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리타스알파=신현지 기자] 4월 말 시한인 대학별 2027전형계획이 쏟아져 나와야 할 시기이지만 23일 현재 주요22개대 중 숭실대를 제외하고 2027전형계획을 공개한 대학은 전무하다. 대교협이 나서서 대학별 전형계획 발표 일자를 4월 말로 강제 통일했기 때문이다. 전형설계를 마친 대학이 수요자 친화 조치 차원에서 미리 공개할 수 있는 상황이지만 대교협 승인 전에는 수요자에게 아예 공개하지 못하도록 못을 박았다는 얘기다.
당연히 대학가를 중심으로 현장에선 대교협의 관료주의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높다. 정시확대와 의대확대 등으로 느닷없이 왜곡된 대입지형을 만든 정권은 물론, 정시확대와 고교학점제가 공존하게 만드는 등 모순적인 정책 운용으로 역시 폐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은 교육부에 이어 정권과 교육부의 실정과 모순들을 해결하고 수요자의 불안을 줄이는 지혜를 짜내야 할 대교협마저 수요자를 괴롭히냐는 지적이 제기된다.
특히 대교협이 욕먹는 이유는 ‘역대급 혼돈’이라 할 만큼 올해 상황이 워낙 급박하기 때문이다. 교육부의 눈치를 봐야 하는 대교협의 고충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지만 의대정원부터 무전공 확대까지 불확실성 가득한 대입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수요자의 입장은 벼랑 끝일 수밖에 없다. 올해는 물론 내년 입시까지 그 어떠한 정보라도 수요자에겐 간절한 상황이다. 각 대학은 고등교육법에 따라 매 입학연도의 전 학년도가 개시되는 날의 10개월 전(고2 4월)까지 전형계획을 공표해야 한다. 3월31일까지 대교협에 제출하면 대교협의 검토 과정을 거쳐 4월30일까지 발표되는 식이다. 단 대학이 발 빠르게 준비해 전형계획을 제출한다 하더라도, 대교협 검토를 거쳐 승인되는 시점은 대부분 4월 말인 점이 문제다. 게다가 대교협 역시 승인 공문 접수 이전엔 2027전형계획을 교내 홈페이지에 탑재하지 못하도록 단속하면서 정보제공이 더욱 늦춰지도록 강요했다.
교육계에서는 4년예고제를 무시하며 정시확대 의대확대 무전공확대로 예측가능성을 깡그리 무시한 정권과 2개 정권의 모순을 그대로 방치하며 사교육을 역대최대로 끌어올린 교육부에 이어 총장협의체로 대입 운영의 자율성을 상징하는 대교협마저 어려워진 시기에 수요자 친화 조치를 외면한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한 교육관계자는 “대교협은 정부가 대입을 운영하지 않는다는 원칙 아래 대학이 자율적으로 대입을 운영할 수 있도록 한 총장 협의체다. 대입 자율 운영의 상징 같은 존재인 셈이다. 문재인 정권은 대뜸 정시확대, 윤석열 정권은 의대정원과 무전공확대를 무리하게 추진하며 나서서 4년 예고제를 뒤집었다. 교육부는 한술 더 떠서 모순된 정책운영을 정리 없이 그대로 두면서 사교육 역대최대를 자초했다. 그나마 대입의 주체인 대교협이라도 무언가 수요자를 위해 모순들을 해결할 묘수풀이까지는 아니더라도 전형계획이나 요강이 발 빠르게 공개될 수 있도록 대비해야 했다. 특히 자료를 빨리 발표하는 대학을 칭찬해 주진 못할 망정 승인되지 않았다며 정보를 묶어두는 행태는 교육부 아래 일하더니 관료주의만 배웠는가 싶다”고 지적했다.

<대교협 승인 뭐길래.. 전형계획 ‘대교협 제출 3월 말, 발표 4월 말’>
대학별 전형계획 공개와 수정은 고등교육법 제34조 5항과 대교협이 발표한 대학입학전형기본사항을 따른다. 각 대학이 3월 말까지 대교협에 전형계획을 수립해 제출하면, 대교협은 이를 검토해 수정사항/검토사항을 대학에 안내, 각 대학은 최종적으로 대교협 승인을 거쳐 4월 말까지 전형계획을 홈페이지에 공지하는 식이다.
