시 심정과 의지를 들어보고 반대 의견을 냈었다. A군은 결국 교육대학에 등록을 하지 않고 영문학과에 그대로 머물러 있게 되었다. A군은 넘치는 학구열(장학금 수혜 대상자가 되었음)로 본인의 전공뿐만 아니라 경제, 문화, 사회 전반적인 분야에 깊은 관심을 갖게 되면서 부모의 희망대로 유학을 준비하게 되었다. A군은 평소 병원 봉사활동을 하시던 어머님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소외계층에 대한 따뜻한 마음을 국내・외에서 지속적으로 베풀어나가기도 했다. A군에게 봉사는 오랜 습관이자 자신의 생활 그 자체였던 것 같았다. A군은 군 복무 기간에도 휴가를 이용하여 몽골 등지로 봉사활동을 나가기도 하였다. 군 복무를 마치고 유학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유니세프에서 인턴으로 약 1년 간 봉사관련 업무를 맡아보고, 서울국제고 기숙사에서 부사감으로 한 학기 동안 학생들의 고민을 나누고 정보를 공유하면서 상담자로서의 경험을 자청하기도 하였다. 2년 가까이 유학 준비를 하고나서 2009년에 편입학이 힘든 아이비리그 대학 경제학과 3학년에 편입학을 하게 되었다. 입학 후 극빈자 같은 생활을 하며 밤낮으로 공부하여 장학금을 받아 학비는 거의 들지 않았다. A군은 미국 명문고 졸업생들이 모교에 대한 자부심으로 대학교에서 고등학교 잠바를 자랑스럽게 입고 다니는 것을 보면서 휘문고 잠바를 구해달라고 나에게 요청을 하였다. 휘문고에는 일반학생들이 구입할 수 있는 학교 잠바가 없어서 휘문고 운동부인 야구부 감독에게 개인적으로 부탁하여 선수용 봄용 얇은 잠바, 가을용 두꺼운 잠바 두 개를 구입하여 선물로 보낸 적도 있다. A군은 대학에 입학한 이후, 국내 사회복지시설뿐만 아니라 국외(몽골, 탄자니아, 온두라스 등)에서 꾸준히 봉사활동을 하면서 구호와 개발의 현장에서 일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구호와 개발을 위해서는 의사가 적격이라고 판단을 하고, 아이비리그 대학 경제학과를 졸업한 직후인 2013년에 국내 상위권 대학 의학전문대학원 리더십전형(1명 선발)에 합격을 하였다. 인문계 출신자가 의대 학부 및 전문대학원에 진학한 예는 아마도 거의 없었을 것이다. A군은 고등학교와 대학교에서 자연계 과목을 이수하지 못한 관계로 낯선 환경에서 어렵게 공부하였지만, 학사 경고의 위기에 놓이면서도 의대 공부를 놓지 않았다. 2015년에는 전국 의대생 중 단 2명에게만 주어지는 청년슈바이처상(의대생 사회활동 부문: 구호와 개발의 현장에서 일하겠다는 포부에 걸맞게 의대 입학 전부터 활동의 종류가 다양하고 폭도 넓었다는 점이 수상 이유였음)을 수상하기도 하였다. A군은 재학 중 유급 한 번 없이 금년 2월에 의학전문대학원을 졸업하였고, 이어 미국 아이비리그 대학 보건대학원 석사과정에 입학하여 현재 미국 의사 시험에도 도전하고 있다. 2001년에 A군을 만나서 17년째 매년 전화로 안부를 묻거나 직접 만나 술잔을 기울이면서 끈끈한 정을 이어오고 있다. 금년 5월 가정의 달에는 KBS 가요프로인 ‘배철수 7080 600회 특집’ 프로에 보낸 사연이 채택되어 4명(A군, A군 어머니, 나, 아내)이 함께 공연을 관람하기도 하였다. 녹화하는 3시간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모를 정도로 즐겁고 행복했던 시간이었다. A군은 국경없는 의사회 소속으로 아프리카에서 구호활동을 하며 살아가고 싶어 한다. 언젠가는 그 꿈을 이루기 위해 훌쩍 떠날 것이다. 소중하고 너무나 소중한 A군과 얼마나 오랫동안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오순도순 지낼 수 있을까?
