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TORY
- 01스토리
지난 주 개천절 날 지인과 함께 덕유산(德裕山) 국립공원에 있는 백련사(白蓮寺)에 다녀왔습니다. 백련사는 무주(茂朱) 구천동(九天洞)의 33경(景) 중 32경입니다. 주차장부터 절까지 포장도로가 잘 조성되어 있어서 구천동 계곡물 소리를 들으며 즐거운 마음으로 산책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덕유산 최정상 봉우리인 향적봉(香積峰, 1,614미터, 33경)은 백련사에서 2.5킬로미터 지점에 있었는데 시간이 부족하여 정상 정복은 다음 기회로 미루고 하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구천동 계곡의 산행길은 미국 시인인 로버트 프로스트(Robert Frost, 1874~1963)의 ‘가지 않은 길(The Road Not Taken)’이라는 시를 생각나게 했습니다. 이 시는 시인이 20대 후반에 쓴 것이라고 합니다. 시의 제목은 ‘가지 않은 길’, ‘가지 못한 길’, ‘가 보지 않은 길’, ‘걸어 보지 못한 길’ 등 여러 가지로 번역되어 사용하고 있는데, 제가 학교에서 배울 때는 ‘가지 않은 길’로 배웠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학생일 때 시험 공부하면서 배웠던 시와 이제는 성인이 되어 다시 읽게 된 시가 주는 감흥은 예전과 많이 달라진 것 같습니다. 학생시절에는 아직 인생의 길을 선택하지 않았을 때이지만, 지금은 학교 졸업 후 스스로 ‘선택한 길’을 따라서 살아왔기 때문입니다. 학생일 때는 선택해야 할 미래의 길이었지만, 지금은 이미 선택하여 뒤돌아볼 수 있는 지나온 길이 되었기 때문에 시인이 말하는 ‘길(Road)’에 대한 느낌이 학생 때와는 많이 다른 것 같습니다.
예전에 학부모님들이 대학에 갈 때는 전·후기 지원으로 수험생들이 선택할 수 있는 대학, 학과가 많아야 2개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수시 6회나 정시 3회 등 옛날 보다는 대학, 학과 선택의 폭이 많이 넓어졌습니다. 수험생에 따라서 같은 학과를 일관되게 지원한 학생들도 있겠고, 아니면 성적에 맞춰서 지원한 대학의 학과가 모두 다른 학생들도 있을 것입니다. 학과 선택이 곧 인생의 길을 결정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어떤 면에서든 인생의 길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저번에 한 번 말씀드렸듯이 제 경우는 아버지로 인하여 법대에 진학하려고 했지만 다행인지 불행인지 법대에 낙방하고 사범대로 진학하게 되었습니다. 돌이켜 보면 법대 진학 실패는 ‘가지 않은 길’이 아니라 ‘가지 못한 길’이었던 것 같습니다. ‘가거나, 가지 않은 길’이 개인의 선택 사안이라면, ‘가지 못한 길’은 어떤 운명의 작용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지나고 보니 인생의 길은 ‘선택’과 ‘운명’이 서로 얽혀 나아가는 것 같습니다.
우리 학생들 앞에는 수많은 길이 놓여 있습니다. 이 중 어떤 길이 최선인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습니다. 학부모님들의 길과 학생들의 길은 다를 수 있습니다. ‘인생의 길’은 직접 걸어가야 할 학생 스스로가 결정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학생 스스로 자신의 인생에 대해 충분히 고민하는 시간과 경험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마스터리의 법칙’ 저자인 로버트 그린(Robert Greene)의 다음 조언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대개 인생에서 잘못된 길을 걷게 되는 이유는 잘못된 동기가 작동하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돈이나 명예를 좇기 때문이다. 우리는 종종 경험하는 공허함을 세상 사람들의 그릇된 욕구로 채우려고 한다. 하지만 선택한 분야가 우리 자신의 근원적 성향과 맞지 않는다면 우리가 갈망하는 만족감은 결코 느낄 수 없다. 그러면 우리가 내놓는 성과물이나 작품도 별 볼일 없는 수준에 그치고 말며, 처음엔 세상의 주목을 받을지 몰라도 점점 세상도 우리에게서 눈을 돌리기 시작한다. ....당신에게 맞지 않는 직업을 강요하는 부모님에게 저항하라. 부모님에게서 독립해 스스로의 길을 선택해 자신만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것은 당신의 진정한 성장에 대단히 중요하다. 반항심을 연료로 삼아 에너지와 목적의식을 내면에 채워 넣어라. 당신의 앞길을 막는 존재가 아버지라면, 아버지를 당당히 무시하고 당신만의 길을 개척하라.”*
* 마스터리의 법칙, 로버트 그린, 살림Biz