문제는 대학이 빠르게 내년도 계획을 수립했더라도, 대교협 승인/검토 단계를 거치면서 발표 일자가 밀린다는 점이다. 최근 대교협은 각 대학에게 메일을 통해 ‘참고사항’으로 ‘대교협 대학입학전형위원회 최종 심의를 거쳐 4월 말 이내에 2027학년도 대학입학전형시행계획에 대한 승인 공문을 발송드릴 예정이오니, 승인 공문을 접수한 이후 시행계획 파일을 교내 홈페이지에 탑재 및 ASSIST시스템에 파일업로드해주시기 바랍니다’라고 안내했다.
대교협은 대학별 전형계획을 검토해, 대학과 메일/전화 등으로 소통하며 수정사항을 안내하고 전형계획을 수정하는 과정을 거친다. 오류가 있진 않은지, 또는 불포함된 정보가 없는지 등을 살피는 식이다. 이후 대교협은 4월 중순과 4월 말 대학입학전형위원회의 최종 심의를 거쳐 대학별 전형계획 승인 공문을 발송한다. 단 대교협이 대학에 ‘승인 공문 접수 이후 시행계획(전형계획) 파일을 교내 홈페이지에 탑재하라’고 안내하고 있어 수요자에게 공개되는 시점은 늦어진다.
물론 일부 수요자 친화적인 대학은 홈페이지 발표 전, 수요자에게 별도의 입시정보 제공, 뉴스레터 등으로 내년도 전형계획을 사전예고하기도 한다. 승인 공문 접수 전이라도, 이미 대교협과 소통을 통해 오류가 없음을 확인했다면 발빠르게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다.
교육계에서는 전형계획이 일괄적으로 4월30일 발표되는 현행 체제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행정적 절차 때문에 수요자에게 정보가 늦게 제공되는 것 자체에 대한 재고가 필요하다는 것. 한 교육전문가는 “물론 대교협이 검토해야 하는 서류의 양이 무척 방대하다는 것은 모든 교육계가 동의한다. 다만 대학입학전형위원회 심의 수를 늘리거나, 아니면 오류가 없다고 확인된 대학은 공문 전송 전 미리 수요자에게 2027전형계획을 발표할 수 있도록 자율성을 부여해 수요자가 빠르게 대입에 대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지금처럼 모조리 4월 말 발표할 수밖에 없게 설계된 시스템은 행정편의주의적인 발상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남용되는 고등교육법 예외사항 ‘4년예고제 물거품’>
대교협이 대학의 전형계획 선공개를 제재하는 배경엔, 지난해 발표된 2026전형계획이 대교협 승인본과 미승인본이 혼재되어 있어 불러온 혼란 방지책으로 보인다. 지난해의 경우 무전공과 의대증원이 동시에 추진되며 대학가엔 구조조정과 관련해 대혼란이 발생했다. 단 두 달 안에 정원조정은 물론 조직개편까지 이뤄내야 했기 때문.
그 결과 현재까지도 2026전형계획은 대교협 승인본과 미승인본이 혼재되어 있는 상태다. 대학 관계자들에 따르면 지난해 4월 중순 이전에 전형계획을 제출한 대학은 대교협 승인 절차가 끝나 4월 말 승인이 완료된 전형계획을 발표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후 제출 대학은 학사구조 개편절차가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대교협 승인이 나지 않아 미반영본을 선공개하게 됐다. 이들의 대교협 승인 절차는 5월 중 이뤄졌다. 당시 한 상위대학 입학팀장은 “무전공을 반영 안 했다기보단 못 했다는 표현이 더 적합하다. 변경사항을 반영해 제출했지만 승인이 안 났다”며 “학생들이 오해하기 딱 좋다. 변경 전 전형계획이 대외적으로 공개돼서 혼란스러울 것이다. 수험생 입장에선 전형계획을 두 번 봐야 하는 상황에 놓인 셈”이라고 전했다.
혼란이 발생한 이유는, 정부가 고등교육법이 규정하고 있는 4년 예고제의 예외사항을 남용했기 때문. 고등교육법 제34조의5 제6항에 따라 전형계획은 공표 이후 변경할 수 없다. 단 고등교육법 시행령 제33조 제3항에서 정하는 사유(관계 법령의 제정/개정/폐지, 대학 구조개혁을 위한 학과 등 개편/정원조정, 대학입학전형기본사항의 변경이 있는 경우, 행정처분 있는 경우, 다른 법령에서 전형계획을 변경할 수 있도록 규정한 경우, 교육부장관이 인정하는 부득이한 사유가 있는 경우 등)엔 전형계획 변경이 가능하다. 이는 4월 말까지 변경사항을 대교협에 제출하고, 5월 말까지 대교협에서 심의/조정된다.

교육계에서는 4년예고제의 예외사항이 불러온 폐해라고 강조한다. 애초 대입의 예측가능성을 확대하기 위해 10개월 전 전형계획을 공표하는 것인데 ‘구조조정에 따른 예외사항’이라는 명목 하에 취지가 훼손되고 있기 때문.