  • #사제동행(師弟同行)
  • 어느 가을에
  •  노크와 함께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비록 왜소한 체구의 중년 여인이었지만 다부진 눈매와 햇볕에 그을린 피부에서 당찬 삶의 역정을 느낄 수 있었다. 단순히 학교를 방문한 학부모가 아니라는 직감이 들었다. 그 직감과 동시에 어쩌면 제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불현 듯 스쳤다. 아니나 다를까 교무실을 한번 휘돌아보더니 나와 눈을 마주치는 순간 어색한 웃음과 함께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바로 나에게 와서 반갑게 인사하였다. 내 직관이 맞았다. 그 중년 여인은 아주 오래된 제자였다. 어설피 인사를 받으면서 어딘가 굉장히 낯이 익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가물거리는 기억을 선명하게 옮길 수는 없었다. 다행히 그녀가 먼저 의례적인 인사와 함께 자신을 소개한다. 1학년 때 국어를 가르쳤다고 했다. 그때가 1984년도였으니 어느새 43살 아줌마가 되었다면서 크게 웃었다. 순간 어렴풋이 기억이 되살아나기 시작하였다. 1984년이면 내가 중학교에 첫 발령을 받았을 때이니 이 제자와의 만남은 무려 30년의 세월을 건너 뛴 아주 오래 묵은 인연이었다. 반가움에 중년의 아줌마가 된 제자의 손을 이끌고 교무실 한쪽으로 자리를 옮겨 아슴푸레 잊혔던 30년 전의 기억들을 주고받기 시작했다. 그러자 잊혔던 기억들이 퍼즐 맞춰지듯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그중에서 아직도 제자에게 남아 있는 가장 아픈 기억은 도난사건이었다. 돌이켜보면 바닷가의 한적한 시골마을에 대규모 조선소가 들어서면서 공사판 인부를 비롯한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고, 그에 따라 급하게 만들어진 학교였기에 학생들의 가정환경은 대부분 열악하기 짝이 없었다. 그 당시에 가정방문을 다니다보면 그야말로 거적문에 얼기설기 엮은 판잣집에서 겨우 생활을 이어가는 학생들도 꽤 많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러다보니 학급에서의 도난사건은 으레 일어나는 일이 되었고, 그 사건을 어떻게 해결하느냐 하는 것이 담임 역량의 큰 부분을 차지하기도 했던 시절이었다. 아마 그 당시에 나는 해결을 잘 했던 담임 중 한 사람이었던 것 같았다. 그래서 다른 반에서 도난사건이 일어나면 나에게 부탁하기도 했는데 그럴 때면 나는 초짜교사의 정의감으로 아이들을 달래고 협박하면서 돈이나 물건을 훔친 아이를 찾아냈던 기억이 난다. 이 제자의 도난사건 역시 그랬다. 그때 제자의 담임 선생님은 여선생님이었는데 그 학급에서 일어난 도난사건을 나에게 의뢰했고, 나는 전권을 쥐고 사건을 맡았다. 아이들에게 도난사건에 대해서 자기 생각이나 의견을 적어 내도록 했는데 은연 중 아이들이 심증적인 범인으로 주목했던 아이가 바로 이 제자였다. 나는 제자를 불러 아이들의 의견을 솔직하게 말해 주면서 진실을 말해보라고 하였다. 하지만 제자는 눈물을 흘리며 절대로 자신이 가져가지 않았다고 말했다. 아마 당시 나는 제자의 주장을 믿었던 것 같았고, 결국 그 도난사건을 해결하지 못하고 말았다. 그 인연으로 나는 제자를 더욱 살갑게 대했고, 공부를 더 시키기 위해 국어시간에 따로 숙제도 내주고 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나에게 그런 기억이 남아 있지는 않았다. 그리고 졸업 후의 자신의 인생역정을 들려주었다. 