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TORY
- 01스토리
제가 교사로서의 길을 걷게 된 것은 졸업년도에 비해 남들보다 늦은 1995년 3월 1일 부터입니다. 지금은 교사가 되는 것이 무척 어렵고 모든 사람들의 로망이지만 제가 대학을 졸업했던 87년 그 당시만 해도 사범대학을 나온 대부분의 남학생들은 학교를 선택하기보다는 대기업이나 공기업을 선호하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런 이유로 대기업에 입사를 하게 되었고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분야에서 7년여 간의 직장생활을 하다가 우연한 기회에 현재 재직하고 있는 양서고에 오게 되었습니다. 직장을 바꿀 때 주위 사람들의 만류에도 나름의 생각을 가지고 학교현장에 왔는데 ‘교생실습’에서는 느끼지 못했던 막막함과 허탈함이 밀려오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학교 위치는 남한강과 북한강이 만나는 양수리에 위치하여 물 맑고 공기 좋은 곳이었지만 정작 학생들은 순박하고 착한 지역 출신학생들이 있는 방면, 갈 곳이 없어 마지막으로 선택한 농어촌 후기학교에 내몰린 그런 표정의 학생들과 공부와는 담을 쌓은 일탈을 자주하는 학생들도 있었습니다. 그러기에 수업 준비를 열심히 하고 학생들의 진로에 대하여 고민하기보다는 대충 수업 채우고 일과 후나 주말에는 여가활동에 치중하는 직업인으로서의 교사 생활에 익숙해졌습니다.
그러던 중 2002년도에 재단이사장님께서 용어도 생소한 ‘전국단위 자율학교’라는 새로운 형태의 고교모델을 교육부로부터 지정받아 오시게 되었고 학생선발에 대한 기획과 방법을 총괄하는 중책을 맡게 되었습니다. 이후부터 학교가 달라졌고 준비된 실력 있는 학생들이 서울 및 경기지역 대도시뿐 아니라 전국에서 오게 되었습니다.
그 학생들 중에는 처음 모집할 때 다른 학부모님들을 안심시켜 주기위해 사례되는 성적으로 많은 지원자들에게 안도감을 준 부천에서 온 최**이라는 학생도 있었지만 2004년도 서울 은평구에서 온 4명의 학생들이 있었습니다. 그 학생들은 유치원부터 중학교까지 같은 학교에서 생활하고 온 절친 이었는데 남자답게 멋있게 생겼고 공부도 참 열심히 하는 학생들로, 이들 중 두 명은 1학년과 3학년 때 담임을 맡기도 했습니다.
제가 초등학교시절 담임 선생님과 교장선생님으로부터 항상 들었던 말씀이 “너는 장군감이다”라는 것이었는데 그 것이 제 마음 속에 항상 남아있었지만 현실에 반영을 못한 아쉬움이 있었기에 담임으로 데리고 있던 두 학생들을 육군사관학교로 진학하기를 권유했습니다. 일종의 대리만족이라 할까요? 그 학생들은 열심히 공부함은 물론 운동신경도 남달라 항상 많은 여학생들로부터 인기도 최고였습니다. 그래서 학교에서 금기시되는 이성교제를 1학년부터 한 학생이 있었는데 지금 학교현장에서 그랬다면 신문에 날 일이지만 사랑의 매라는 명목으로 한 여학생과 그 남학생을 무척 많이 체벌하였습니다.
저희 학교가 남녀공학이면서 전교생 기숙사 학교라 앞서 기술한 것처럼 이성교제는 'JP(졸라풍기문란)'라는 용어로 하지 못하게 하였는데 그 이유는 “집 떠나 시골 학교에 온 근본 목적을 잊지 말자”라는 취지에서 공부이외의 것은 강력하게 제재하는 상황이었습니다. 또한 그 남학생은 부모님께서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못하셔서 기숙사비용도 체납하시거나 수업료가 미납되는 일이 종종 반복되었지만 부모님들께서는 그 학생에게는 기죽지 않도록 여러 가지로 애쓰시는 모습이 보였고, 제가 학생에 대하여 또 다른 속사정도 잘 알고 있었기에 좀 더 강하게 키우고자 했습니다.
그런 이유에서인지 이 학생은 제 바람처럼(부모님께서도 넉넉하지 않은 경제문제로 사관학교 진학을 원하심) 육군사관학교에 지원하였고 당당히 우수한 성적으로 합격(양서고 최초합격- 2017년 현재 60여명 졸업 및 재학 중)하였고 멋진 사관생도가 되었습니다. 1학년 생도시절에는 스승의 날 행사에 저를 초정하여 학교행사에 참여할 수 있는 계기도 마련해 주었고, 모교 후배들을 위한 입시설명회 때는 학교에 방문하여 후배들에게 사관생도가 되는 길과 앞으로의 비전 등을 설명해줌으로써 많은 학생들이 사관학교(육해공, 간호)에 응시하여 합격할 수 있도록 길을 터 주었습니다.
그렇게 스승과 제자 사이로 교감을 갖고 생활하던 2015년 6월 어느 날 이 학생이 ‘본인이 결혼한다, 그래서 선생님께 신부를 인사시키고 싶다’라고 연락이 왔습니다. 그 당시 동급생 두세 명과 만나는 자리에서 결혼식 주례를 부탁하기에 한편으로는 내가 벌써 주례를 할 나이가 되었나하는 생각에 당황스러웠고 한편으로는 나를 정말 스승으로 생각한다는 생각에 기쁘게 생각했습니다. 제자들이 결혼한다고 남학생이든 여학생이든 상대 배후자들을 인사시킨 적은 여러 번 있었지만 주례서는 것은 가슴 떨리는 일이었습니다. 아무튼 그해 9월에 육군사관학교 생도회관에서 많은 하례객 앞에서 떨리는 마음으로 주례사를 하였고 결혼식을 잘 마무리 하였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늦었지만 교사의 길을 선택한 것은 참 잘한 것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첫 직장으로 대기업에 다니면서 인정받는 직원으로 생활하였고 보람도 느꼈었지만 나보다 나은 후배들을 양성하고 그 제자들이 사회발전을 위해서 다양한 분야에서 노력해준다는 사실에 더욱 뿌듯함을 느끼게 됩니다. 물론 저희 학교도 짧은 기간에 전국에서 40위권(자사고 특목고포함 2500개 학교 중) 이내로 드는 학교로 발전하였고 그런 일에 제가 미력하나마 힘을 보탠 것도 사실이지만 그 보다 더 중요한 것은 급변하는 사회에서 인간으로서 본연의 자세를 잃지 않고 남을 배려할 수 있는 따듯한 마음과 봉사하는 정신, 그리고 우리나라를 올바른 곳으로 이끌 수 있는 리더십과 자긍심을 갖는 훌륭한 인재들을 길러낸다는데 더욱 자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지금 예전 다녔던 회사의 몇 남은 친구들이 임원으로 있지만 항상 부러운 눈으로 절 대하는 모습, 그리고 매년 인간미를 갖춘 학생들이 입학하고 있고, 그 학생들과 같은 공간에서 생활하며 생각도 젊어지고 모습도 젊어진다는 생각에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라는 생각으로 그 속에서 앞으로도 더욱 후배양성에 헌신하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