교육계에서는 대입을 이리저리 흔든 교육당국의 책임이 크다고 강조한다. 4년 예고제를 무시하며 정시확대를 추진한 문재인 정권에 이어 의대증원과 무전공 확대를 동시에 추진하며 혼란을 불러온 윤석열 정권까지 대통령이 나서서 4년예고제를 뒤집는 행보가 이어진 탓이다. 특히 최근 변수가 누적됐다는 점이 문제다. 2024학년과 2025학년 2년째 이어진 첨단학과 순증부터, 2025학년 돌출해 2026학년까지 이어지는 무전공 확대, 2025학년 의대 증원과 2026학년 의대정원 원복, 안갯속인 2027학년 의대정원까지 혼란이 거듭되고 있는 상황이다. 한 대학 입학관계자는 “구조조정은 전형관리위원회 회의 하나만 하는 것이 아니다. 단과대학 의견도 수렴해야 하고 교무위원회는 물론 심지어 학칙도 개정해야 해 평의원회까지 진행해야 한다. 두 달 안에 불가능하다”고 설명했다.
<2027전형계획 발표는 4월 말, 2026전형계획 확정은 5월 말? ‘선후관계 조정 필요’>
일각에서는 고등교육법 자체를 손봐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2027전형계획 발표는 4월 말까지 하지만, 2026전형계획 수정본 발표는 5월 말까지 해야 하기 때문. 구조 조정 등 대학별 변동사항이 올해 입시인 2026학년보다 내년인 2027학년에 더 빨리 반영되는 셈이다.
대학가에서는 시점상 엇박자라고 지적한다. 한 대학 입학팀장은 “2026대입부터 자유전공학부가 신설돼 운영되지만 당장 올해 대입인 2026전형계획은 아직 승인본 게재 전이라 안내되어 있지 않고, 내년인 2027전형계획엔 반영되어 있다. 5월 말 2026전형계획 수정본 발표 전까진 문의가 폭발할 수 있다. 물론 수험생에겐 2026학년에도 운영한다고 안내는 할 테지만 헷갈릴 수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입학관계자 역시 “2026을 먼저 바꾼 상태에서 2027을 수정하는 안을 만들라 하면 합의도 되고 납득도 되는데, 2026은 이전 걸로 올라간 상태에서 2027을 확정짓자니 엇박자다”라고 설명했다. 각 대학은 5월 말 발표하는 2026전형계획 수정본과 수시요강을 통해 2027전형계획에도 담긴 사항을 안내할 예정이다. 하지만 그 전에 2027전형계획과 2026전형계획을 비교해 본 수요자의 혼란은 더 커질 것이라고 대학 입학관계자들은 지적한다.
게다가 올해까지도 대학의 구조조정은 이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교육부가 올해도 대학 지원사업과 연계해 무전공 확대 기조를 이어가기 때문. 대학가에서도 모집단위 광역화 등 무전공 확대가 2년째 이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또 다른 입학 관계자는 “전공자율선택제 관련 정원조정을 작년에 다 끝냈으면 2025학년부터 2027학년까지 문제가 없었을 텐데, 매년 계속 구조조정이 이뤄지다 보니 더 문제다. 대학이 전형계획을 통해 발표를 했더라도, 대교협 승인을 거치면 또 어떤 모집단위가 신설되어 있을지 모르는 식이다”라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당해연도 입시가 확정된 이후 내년도 전형계획 공개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한 대학입학팀장은 “2026전형계획 수정과 2027전형계획 발표 모두 4월 말까지 이뤄지면 그나마 혼란은 최소화할 수 있다. 차라리 2026전형계획이 먼저 확정되고, 이를 바탕으로 2027전형계획을 설계해 발표할 수 있도록 하는 안도 있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손발 꼬인 전형계획 검토 일정과 고등교육법까지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대교협은 각 대학이 자체적으로 내년도 입시에 대한 사전정보를 제공할 수 있도록 자율성을 부여해야 하며, 예측가능성을 해치는 4년예고제 예외사항도 전면 손질해야 한다는 것. 한 대학 입학관계자는 “대입지형에 폭탄을 떨어뜨린 교육당국과, 4년예고제 예외사항 때문에 전형계획은 언제든 바뀔 수 있는 신뢰성 없는 자료가 됐다. 예측가능성을 높인다는 취지는 온데간데없이 엇박자만 남았다. 지금이라도 수요자들을 위한 절차를 다시 고민하고, 고등교육법 손질도 검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