당시 제자는 고등학교를 진학하고 싶었지만, 부모님은 자신의 진학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고 했다. 성적이 좋지 않아 울산시내의 고등학교에는 진학할 수가 없었고, 시외로 갈 수밖에 없었는데 당시에 그런 아이들이 가장 많이 갔던 곳이 경주에 있는 종합고등학교였다. 지금은 개명하여 일반고로 되어 있는 학교이다. 그래서 그 학교라도 가기위해 원서를 써서 어머니에게 보여드리면서 진학희망을 말씀드리자 어머니는 여자가 시집만 잘 가면 되지 무엇 하러 그 먼 곳을 다니려하느냐면서 원서를 찢어버렸다 했다. 그 뒤로 고등학교에 가지 못했고, 한동안 무척이나 방황했다고 했다. 그렇게 몇 년을 보내면서 그는 자신의 인생을 생각하며 정신을 차렸고, 부모를 벗어나 자기 힘으로 세상을 살아야겠다는 마음을 먹었다. 하지만 세상이 녹록치 않아 중졸의 자그마한 체구의 여자가 할 수 있는 일이 그리 많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기술을 배우기 시작했다고 한다. 전기기술도 배우고, 도장기술도 배우면서 그야말로 남자들이 하는 것은 거의 안 해 본 것이 없을 정도로 독하게 살았다고 했다. 그러다 우연히 국비로 지게차 운전을 배우게 되었고, 끼니를 건너가면서 열심히 노력한 끝에 지게차 기사자격증 딸 수 있었다고 했다. 그리고 공사판 현장 곳곳을 전전하다 지금은 경북 포항소재의 항만청에서 자기 지게차를 가지고 당당한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이다. 그 말을 다 듣고 나는 그녀의 손을 꼭 잡았다. 거대한 지게차의 무게만큼 짓눌렀을 제자의 과거가 안쓰럽게 여겨져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여자로 그 작은 체구에 무엇이 이리도 험한 인생역정을 견디게 했는지 참 대견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더 이상 물을 수도 없었다. 결혼은 하였느냐고 물었다. 결혼은 첫 결혼에 실패하고 지금은 재혼하였다고 했다. 첫 결혼은 당시 여자로 억센 남자 일을 감당하기 힘들어 함께 일하던 사람과 20살 어린 나이에 일찍 살림을 차렸는데 남편의 바람기로 2년 만에 이혼하고 아이는 당시 울산 어머니에게 맡기고 자기는 포항에서 계속 일을 했다고 한다. 그러다 5년 전에 지금의 남편을 만나 재혼하여 행복하게 살고 있다는 것이다. 남편은 당시 총각이었는데 찢어지게 가난한 집안에서 동생의 신부전증으로 인한 치료비까지 감당해야하는 어려움이 있었고, 자신은 딸이 달린 재혼의 처지가 상쇄되어 결혼할 수 있었다고 했다. 결국 신부전증인 동생의 치료비까지 감당하면서 어려운 결혼을 하긴 했지만 지금의 자기는 무척이나 행복하다며 눈시울을 적셨다. 제자를 보내고 가슴 먹먹한 심정으로 교정을 한 바퀴 돈다. 교정에는 어느 새 가을이 깊어가고 있었다. 잔디가 깔린 마당 복판에 아주 오래된 모과나무가 있는데 거기에도 가을은 노랗게 물들어 있었다. 가지에는 주렁주렁 모과가 많이도 열렸다. 그 나무 아래를 보니 채 물들지도 않고 땅에 떨어진 모과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주워서 겉에 묻은 흙을 털고 코를 대어본다. 비뚤고 못 생긴데다 모과향도 전혀 나지 않는다. 그런데 그 모과를 버리지 못했다. 지금은 무척 행복하다며 돌아선 제자의 아련한 모습이 모과에 오버랩 되면서 차마 버릴 수가 없었다. 교무실로 돌아와 내 책상 모서리에 모과를 두었다. 향도 풍기지 않으면서 기우뚱 기운 모습이었지만 왠지 편안하고 행복해 보인다. 비뚤고 못생긴 모과에 아름다운 가을이 깃들고 있었다.
