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TORY
- 01스토리
입시철이 가까워지면 각 교회와 사찰에는 수험생과 어머님들을 위한 100일 기도를 홍보하는 내용의 소식이나 현수막이 내걸리는 것을 볼 수 있다. 우리나라 어머님들의 자식 사랑은 세계적이다. 자식을 위한 것이라면 모든 것을 희생해서라도 못할 것이 없다. 100일 기도쯤이야 일도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기쁠 때보다는 어려울 때 기도를 한다. 기쁨은 자신의 노력 때문에 오는 것이지만 어려움은 밖에서 잘 못 오는 것으로 여기기 때문이 아닐까? 그래서 절대자의 도움을 청해서 어려움과 고난을 극복하고 소원하는 것을 얻고자 하는지도 모르겠다.
석 달 열흘 동안 차가운 새벽바람을 마다않고 정성 들여 차려 입고 교회와 사찰로 향하는 어머님들의 모습은 경건하기도 하고 눈물겹기도 하다. 대학 입시를 앞둔 고 3 수험생 어머님들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나라의 교육 현실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실감하게 된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뒤집히고 헝클어지는 우리나라의 입시 정책 아래서 수험생과 부모님들의 혼돈과 고통은 얼마나 심하겠는가? 전문가라는 선생님들조차 입시 전문 기관의 책자가 없으면 입시 요강을 제대로 파악할 수 없는 우리나라의 입시 제도는 세계 최악일 것이다. 치열한 입시 지옥도 헤쳐 나가기 힘든 데, 입시 제도까지 뒤범벅이니 어딘가에 의지해서 희망과 용기를 얻고 조그마한 위안을 얻고 싶은 것을 탓할 일은 아니지만, 실력보다는 절대자에게 의지해서 소원하는 것을 얻으려는 것은 아닌가 묻고 싶다.
어머님들의 정성과 노력에 감동해서 우리 아이들이 더욱 분발하고 정신을 가다듬는 효과는 있을지 모르지만 100일 기도로 기적이 일어나지는 않을 것이다. 오히려 그 시간에 자식들과 미래 세상을 이야기하고, 건강을 챙겨주고, 자신과 사회와 국가를 위해서 장래에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 묻고 토론하고 함께 고민해 보는 시간을 갖는 것이 더욱 현명한 것이 아닐까 한다.
나는 상당한 기간을 인문계 명문 고등학교에서 진학 지도를 해 보았고, 입시 때가 되면 대입 진학 지도를 위한 배치 사정표라는 대학 입학시험 원서 작성의 이정표를 만드는데도 깊이 관여해 왔다. 그 당시에 나는 인문계 고등학교는 대학 진학에서 앞서야 하고, 학생들은 좋은 대학 좋은 학과에 진학해야 장래를 보장받는다는 생각에 정말 열심히 가르치고 진학지도에도 전문가라고 자부하면서 매사에 적극적이고 열정적 이였다. 학부모들은 나의 한마디에 자식의 장래가 결정되는 듯 의지하고 상담을 원했었다. 그 당시 가장 어려웠던 것은 과연 내가 학생의 적성과 능력, 그리고 미래의 세상에 꼭 필요한 전공을 선택할 수 있도록 도울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혹시나 대학과 학과에 현혹되어 명문 대학 유명 학과로만 유도하거나 지도한 것은 아닐까 하는 문제였다. 때로는 점수에 맞추어서 학생보다는 부모님의 욕심에 끌려가지는 않을까 하는 고민도 했었다.
지금도 기억하는 학생이 있다. 공부를 잘 할 뿐만 아니라 예의 바르고 생각도 깊은 학생이었는데, 학생은 철학과에 진학하고 싶어 했지만 부모님은 점수가 아깝다면서 서울대 법과를 고집하는 사이에서 나는 결국 부모님에게 지고 말았다. 물론 학생은 서울대 법대에 무난히 합격할 수 있었지만 그때의 내 역할에 대해선 지금도 교사로서 잘한 일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100일 기도를 계획하시거나 점집을 찾으려는 어머님들에게 부탁하고 싶다. 물론 어머님의 정성과 기원이 담긴 100일 기도를 탓하거나 잘못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전에 아이의 성장 과정에서 관찰하고 느꼈던 아이의 적성과 재능과 능력은 충분히 생각하고 고민했는지? 아이의 미래 생활에 대해서 진지하게 아이와 토론은 했는지? 아이의 건강과 섭생은 잘 챙기고 있는지? 시험 당일까지의 생활 스케줄은 잘 짜 두었는지? 아이보다는 주변에 과시하고 싶은 부모의 욕심은 없는지? 등을 진지하게 검토하고 고민하는 시간을 갖기를 권장한다. 오히려 학교의 담임 선생님이나 진학담당 선생님, 입시 전문 교육상담가와 진지하게 상의하고 결정하기를 권한다.
모든 일에는 순서와 절차가 있고 순리가 있다. 많은 사람이 가는 길이 진리라는 말도 있다. 우스갯소리에 ‘국어와 수학을 잘하면 사람은 실패 없이 살아갈 수 있다’고 한다. 국어 문제에 자주 등장하는 ‘주제 파악’을 잘 하고, 수학 문제에 등장하는 ‘분수’만 잘 지키면 우리는 성공하는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욕심을 내지 말라는 뜻으로 받아 주기 바란다. 수험생과 수험생을 둔 부모님들의 건투를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