  • #공감(共感)
  • 절대 평가와 상대 평가
  • 새 정부가 들어서면서 선거 전 공약으로 내세운 수능 절대평가 도입과 고교 내신 성취평가제 적용 여부에 따른 현재 중 3학생들의 고교 선택에 대한 유불리를 논하는 기사가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평가 방식이 바뀌면 당연히 학교, 학생에 따라 명문대 진학에 다소간의 유불리가 발생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 시점에서 대학입시에서 절대평가나 성취 평가제 도입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를 생각해봅니다. 지난 5월 30일자 신문 기사에 의하면 교육부 대학 구조 개혁 평가에서 최하위 등급을 받았던 00대학(경북 경산시)와 00대학(강원 동해시)이 결국 퇴출 수순에 들어갔다고 합니다. 대학구조개혁평가는 교육부가 각 대학을 교육여건, 학사관리, 교육과정, 교육성과, 특성화 등의 지표를 토대로 고등 교육 기관으로서 갖추어야할 요소들을 주어진 평가 기준에 따라 절대 평가(A,B,C,D,E)하는 것입니다. 고교 내신 성취평가제 역시 5단계 절대 평가를 하고 있습니다. 절대 평가는 점수별 석차가 주어지지 않으며 등급별 인원을 사전에 정하지 않는 평가 방식입니다. 절대평가 방식의 시험으로는 운전면허 시험이나 영어능력검정시험 등을 들 수 있습니다. 지난 2017학년도 서울대 입시에서는 수시모집으로 지역균형선발전형 735명, 일반전형 1,672명, 그리고 정시모집으로 일반전형 963명, 전체 3,370명(기회균형선발특별전형 인원 182명 제외)을 선발하였습니다. 수시 17,977명 지원자 중에서 13.4%만이 합격하였고, 정시 3,967명 지원자 중에서 24.3%만이 합격하였습니다. 지원 학생들이 아무리 우수하더라도 선발 인원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상대 석차에 따라 선발 예정 인원만큼만 합격시킨 것입니다. 대학 입시는 선발 인원이 정해져 있는 시험이기 때문에 어떤 평가 방식을 적용하더라도 상대 평가 방식을 활용할 수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새로운 입시에서 수능 절대평가를 적용하고, 학교 내신 성적 평가를 성취 평가제로 전환하여 적용하더라도 지원자수가 선발인원보다 많을 경우에는 부득이 다른 평가 요소를 적용하여 상대 평가를 실시할 수밖에 없게 됩니다. 또 다른 방식의 경쟁이 불가피하게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절대 평가 도입 여부가 대입 준비생들에게 일정 부분 영향을 미치겠지만, 입시의 본질상 평가 방식이 절대 평가이든 상대 평가이든 경쟁은 불가피하게 일어나기 마련입니다. 평가 방식이 바뀌더라도 우수 학생에게 요구되는 ‘탁월한 학업 역량’, ‘적극적인 학업 의지와 태도’ 그리고 ‘기본적인 소양과 개인적인 특성’을 측정, 평가한다는 점에는 변함이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인재 여부는 앞으로도 자녀들이 얼마나 우수한 학교에서 공부했고, 또 얼마나 개인적으로 노력했는지의 여부에 따라 결정될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입시 제도가 바뀌더라도 열심히 노력하여 성과를 내는 학교에 진학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특목고, 자사고, 일반고 진학의 유불리는 그런 관점에서 판단할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명문대학에서는 앞으로도 어떤 방식으로든 학교 특성별로 우수 학생을 찾아내어 선발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참고로 다음은 우리보다 소득 수준이 높은 미국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현재의 학부모, 학생들에게 명문대 진학은 여전히 중요한 문제입니다. 그러나 앞으로는 명문대를 넘어서서 어떤 전공을 선택하는 것이 자녀에게 가장 유리한 경쟁의 장이 될 것인지를 학부모님들이 보다 고민해야 할 시점이 온 것으로 생각합니다. 절대 평가나 상대 평가 여부와는 관계없이 우리가 사는 사회에서 선의의 경쟁은 불가피하게 일어날 것입니다. 절대 평가가 도입된다고 하더라도 노력 없이 누구나 명문대나 유망학과에 진학할 수는 없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을 것입니다. 모두가 1등은 될 수 없겠지만, 보다 경쟁 우위에 설 수 있는 분야는 자유롭고, 현명하게 선택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 #사제동행(師弟同行)
  • 방황학생들 장교로 이끈 호랑이선생님
  • 본 교사는 지방에서 고3담임 및 진학부장을 30년 이상 해오면서 특히 많은 학생들을 장교의 길로 이끌어주었다. 그 결과 2015년 5월5일 스승의날 국방일보 전면에 걸쳐 사연이 소개되었으며 경남매일, 아시아뉴스통신, 광주일보 및 국군의 방송에 생방송으로 우리들의 사연이 소개가 되었다. 다음은 기사내용을 간추린 것이다 방황학생들 장교로 이끈 "호랑이선생님" ‘충성! 선생님의 가르침대로 대한민국을 굳건하게 지키겠습니다.’ 지난13일 광주 송원고등학교에 대한민국 장교 4명이 방문했다. 김ㅇ기·김ㅇ홍·엄ㅇ철 중위와 허ㅇ민 소위, 이들은 송원고 졸업생으로 방황하던 학창시절에 호랑이 선생님이던 박연종(56) 교감에게 혼이 난 뒤 깨우쳐 ‘장교의 길’을 걷게 된 동기들이다. 이들 외에도 장교 동기가 3명 더 있다. 장교 제자 7명은 1년 전 “매년 스승의 날에 모여 은사님께 감사함을 전하자”고 의기투합했다. 그리고 1년이 지난 13일에 7명 중 4명이 모였다. 임무수행 탓에 3명은 자리를 함께 하지 못했다. 대신 편지로 마음을 전했다. 이들이 장교가 된 사연은 박 교감과 얽혀있다. 유난히 친했던 이들은 어느 더운 여름 밤 야간자율학습을 뒤로한 채 몰래 학교를 빠져나가 놀다 돌아오던 길에 운도 없이 호랑이 선생님과 마주쳤다. 이날은 공교롭게도 성적표가 공개된 날이었다. 부모가 불려오고 각서를 쓰는 등 혼이 났다. 이는 자신들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됐다. 그리고 다시 의기투합했다. “정말 중요한 시기다. 공부해보자. 힘을 모아 서로 돕자”고 다짐했다. 이들의 우정은 더욱 끈끈해졌고, 장교의 꿈을 함께 꾸게 됐다. 김ㅇ기 중위는 “고 3때 친구들과 꿈을 같이 꿨고 현실로 이뤄냈다”며 “제자들의 고민을 마음으로 들어주고, 격려하고, 응원해 준 선생님의 사랑 덕분에 대한민국 장교 7명이 탄생하게 됐다”고 감사했다. 당시 진로진학부장이었던 박 교감은 똘똘 뭉쳐 어울려 돌아다니던 이들에게 장교의 길을 권했다. 단합이 잘 되고 활동적인 이들의 성격에는 ‘군인이 제격이다’는 진로지도 노하우가 발동한 것이다. 특히, 장교는 소신껏 활동하며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는 최적의 직업이기 때문에 적극 권장했다. 엄ㅇ철 중위는 맞춤형 진로진학지도로 장교가 됐다. 고교 성적이 그리 좋지 않았던 엄 중위는 호남대에 입학했다가 조선대 군사학부로 편입해 동기들과 함께 후보생 생활을 했다. 박 교감의 영향으로 이 반 전체 35명 중 7명이 대한민국 장교의 길을 걷고 있다. 또 이들 후배 8명도 장교 임관 뒤 상무대에서 초등군사교육을 받고 있다. 박 교감이 장교의 길을 추천하는 이유는 자신이 장교 출신이기 때문이다. 박 교감은 전남대 학군장교(ROTC) 21기로 임관해 육군 28보병사단에서 포병장교로 복무한 뒤 중위로 전역했다. 이후 교편을 잡은 박 교감은 제자들에게 학업은 물론 올바른 국가관·안보관을 심어주며 장교의 꿈을 키우도록 적극적인 진로상담과 지도를 하고 있다. 박 교감은 “당시 제자들이 나태하고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자 엄하게 지도하며 군인정신을 강조했는데 훌륭한 장교가 돼줬다”며 “후배들을 위해 자주 모교를 방문해 대한민국 군인의 위상과 자부심을 보여 달라”고 당부했다.
  • #사제동행(師弟同行)
  • 8가지 공부방법의 오해와 효과
  • 자기 주도적 학습방법을 많이 언급하지만 학원과 과외 등의 사교육에 익숙해진 학생들은 자신에게 맞는 학습법을 알지도 못할 뿐 아니라 그런 방법을 통해 학습해본 경험도 없습니다. 짧은 기간 동안의 초집중적인 방법으로 선생님이 가르쳐주신 것이 아닌 학원교사나 과외교사가 골라준 것을 통해 그저 정기고사(중간·기말고사)를 치렀을 뿐입니다. 중학교와 달리 학생들에게 엄청 많은 학습량을 요구하는 고등학교에서 학생개개인이 지닌 나름의 방법과 꾸준한 실천은 자칫 제자리걸음(시간은 많이 들지만 성과가 없음)을 의미할 수도 있습니다. 중학교 시절의 벼락치기 공부 방법을 바꾸려하지만 대안이 없는 경우가 많아 고민과 갈등만하다가 시간을 낭비하는 경우를 많이 봤습니다. 저는 담임(학급담임 혹은 교과담임)으로서 1학년 중간고사를 마친 후 학생들에게 여러 가지 방법을 제시해줍니다. 그 중 하나 이상의 방법을 택하여 꾸준히 실행할 것을 권장할 뿐 아니라 학생 개개인의 실천을 돕고자 주기적으로 점검 및 격려를 해주고 있습니다. 제가 제시하는 공부 방법은 학생자신의 무한한 변화 발전 가능성에 대한 스스로의 확신이 필요하고, 일상생활 속에 녹아든 습관 속에서 자신의 일상 시간을 이용하려는 끈기가 필요합니다. 일단 습관이 되어 몸에 배면 적은 노력으로 엄청나게 커다란 효과를 가져 올 수 있습니다. 많은 학생들은 그.러.나 교육(敎育)이란 가르치고(敎) 길러내는(育) 교사와 학생의 상호 작용이라 할 수 있습니다. 또한 학습(學習)이란 배운 것(學)을 학생스스로 익히는(習)과정입니다. 교사가 학생들에게 일방적으로 가르치기만 하는 활동을 올바른 교육이라 할 수 없고, 학생이 모든 것을 스스로 알아서 하는 활동도 올바른 교육이라 할 수 없습니다. 요즈음의 학교교육은 입시제도에 맞추어 상급학교 진학에만 관심을 보일 뿐 본질적인 교육 및 학습의 틀에서는 벗어난 것 같습니다. 자신의 편리함과 이득을 위하여 서로를 이용할 뿐 교사와 학생간의 신뢰는 찾아보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교사의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한 조언과 격려보다는 교과위주의 일방적인 수업을 더 필요로 하는 것이 현재의 학교교육의 현실입니다. 이러한 여건과 현실 속에서도 제가 제시한 위의 방법을 택하여 성실히 학교생활에 임한 학생들(정원의 1%)이 있습니다. 이 학생들을 통하여 저는 인터넷강의(EBS 포함)의 장점을 새롭게 알게 되었고, 지방의 일반고 학생들도 자신의 수준에 맞는 학습을 할 수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위에서 말한 7가지의 학습방법에 인터넷강의라는 또 하나의 방법을 첨가하여 학생들에게 알려줌으로써 자신의 능력과 열정을 찾으려는 학생들에게 다가가고 있습니다. 많지는 않지만 이 학생들을 제자라 자랑할 수 있고, 많지는 않지만 이런 학생들을 찾아내는 것이 교사로서의 자부심입니다.
  • #사제동행(師弟同行)
  • 알파고 ‘영수’ 이야기
  •  올해로 32년째를 맞은 나의 교직생활에서 많은 다양한 사례들을 이야기 할 수 있는 제자들이 있지만, 특히 가장 기억에 남는 제자는, 18년 전 고교 교사로 첫 발을 내딛은 포항고에서 3년간 지도했던 시골 출신의 ‘영수’라는 학생이다. . 이때는 ‘포항고’가 비평준화 고교로서 전국에서 알아주는 명문고교 중의 하나였다. 그래서 울진에서 중학교를 다닌 영수도 친구들 4명과 함께 포항고로 진학을 하였지만, 친구들과는 달리 기숙사에 입사하지 않고 학교 바로 옆에서 3년간 하숙을 하였다. 자신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통제받지 않고 자율적으로 혼자 조용히 지내며 공부할 수 있는 곳을 택했던 것이다. 결국 그 학생은 자신의 바람대로 목표를 이루었고, 지금은 서울의 유명한 OO로펌에서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다. 영수의 1, 3학년 때는 영어교과담당교사로, 2학년 때는 담임으로서 지도하며 3년간 보아왔지만, 지금껏 지도한 수많은 학생들과는 정말 매우 다른 특별한 점들을 지니고 있었다. 정말 ‘엄청난 노력 꾼이자 집요함을 갖춘 컴퓨터로봇(요즘의 알파고)같은 학생’ 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 학생이 지녔던 몇 가지 특별한 점들을 이야기 하자면 다음과 같다. 첫째, 자기관리가 철저한 컴퓨터적 인간이자, 자기주도학습을 실천했던 표본이었다. 하루 24시간을 계획된 대로 움직이는 생활을 3년간 유지했다. 시계를 보지 않고도 알 수 있을 만큼, 아침 등교와 점심/저녁식사 후 그 학생이 교문에 들어서는 시간이 늘 일정했고, 평일과 주말 방과 후 생활도 계획된 일정대로 늘 실천하며 생활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2학년 때는 담임으로서 확인한 사항임). 한 가지 에피소드를 소개하자면, 일요일 오전에 학교운동장에서 친구 몇 명과 농구를 하던 중에 갑자기 친구들을 뒤로하고 하숙집으로 가버려서 친구들을 어리둥절하게 할 정도로 자신의 정해진 일정을 지키려 노력했다. 또한 쉬는 시간에도 시간을 헛되게 보내지 않고 늘 책을 보며 공부를 하였는데, 하루 중 유일하게 매일(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곤) 청소시간에 산책을 하며 머리를 식히며 이후 공부에 집중하려는 철저함을 보였다. 또한 타지에서 멀리 유학 온 학교 기숙사 친구들이 주말마다 집에 다녀올 때, 영수는 최대한 공부시간을 많이 확보하기 위하여 하숙집에 남아서 계획된 일정에 따라 공부를 하며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채우기 위해 노력하였다. 둘째, 사교육을 전혀 받지 않고 모든 공부를 공교육으로 해결했던 엄청난 ‘질문 꾼’이자, 궁금한 것은 참지 못하고 바로 해결하고 넘어가야하는 집요함과 끈질김의 소유자였다. 모든 교과의 수업시간 중 이해가 잘 되지 않는 부분이 있으면, 수업을 마치고 나가는 선생님을 붙들고 해결하고야 마는 집요함을 보였고, 자율학습 또는 쉬는 시간에 공부하다가 의문이 생기면 곧장 교무실로 달려가서 해결하는 끈질긴 성격 때문에 많은 선생님을 두렵게 했던 유명한 학생이었다. 한번은 가방이 터질 정도로 책을 가득 채운 무거운 가방을 메고 점심을 먹으러 하숙집으로 가는 영수에게, ‘점심 먹고 잠깐 볼 수 있는 책 한권정도만 가져가지, 왜 그렇게 가방을 무겁게 메고 다니니?’ 라고 물었더니, ‘점심 먹다가 갑자기 궁금한 것이 생각나면 찾아봐야 해요.’라고 하는 학생이었다. 그리고 서울대 법학과에 합격한 후 모 신문과의 인터뷰 기사에서 후배들에게 자신의 3년간의 공부 방법을 소개하며, ‘돈 들여서 학원에 가지 말고, 학교에 계신 선생님을 최대한 활용하는 것이 최고의 방법’이라고 조언하는 기사를 본적이 있었다. 셋째, 모든 교과에 충실하며 한순간도 방심하지 않고, 선생님의 농담까지도 필기할 정도로 집중력이 뛰어났다. 그래서 영수의 책을 보면 어떤 선생님이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다 알 수 있을 정도였다. 넷째, 공부만 하고 자기 것만 챙기는 이기적인 학생이 아닌, 친구들을 배려할 줄 아는 원만한 인간관계에 여가를 즐길 줄 아는 학생이었다. 한번 씩 쉬어갈 때를 보면 친구들과 잘 어울리며 농담도 주고받고, 친구들의 학습에 도움을 주는 모습이 관찰되기도 하였다. 또한 자신의 책임을 다하는 성실한 학생이라 다들 이야기하고 싶어 할 정도로 친구들의 호감을 샀고, 자기 계획 때문에 친구들의 오해를 살 때도 있었지만, 친구들을 배려할 줄 아는 따뜻한 마음씨를 소유한 학생이었다. 한번은 놀이공원으로 체험학습(소풍)을 갔는데, 그때도 가방 속을 책으로 꽉 채워서 메고 온 것을 보았었다. 다른 친구들은 자유이용권으로 즐겁게 놀이기구를 타며 보내고 있을 때, 영수는 나무 그늘아래 벤치에서 책을 보는 모습이 포착이 되었다. 그동안 참아왔던 만화책을 열심히 보면서 자신만의 여가시간을 즐기고 있었던 것이었다. 또한 많은 시간은 아니지만 규칙적으로 운동을 하며 친구들과 여가도 즐기며 소통을 하려 노력하였다. 다섯째, 예의를 지킬 줄 알고, 미소가 아름다운 학생이었다. 아무리 힘들어도 친구들에게 짜증내지 않고 질문을 다 받아주며, 잠시 쉬어가는 타임에도 늘 미소로 친구들을 대하는 모습이 아름다웠다. 그리고 항상 선생님들께도 밝은 미소와 예의 있는 행동으로 칭찬을 들었으며, 특히 다른 학생들과는 달리 졸업식이 끝난 후, 모든 선생님을 찾아뵙고 선생님들의 그간의 노고에 감사의 인사를 드릴 줄 아는 정말 인성이 바른 학생이었다. 이와 같은 모범적인 생활태도와 흔들림 없는 자기관리 및 끈질긴 노력으로 1학년 때 전교 30~40위권이던 성적이, 2학년 때는 20위권 이내로 진입하였고, 3학년 때는 전교 1,2위를 다투는 대단한 성과를 이루어낸 무서운 학생이었다. 그리고 목표했던 서울대 법학과를 정시모집에 지원하여 당당히 합격하였던 것이다. 고교생이 부모와 멀리 떨어져서 3년간 하숙을 하며 자신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주변의 많은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고 규칙적인 생활을 유지하며, 사교육의 도움 없이 공교육과 본인의 엄청난 노력으로 이루어 냈던 성과라 정말로 널리 자랑하고 싶은 제자였다. ‘EBS 공부의 왕도’의 많은 사례의 학생들도 본받을 대상이지만, 나는 ‘영수’만한 학생이 없다고 생각하며, ‘영수’ 이야기를 동영상으로 촬영해서 오래 오래 보여 줄 수 있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진하게 남는다. 그래서 더더욱 기억에 오래 남아 있으며, 기회가 있을 때마다 많은 학생들에게 영수의 성공적인 고교생활을 소개하였고, 그 이야기에 자극을 받아 제2, 제3의 영수와 같은 학생들이 많이 배출되어 대한민국을 이끌어갈 훌륭한 인재로서 성장하였으면 하는 바람을 가졌었다. 이제는 법조인으로서 또 하나의 성공스토리를 써 나가며 많은 사람들에게 꼭 필요하고, 오래 오래 존경받는 인물로 성장하는 모습을 보고 싶은 바람을 가져본다. 틀림없이 존경받는 인물이 될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 앞으로도 영수의 성공적인 삶을 기원하며, 2017년 5월의 어느 날 새삼 영수의 고교시절을 떠 올리며 기억에 젖어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